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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섭씨 1억도 ‘인공태양’ 만들어, 7개국 연합 프로젝트 이끌다

중앙일보 2019.01.28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1994년 12월~96년 8월 과학기술처 장관 재직 시 원자력과 함께 매연·탄소배출 없는 미래 청정에너지로 주목받는 핵융합 에너지의 개발을 시작한 것도 보람이다. 95년 12월 ‘국가 핵융합 연구개발 기본계획’ 확정에 이어 96년 1월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이 대덕연구단지에 출범했다. 퇴임 한참 뒤인 2005년 10월 핵융합연구센터를 거쳐 2007년 9월 국가핵융합연구소(NFRI)가 발족했다. 플라스마 온도를 섭씨 1억 도까지 올리는 한국형 차세대 핵융합 실험로인 케이스타(K-STAR)가 같은 시기 완공됐다. ‘인공태양’ 케이스타의 건설과 실험 결과는 한국·미국·러시아·중국·인도·일본·유럽연합(EU) 등 7개국이 공동으로 30년간 진행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 협정은 중요하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오른쪽)이 1995년 이반 필립 체코 과학기술장관(왼쪽)과 양국 과학기술장관회담을 열고 과학기술 협정서를 교환하고 있다.[중앙포토]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 협정은 중요하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오른쪽)이 1995년 이반 필립 체코 과학기술장관(왼쪽)과 양국 과학기술장관회담을 열고 과학기술 협정서를 교환하고 있다.[중앙포토]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23)
<76> 미래 청정에너지 개발 연구
95년 시작한 핵융합 사업
2007년 1억도 융합로 건설
국제공동연구 한국이 주도
G7 수준 과학기술에 도전
다양한 연구 사업 가속화
한미과학협력센터 설립도
국제화·우주항공사업 주력

이처럼 국제 협력은 과학기술 발전에 필수적이다. 영국의 왕립학회, 스웨덴의 과학아카데미, 미국의 국가 과학·공학·의학 한림원은 모두 이에 주력한다. 한국은 한미 간 군사동맹으로 국가안보를, 경제·과학기술 협력으로 발전의 기틀을 각각 다졌다. 한국이 20세기 과학기술 문명의 기수인 미국과 협력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수준 높은 공동연구를 할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95년 7월 방미 중 재미 과학자 200여 명 앞에서 샌프란시스코 연설을 하면서 한미 과학기술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그 뒤 600만 달러의 예산으로 한미과학협력센터(KUSCO)를 워싱턴 근교에 설립했다. KUSCO는 한미 과학기술협력의 핵심이자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 본부, 그리고 한국 발전에 공헌하려는 차세대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  
1995년 10월 20일 사단법인 한국과학기자클럽 현판식에서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왼족)이 신종오 한국과학기자클럽 회장(오른쪽에서 둘째)과 함께 현판을 달고 있다. 오른쪽은 이찬휘 과학기자클럽 부회장(SBS 문화과학부 차장). [중앙포토]

1995년 10월 20일 사단법인 한국과학기자클럽 현판식에서 당시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왼족)이 신종오 한국과학기자클럽 회장(오른쪽에서 둘째)과 함께 현판을 달고 있다. 오른쪽은 이찬휘 과학기자클럽 부회장(SBS 문화과학부 차장). [중앙포토]

 
장관 재직 중 우수연구센터(SRC·ERC) 사업은 대표적 정부지원 과학기술 집단사업으로 정착해 연중 연구하는 대학 분위기의 초석이 됐다. 88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시절 착수했던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91년 5월 시작한 ‘선도기술 개발사업(G7 프로젝트)’은 2000년대 주요 7개국 수준의 과학기술 능력을 확보하자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도전하는 나라만 선진국 진입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관 임기는 1년이라 여긴 나는 실무자들과 기획을 진행하면서 전문가들과도 협업해 업무 속도를 냈다. 당시 믿고 따랐던 관료들과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박영일 박사(전 이화여대 부총장), 신성철 박사(현 KAIST 총장), 이공래 박사(전 DGIST 교무처장), 오세기 박사(전 KINGS 총장)에게 감사드린다.  
 
취임 1년을 앞둔 95년 12월 책상과 서랍까지 정리하며 물러날 준비를 했지만 유임됐고 구본영 차관(나중에 과기처 장관)이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옮겼다. 임창렬 조달청장(나중에 경제부총리·경기도지사)이 후임 차관으로 왔다. 그 뒤 나는 항공우주개발과 과학기술의 세계화에 주력했다. 21세기 초일류 국가가 향한 과학기술 정책이 하나둘 실현될 즈음 갑자기 이수성 총리(80·95년 12월~97년 3월 재임)의 전화가 왔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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