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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국가로 가는 대한민국

중앙선데이 2019.01.25 22:41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다. 이명박 정부 때 ‘전봇대 뽑기’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손톱 밑 가시 뽑기’에 실패하면서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는 일찌감치 암울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경쟁국들은 저만치 앞서갔다. 이젠 중국은 물론 동남아도 우리를 따돌리는 중이다.

혁신 실패한 비극적 운명
문재인 정부 들어 가속도

 
 
결국 우리는 좀비국가로 전락할 운명에 직면하게 됐다. 이게 무슨 말인가. 『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구태언)에 잘 나와 있다. “디지털 시장을 선점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는 결국 전 세계의 CPM을 장악하게 된다. CPM은 콘텐트(Content)ㆍ개인정보(Privacy)ㆍ돈(Money)을 의미한다. 한 국가가 특정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디지털 시장을 장악당하는 경우, 이 사업자가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로 인해 CPM이 해외로 빠져나가 좀비국가로 전락한다.”

 
 
이미 한국은 좀비국가나 다름없다. 구글ㆍ유튜브ㆍ넷플릭스ㆍ페이스북이 국내 디지털 산업생태계를 장악하면서다. 나도 하루에 한두 시간을 여기서 놀고 있다. 말이 노는 것이지 그 안에서 최신 정보를 얻고 새로운 일을 위해 재충전하며 세상과 호흡하고 있다.

 
 
이들 매체가 아니면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을 다룬 ‘아웃로 킹’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로마’를 어디서 봤겠으며, 아모르 파티를 열창하는 김연자의 백댄서를 자처한 방탄소년단의 동영상은 또 어디서 봤겠나. 아침마다 지인들이 보내오는 클래식 영상과 라라 파비안의 아다지오ㆍ카루소 같은 명곡 역시 마찬가지다. 이뿐인가. 구글에서 찾아낸 미하일 칼레츠키의 ‘국민소득분배론’은 소득주도 성장의 허구를 판단하는 데 큰 통찰을 얻게 했다. 이렇게 훌륭한 비서가 어디 있을까.

 
 
이들 플랫폼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 나의 취향을 귀신처럼 알아내 내가 좋아할 콘텐트를 수시로 추천한다. 우리는 이제 좀비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이들 거대 플랫폼에 내 개인정보가 넘어가고 구독료까지 내고 있으니 말이다. CPM이 해외로 빠져나갈수록 국내 방송ㆍ통신과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토종 플랫폼은 ‘로컬’로 전락한다.

 
 
문제는 CPM이 얼마나 빠져나가는지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ㆍ 유튜브ㆍ페이스북은 광고를 통해, 넷플릭스는 구독료를 통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겐 없는 것들이니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도 통용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에선 더 빠르게 좀비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ㆍ일본ㆍ중국 등 ‘4차 산업 선진국’은 물론 동남아ㆍ동유럽에서도 다 되는 공유차량ㆍ공유숙박ㆍ원격의료ㆍ빅데이터 사업이 한국에선 원천 금지다. 마차 보호를 위해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 들고 서행하게 했던 19세기 적기조례가 한국을 옭아맨 형국이다. 영화에 너무 몰입한 ‘넷플릭스 폐인’이 속출하는데 우리 국회의원들은 ‘유료방송 합산규제’ 부활로 토종 콘텐트 산업의 목 조르기에 몰두하고 있다.

 
 
규제가 모든 것을 가로막으니 신산업은 싹조차 틔우지 못한다. 그 결과 중국은 기업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 기업이 162개에 달하지만, 한국은 비바리퍼블리카 달랑 한 곳이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길이 막히자 일본에서 소니와 원격의료 사업에 나섰고, 게임회사 넥슨은 규제에 질식해 사업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게 좀비국가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선(先) 허용ㆍ후(後) 규제’ 방식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지난 17일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이다. 시행 첫날부터 카톡 고지서, 유전자 분석, 도심 수소충전소 설치 등 19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좀비국가에서 탈피하는 작은 밀알이 돼주길 기도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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