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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당신, 잘못 산 거 맞아요

중앙선데이 2019.01.26 00:20 620호 29면 지면보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에서 주남대병원 의사 강준상의 역을 맡은 정준호의 연기가 돋보인다. ‘인생 연기’는 그의 연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다. 강준상이 어머니 윤 여사(정애리) 앞에서 오열하며 “나, 그냥 엄마 아들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할 때 소름이 쫙 끼쳤다. 병원장 자리에 오르는 걸 코앞에 두고 사표를 던지겠다면서 엄마에게 던진 대사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력고사 수석하고 서울대의대 들어가고, 힘든 의대 과정을 거쳐 병원의사가 됐으며, 다시 병원장까지 가는 숨가쁜 과정, 나이 50이 넘어서야 빈껍데기에 불과한 강준상을 발견하는 과정이 드라마에서 그려졌다.
 
드라마는 드라마이고, 연기는 연기일 뿐인데도 드라마의 후폭풍이 대단하다. 자기 자녀를 0.1% 상위권으로 만드려는 엄마들의 ‘미친 짓’들이 실제 벌어지는지 개연성을 따지는 언론보도가 최근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교육부가 김주영 선생 같은 코디를 잡겠다면서 현장점검을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코디와 컨설턴트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이미 이 드라마는 픽션을 넘어 논픽션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을 때려잡는 게 알고보니 수능 학원이 아니라 드라마였다.
 
자녀의 출세를 위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욕망은 드라마보다 현실에서 더 강하다. 정말 극소수의 일이라고?  내가 경험한 사례 하나만 거론하고자 한다. 2017년 연말 장애인특별전형 입시부정을 취재할 때였다. 입시 컨설턴트의 조언에 따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의사 집안의 부모가 대치동 컨설턴트에게 수천만원을 줬고, 컨설턴트는 장애인증명서란 공문서를 위조해 대학에 합격시켰다. 물론 의대는 아니었다. SKY 중 한 곳의 경영학과였다. 시각장애 진단서는 어디서 얻었는지 뻔하지 않나. 명문대생을 만들기 위해 진단서 허위 발급, 공문서 위조까지 당당하게 감당하는 게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부모다. 입시 부정에 연루된 학생 4명은 보도 이후 입학이 취소됐고, 컨설턴트 두 명은 구속됐다. 물론 1년도 안 돼 출소해 대치동 학원가에서 다시 활동하고 있다.
 
딸 예서와 엄마 한서진(염정아) 사이의 집착적 관계는 드라마에서 상장으로 표현된다. 서진은 예서와 함께 예서가 학교를 다니며 받은 상장들을 펼쳐 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랑 엄마랑 우리 둘이, 우리 둘이 함께 이뤄온 거야. 예서야, 너 이거 포기할 수 있어? 우리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왔는데.”
 
모녀의 집착적 관계는 윤 여사와 마마보이 강준상의 관계에서 대물림됐다. 그런 관계는 드라마의 결말에서 나올 예정이듯 몰락으로 마무리될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기대감에서 출발해 상대의 온몸을 조이는 집착은 자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기에 끊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집착을 끊어내지 못할까. 이범 교육평론가는 ‘공포’라는 용어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SKY 대학에 자녀를 보내려는 이유를 자녀를 성공하게 만들겠다는 출세욕만으로 풀이해선 안 된다. 내 아이가 갈수록 양극화된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로도 볼 수 있다. 이런 공포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로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려면 이런 공포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가. 정말 쉽지 않다.  
 
입시부정을 감행하는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을 배울까. 그렇게 키움을 당한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되갚음을 할까. 우리는 모태에서 나올 때 탯줄을 끊어주듯 그런 관계를 일찌감치 끊어야 한다. 설령 공포스럽더라도. 나랑 내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단번에 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훈련은 거듭해야 한다.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찾아주고, 그 일을 하도록 지켜봐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준상의 대사, “나, 그냥 엄마 아들 하면 안 돼요?”도 아니다. 나는 나, 엄마는 엄마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강준상들은 지금껏 잘못 살았다. 그러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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