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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대신 선인장...조국 떠난 이민자, 김치는 지켰다

중앙일보 2019.01.25 08:00
1주일 해외여행만 떠나도 아쉬워지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하물며 해외에 뿌리내린 이민자가 김치를 포기할 수 있을까. 김치 수출이 이뤄진 19080년 초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 퍼진 한민족은 나름의 방식으로 전통의 맛을 이어나갔다. 정부출연연구소인 세계김치연구소가 중앙아시아·중국·중남미 동포들이 어떻게 김치를 소비하고, 이들의 정체성과 김치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분석했다. 이른바 ‘김치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나는 사람·집단의 이동)’다.
 

중앙아 고려인은 쓴맛 강한 암염 넣은 '짐치'
중남미, 정체성 위해 타바스코 넣어 만들기도

①중앙아시아-단맛 없이 짠 ‘짐치’
중앙아시아의 '짐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중앙아시아의 '짐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중앙아시아에사는 고려인의 대표 민족음식은 ‘짐치’다. 짐치는 김치와 뿌리가 같지만 한국 고추와 달리 단맛이 없고 맵기만 한 현지 고추를 사용한다. 또 한국 천일염과 달리 짠맛과 쓴맛이 강한 암염(巖鹽)을 넣고, 구하기 힘든 젓갈은 생략하거나 아주 조금만 사용한다. 짐치는 현지인이 즐겨 먹는 상채(향채·고수) 가루나 후추를 김치 양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김치보다 더 짜고 신 맛이 강하며 단맛과 깊은 맛은 별로 없는 편이다.  
 
1991년 중앙아시아 각국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 이후 고유의 김치도 현지에 상륙했다. 백태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인문대 교수는 “한국에 호감이 큰 고려인 신세대는 김치는 김치는 김치대로, 짐치는 짐치대로 즐긴다”면서 “우월성을 따지기보다 김치는 문화로, 짐치는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②중국 연변-고수 씨 갈아 넣은 양념
연변 조선족의 김치 문화는 함경도 김치와 흡사하다. 배추김치 외 갓김치나 영채 김치를 즐겨 담근다. 추운 연변지역에서 배추보다 키우기 쉬운 채소라서다. 갓과 영채는 그 자체의 향이 강해 연변의 조선족이 향이 나는 음식에 점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향이 강한 고수 역시 김치에 쓴다. 고수를 젠치 또는 젠채·젠추라 부르는데, 양념에 젠치씨를 갈아 넣는다. 
 
또 연변 김치는 소량의 새우젓 외에는 젓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추운 날씨 탓에 제철 채소를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일년 중 고작 3개월뿐인데, 젓갈을 넣은 김치는 빨리 쉬어 오래 두고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김치가 달고 구수하고, 깊은 맛을 중시하는 반면 연변 김치는 쨍하고 톡 쏘면서 아삭아삭한 맛을 최고로 친다.
 
③중남미-고춧가루 대신 타바스코 소스
 멕시코 유카탄에서 담가 먹는 쪽파 겉절이.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멕시코 유카탄에서 담가 먹는 쪽파 겉절이.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멕시코에서 먹는 양배추 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멕시코에서 먹는 양배추 김치. [사진 세계김치연구소]

20세기 초 농업 이민을 떠난 한인은 멕시코·쿠바·브라질·파라과이 등까지 뻗어갔다. 배추 자체가 없던 당시 멕시코 메리다에서 이들은 시들해진 양배추·호배추 잎을 따 김치를 담갔다. 손바닥처럼 생긴 노팔(nopal) 선인장을 가시만 쳐내고 나박나박 썰어서 각종 양념을 넣어 깍두기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 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이민 3세대의 경우 나박김치, 오이김치, 실란트로(향채·고수)를 넣은 깍두기는 물론이고, 래디시(빨갛고 뿌리가 동그란 무)로도 김치를 담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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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저자인 이자경씨는 제4회 ‘김치학심포지엄’에서 “중남미 한민족은 배추나 무 대신 선인장을 활용하거나 양념에 타바스코 소스를 써서라도 김치를 담가 먹는다”면서 “이런 애착은 자기 정체성의 빈칸을 채우려는 본능”이라고 설명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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