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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도 박근혜도···'깨알수첩'에 당했다

중앙일보 2019.01.24 11:27
2013년 2월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박근혜대통령이 참석한  제18대 대통령 취임 경축연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창희 국회의장, 박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2013년 2월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박근혜대통령이 참석한 제18대 대통령 취임 경축연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창희 국회의장, 박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이끈 '스모킹 건'으로 이규진(57·사법연수원 18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이 꼽힌다. 하급자가 받아적은 깨알 같은 메모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발목을 잡혔다.
 
"3년간 지시사항, 3개 수첩에 빼곡히 담겨"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 등이 2018년 8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중앙지법 최모 부장판사의 사무실 등지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차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 등이 2018년 8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서울중앙지법 최모 부장판사의 사무실 등지를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차에 싣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해 8월 20일 이 부장판사의 법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업무수첩 3권을 확보했다. 이 수첩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하던 이 부장판사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엔 전국 법원의 인사와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논의 내용이 빼곡히 적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에 파견된 판사와 공모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사건보고서, 재판관들의 서로 토론한 평의 내용 등을 수십 차례에 걸쳐 대법원 양형위원회 등에 이메일로 전달한 것으로 지목했다. 또 법원행정처가 소속 법관들을 동원해 상고법원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판사들을 사찰한 내용을 담은 문건을 삭제한 혐의 역시 적용했다. 이런 내용 역시 이 부장판사의 수첩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한다. 이는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주요 혐의들과도 일치한다. 
 
"'大(대)'는 대법원장, '長(장)'은 행정처장 지시"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앙포토]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앙포토]

특히 검찰은 수첩 곳곳에 적힌 한자 '大(대)'와 '長(장)' 두 개를 눈여겨봤다. 검찰은 '大(대)'로 표시된 부분은 양 전 대법원장, '長(장)'으로 표시된 부분은 법원행정처장의 지시사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나선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 부장판사의 수첩에 대해 "조작 가능성이 있다" "모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고 방어에 나섰다. '大(대)'를 추후에 써넣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수첩 곳곳에 한자가 적혀 있어 조작 가능성 적고 이 부장판사의 진술도 일관된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법원이 영장 발부 사유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적은 데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경우 이 부장판사를 접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판사 출신인 이정렬 변호사는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이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심복이라는 것은 법원 내에서 거의 다 알고 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이 이 부장판사한테 나중에 법정에선 (조작했다고) 그렇게 진술하라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게 바로 증거 인멸의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발목 잡은 안종범·김영한 수첩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018년 8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018년 8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도 두 사람의 수첩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나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다른 하나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이었다.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해 당시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은 '사초'라고 표현했다. 사초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작성된 국정 기록문서를 의미한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2년간 수첩 63권에 나눠 깨알같이 기록했고 이는 나중에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한 주요 근거 자료가 됐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이 날짜별로 빠짐없이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정윤회 문건' 사태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갈등을 겪고 청와대를 나온 김 전 수석은 이듬해 8월 간암으로 별세했다. 당시 김 전 수석의 노모는 아들이 남긴 비망록을 방 맨 안쪽 서랍에 두고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봤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의 노모는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겠다"며 이를 언론에 공개했고 이는 국정농단 수사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됐다.
 
김기정·정진호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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