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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바다, 태국은 매장 점령···'검은 반도체' 김의 전쟁

중앙일보 2019.01.26 10:05
'검은 반도체'를 두고 한국과 태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검은 반도체란 바다서 나는 '김'이다. 일단 표준 경쟁에선 한국이 승기를 잡았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한국 김이 아시아 표준으로 인정받으면서 김의 '종주국'으로 등극했다. 한국김산업연합회 정경섭 회장은 "삼국시대부터 자연산 김을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17세기 전남 광양에서 대나무를 이용해 김 양식을 처음 성공시킨 김여익이라는 사람의 성을 따서, 김(金)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1년에 100억장의 김을 소비한다고 전해진다. 이어서 붙이면 지구를 52바퀴나 감을 수 있는 양이다.
  

[주말PICK]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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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출에서도 김은 효자 노릇을 했다. 26일 한국무역통계진흥원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8년 수산물 수출 1위는 참치인데 전년 대비 소폭 줄었다. 3위인 게가 1억 달러를 돌파했고, 4위~5위는 6900만 달러 정도다. 최완현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장은 "12만명에 불과한 우리 어민들이 이룬 성과"라고 설명했다.
 
그 중에서 전체 2위인 김 수출은 2015년 3억 달러에서 2018년 5억2553만 달러로 늘었다. 해수부는 2024년까지 김 수출 10억 달러(1조원) 달성을 위해 2017년 김의 생산·가공·유통·수출까지 산업 전(全)주기에 걸친 지원을 위한 ‘김 산업 발전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주요 경쟁국인 중국의 김 수출액은 1억 7000만 달러(2017년 기준)로 한국 수출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런데 태국이 최근 신흥 김 수출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태국의 전략은 심플하다. 한국 등으로부터 마른 김을 수입한 후 스낵용 김을 가공해 판매하는 전략이다. 그 과정에서 와사비·코코넛 맛 등 다양한 맛을 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해양수산부 수출가공진흥과 관계자는 "김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태국은 한국서 수입한 마른김을 다양한 김스낵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중국 조미 김 수입에서 2016년까지는 한국이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했지만 2017년에는 태국이 역전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은 2015년 65%→2016년 51%→2017년 39%로 갈수록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는 반면, 태국은 2015년 34%→2016년 48%→2017년 60%로 한국이 잃는 분량만큼 제 것으로 가져오고 있다. 
본격적인 김 출하 철을 맞아 양식어민들이 물김을 출하하고 있다. 낙동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양식된 낙동김은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 미국, 일본 등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본격적인 김 출하 철을 맞아 양식어민들이 물김을 출하하고 있다. 낙동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양식된 낙동김은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 미국, 일본 등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태국은 품질 면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 각종 가공식품을 납품해온 수 십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김스낵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태국에선 김스낵으로 떼돈을 번 청년사업가까지 나왔다. 태국어로 '작은 보스'라는 뜻을 지닌 '타오케노이(Taokaenoi)'를 창립한 이띠팟 ‘톱’ 피라데차판(Itthipat ‘Tob’ Peeradechapan)이 그 주인공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현재 30대 초반인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구운 체스트넛을 노점에서 판매하다가 김스낵 업체를 차려 성공을 거둔다. 26세 때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한 영화 '빌리어네어'가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태국 내에서 이 회사 점유율은 67%가량이다. 증시에도 상장돼 있다. 
 
홈페이지에 가보면 "김을 바다(sea)에서 매장(store)으로" 라는 표어가 있다. 태국 방콕에 김스낵 전문매장까지 갖추고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타오케노이 매출은 2017년 52억 바트(1842억원)에 달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 세계 인구의 20%는 김을 먹은 경험이 있다"면서 김스낵의 미래를 자신했다. 
김스낵으로 부를 쌓은 타오케노이의 '톱' [포브스]

김스낵으로 부를 쌓은 타오케노이의 '톱' [포브스]

태국의 김스낵이 잘 팔린 이유 중의 하나는 '김'에 부가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수초 특유의 검은색만 봐서는 일견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포로수용소에 수감돼 김을 처음 접했던 미국 포로들이 종전 후 열린 전범재판에서 일본군이 포로에게 이상한 ‘검은 종이’(black paper)를 배식하는 고문을 했다고 진술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태국 김 과자는 한 장씩 롤 형태로 말아서 포장해 거부감을 덜고 편의성을 높였다. 한국의 유명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모델로 등장한 것도 태국 김 과자다. 관광객 사이에선 규현 과자로 이미 입소문이 난 상태다.
 
한국에서도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김스낵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김의 영문명인 잡초(seaweed)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바다와 채소의 합성어로 브랜드명을 '씨베지'로 바꾼 업체도 있다. 한국·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은 김을 과자처럼 먹기 때문에 도시락 김은 외국인 입맛에 기름이 많고 짤 수 있다. 그래서 와사비·간장·땅콩·치즈·코코넛·하바네로(매운 고추) 등 다양한 맛을 혼합하고 아몬드·멸치 등을 살짝 끼워 넣은 간식, 술안주 형태의 제품들이 먹힌다.
 
20년간 김 양식을 해온 노하우를 살려 김스낵 브랜드 '더바삭'을 내놓은 글로버리어스 박지훈 대표는 "김스낵을 통해 한국 김 생태계의 판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바삭 제공

더바삭 제공

그는 "서양에서 '슈퍼블랙푸드'이자 첨가물이 없어 아이들도 함께 먹는 간식이라는 포지셔닝이 주효하다"면서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치즈와 코코넛을 갈은 고명을 넣고, 튀기지 않고 굽는 것이 건강하다는 포인트"라고 말했다.
 
식품·뷰티 등 국내 소비재를 해외에 유통하는 무역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심윤보 아띠글로벌 대표는 “처음에는 김스낵을 중국·일본 쪽으로만 타깃팅했었는데 이제는 미주에서도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면서 "해외 판로 개척의 경우, 일단 수출 단가를 낮출 수 있어야 하는데 물류·수출용 원부자재 매입 할인 등의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산 김스낵 수출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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