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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신의 한 수] 한국 축구, 1996년생 트리오에 기대 건다

중앙일보 2019.01.28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카타르에 실점한 후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왼쪽)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카타르에 실점한 후 한국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왼쪽)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15년 만에 아시안컵 축구대회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끝난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 0-1로 패한 직후 손흥민(27·토트넘)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지도했던 흥민이는 원래 메이저 대회에서 탈락하면 분해서 펑펑 울던 선수였다. 하지만 이날은 울지 않고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세 번째 아시안컵이 너무 허무하고 허탈하게 끝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5년 만에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
100위권팀 맞아 4-2-3-1 고수
부상자 속출, 선수 관리 실패
30대 줄줄이 은퇴, 세대교체 기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난 지난 16일 열린 중국과의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 손흥민을 출전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흥민이가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치른 뒤 이틀 만에 또 경기에 출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유럽에서 중동으로 장거리 비행을 했고, 기후 적응도 필요했다. 영국 런던 기온은 섭씨 5~7도로 쌀쌀한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는 20~25도나 됐다.
 
하지만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감독은 손흥민을 선발 출전시켰고, 후반 44분까지 89분을 뛰게 했다. 손흥민은 2골에 관여하면서 승리를 이끌었지만, 모두가 알듯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손흥민은 바레인과의 16강전에서도 연장 혈투를 펼쳤고, 결국 카타르와 8강전에선 몸놀림이 무거웠다. 손흥민이 중국전에서 89분 동안 뛴 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손흥민 역시 “와서 몸 상태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체력적으로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을 보면 축구 철학과 신념이 확고한 것 같다. 혹시 저러다 부러지지 않을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3위다. 반면 필리핀은 116위, 키르기스스탄은 91위, 바레인은 113위, 카타르는 93위다. 100위권 안팎인 팀을 상대로 똑같은 포메이션과 전술을 들고 나왔다. 아시아 팀과 세계적인 팀을 상대할 때는 전술과 선수 구성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전략은 단조로웠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사령탑 시절부터 23명 중 11~15명 정도만 중용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상대 팀이 파이브 백(수비 5명)을 쓰는 경우에도 4-2-3-1포메이션만 고수했다.
 
벤투 감독은 골키퍼와 수비수부터 차근차근 공격을 전개하는 ‘후방 빌드업’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볼 점유율은 60% 이상인데, 패스만 돌리다가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상대 페널티박스 안에서 황의조(감바 오사카) 외에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만약 좀 더 과감하게 4-4-2 포메이션을 써서 공격 시 투 스토퍼만 남고 양쪽 풀백이 올라가는 2-4-4 형태를 가동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횡패스보다는 종패스, 혹은 삼각패스를 통해 뒷공간을 노렸다면 어땠을까.
 
나상호(도쿄), 기성용(뉴캐슬), 이재성(홀슈타인 킬)이 줄줄이 부상을 당했고, 카타르전에선 황희찬(함부르크)마저 근육 통증으로 결장했다. 부상자가 속출한 건 대표팀 선수 관리의 문제다. 대표팀 의무팀 2명이 축구협회와 계약문제로 중도에 하차한 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기성용과 이청용도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들었다. 이제 ‘1996년생 3인방’ 황희찬, 황인범(대전), 김민재(전북) 등이 더 성장해 팀을 끌고 나가야 한다.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던 미드필더 권창훈(25·디종)이 최근 프랑스 리그에 복귀한 건 기분 좋은 소식이다. 독일 명문 팀 바이에른 뮌헨 공격수 정우영(20)과 스페인 발렌시아 미드필더 이강인(18)은 일단 올림픽 대표팀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올라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실력이 확인된다면 자연스럽게 성인대표팀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쓴소리를 했지만, 벤투 감독을 위한 변명도 하고 싶다. 감독이 6개월 만에 메이저 대회에 나갈 팀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아시안컵 결과를 놓고 한국의 축구 팬들은 실망하실 수도 있다. 선수들도 국민이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해주시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벤투 감독이 다시 힘을 내서 차근차근 만들어갈 테니 믿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 질책할 땐 질책하더라도 벤투 감독과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길 당부드린다. 그래야 2023년 아시안컵에서 다시 63년 만의 우승에 도전할 수 있으니까. 
 
아부다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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