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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손혜원의 ‘선한 의도’와 ‘이기적 행동’

중앙선데이 2019.01.26 00:20 620호 29면 지면보기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정치인들은 흔히 ‘선한 의도’를 신봉하지만 행동은 자기 이익에 맞게 한다.”
 

전통문화 보존하려는 선한 의도
내 관심과 주변으로 한정해 퇴색
높은 뜻 위해 이해충돌 지켰어야
“도덕은 신조 아닌 양심에 뿌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부캐넌(2013년 작고)의 말이다. 이른바 ‘공공선택론’이다. 이 말처럼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손혜원(사진)이라는 ‘초선’ 국회의원 한 명이 나라를 벌집 쑤셔놓은 듯 만들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 말이다.
 
그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브랜드 작명에서 일가를 이뤘으며 스스로 한국나전칠기박물관(박물관이라기보다는 매장에 더 가깝지만)까지 만들어 관장을 역임한 문화 전문가로서, 이 땅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초토화되는 모습을 보며 수없이 분통을 터뜨렸을 터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초선이지만 집권여당의 당명까지 작명하는(탈당 기자회견장에 당 원내대표를 들러리 세울 정도의) ‘실세 거물’로 단박에 부상하며, 거기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후반기부터는 간사)으로 활동하다 보니 이 참에 손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적잖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전칠기로 유명하면서도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는 통영에 나전칠기박물관을 지으려 했고, 버려진 역사(驛舍) 건물을 내로라하는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프랑스를 본받아 옛 서울역사를 공예박물관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목포의 일제시대 문화 공간을 문화재거리로 지정하고 내친김에 통영에서 실패한 나전칠기박물관을 목포에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지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이고, 그래서 사재를 털어 땅을 산 것이며,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기관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알아듣도록 설명한 뿐인데 무식한 언론들이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보도 아닌 ‘가짜 뉴스’까지 뿌려대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손혜원 의원. [뉴스1]

손혜원 의원. [뉴스1]

하지만 부캐넌 식으로 보자면 그것은 선한 의도에서 나온 이기적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손 의원은 결코 손해 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청을 높였던 사항에는 많은 부분 자신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남편과 조카, 지인들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들을 매입하고 6개월 뒤 열린 국회 교문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서 목포 목조주택에 대한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국정감사에서 남편이 운영하는 문화재단의 등기 이사인 나전칠기 장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도 그의 작품을 샀는데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현대 미술품을 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가 공예박물관으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옛 서울역사 옆 새 서울역사엔 그의 남편이 공예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 의원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국가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얼마만큼의 이득은 챙길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입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순수하게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가로수길에서 와인바를 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 조카에게까지 헌신을 강요하진 않았을 터다. 실제로 그의 지지자들은 대놓고 그런 주장을 한다.
 
홀대받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일깨우고,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문화 유산들을 지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국회의원이 나서서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인과 인연이 있는 장인들만 대접받고 특정인이 관심을 둔 유산들만 보존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역시 자신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기 마련인 피감기관 관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골적이면 더욱 그렇다. 그게 바로 공공선택론이 말하는 사적 이익이 개입된 정치적 의사결정이며, 요즘 말로 ‘갑질’인 것이다. 그런 부조리를 막고자 만든 것이 공직자의 이해충돌 금지 의무 규정이다.
 
사과를 하긴 했지만 손 의원은 이해충돌에 대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익충돌(conflict of profit))이 아니라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임을 모를 리 없는데 “이익 본 게 없으니 문제될 게 없다”면 답이 없다. 자신의 숭고한 뜻을 훼손한 것은 본인 자신이지 ‘가짜 뉴스’가 아니다. 그는 자신은 “정권 교체를 위해 정치권에 들어왔고 할 일을 다 했으므로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그가 이해충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런 고결한 뜻 역시 탈색되고 말 것이다. 정치를 그만두기 전에 한몫 챙기겠다는 소리로 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도덕성이 뿌리를 둬야 하는 곳은 양심이지 신조(dogma)가 아니다.” 우연하게도 부캐넌에 한 해 앞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말이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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