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약 타오려고 주사까지 대신 맞았다는 시골마을 그 동생

중앙일보 2019.01.23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2)
빙판길로 변한 어느 주택가 골목길의 모습. 며칠 전 내린 눈길에 홀로살고 계시는 칠순 어르신이 미끄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빙판길로 변한 어느 주택가 골목길의 모습. 며칠 전 내린 눈길에 홀로살고 계시는 칠순 어르신이 미끄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중앙포토]

 
며칠 전 내린 눈길에 홀로 살고 계시는 칠순 어르신이 미끄러져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병문안을 가니 반가워하시며 내 손을 잡고 고마워하셨다. 나이 들어 넘어지면 황천행이라며 조심 또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그러면서 붙잡고는 신세 한탄도 하신다. 돈 모으느라 친구도 없이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신다. 그나마 당신 돈으로 병원비를 낼 수 있는 것을 위안 삼으셨다.
 
자식이 많아도 모두가 바쁘고, 이렇게 홀로 사시다가 아프시면 더 외롭고 더 서러우신가 보다. 나는 아직 그 나이가 안 되어 느낌이 안 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는 좋은 친구가 가까이 있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 살 적에 탈북인 부부가 이웃에 이사 와서 살았다. 이웃이라고 해도 500m쯤 가야 한 집 한 집 있는 독가촌이라 직접 방문하지 않으면 서로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휴대폰이 있으니 날마다 전화로라도 안부를 전하며 살았다. 얼마나 정이 많은지 사촌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농사일도 얼마나 잘하는지 지나가다가 우리 부부가 일하는 걸 보면 걸음을 멈추고 호미를 들고 앞서곤 했다.
 
농사짓는 동네의 겨울은 농한기라 대부분이 쉬는 날이지만 마음이 어수선한 날엔 무슨 일이든 잡히는 대로 일을 하는 게 마음의 잡념도 없애고 좋은 것 같아 일거리를 찾아 날마다 손발을 움직였다.
 
어느 날, 남편도 병원에 가 있고 혼자서 밭 설거지를 하던 중 눈길에 쫄딱 미끄러져 어깨와 허리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혼자서 오랫동안 추운 땅에 퍼질러 앉아 있다가 일어나 보니 걸을 수는 있기에 중상은 아닌 타박상인 듯했다. 삶의 모든 상황이 이래도 저래도 절망적일 때 몸까지 아프면 어느 땐 넘어진 그 자리에서 콕 처박혀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독하고 우울한 때도 있었다. 인생의 정상에 올라가 내려올 일만 남았다는 50대가 내겐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병원에 가려니 찻길까지 산길을 1시간 걸어나가야 해서 썰렁한 방에 누워 앓고 있으려니 아랫집 동생네 부부가 달려왔다. “에구~ 조심하시지 괜찮소?” 하면서 아궁이에 방구들이 들썩거릴 만큼 장작을 밀어 넣는 소리가 들렸다. 들락날락하더니 조금 있다가 또 방으로 들어온다. 손에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집에 달려가서 만들어 온 콩죽이란다. 콩이 어혈도 풀어주고 소화도 잘되니 한술이라도 먹으란다.
 
검은콩을 갈아 만든 검은콩 죽.어르신들에겐 가난한 한 끼의 상징이었던 걸쭉하고 고소한 콩죽. 그 희한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중앙포토]

검은콩을 갈아 만든 검은콩 죽.어르신들에겐 가난한 한 끼의 상징이었던 걸쭉하고 고소한 콩죽. 그 희한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중앙포토]

 
50년을 넘게 살면서 콩죽은 처음 먹어봤다. 70대 어르신들에겐 가난한 한 끼의 상징이었던 걸쭉하고 고소한 콩죽…. 그 희한한 맛을 어찌 잊겠는가? 지금 생각만으로도 그 고소한 맛이 생각나서 침이 고인다. 그러더니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갔다가 두 시간쯤 지나 또 들어왔다. 이번엔 약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언니야~ 내가 걸어서 보건소 댕기 왔소(보건소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다). 이 약 먹고 일어나오. 아프지 말라~ 아프면 나도 아프오.” 특유의 이북 사투리에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 “언니야~ 내가 넘어졌다고 하니 약은 제대로 잘 지었는데 주사도 맞고 가라잖소. 그래서 그건 내가 대신 맞았소. 헤헤.” 그 말에 얼마나 웃었는지 아픔도 다 사라진듯했다. 보험에서 알면 경을 칠 일이지만 그땐 그렇게 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앞집에서 칼국수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온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는 것도 모두가 이웃사촌들 덕분이다. 인정이 메마르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따뜻한 이웃이 더 많은 사람 사는 세상 아니던가. 오늘 이웃 어르신의 문병을 다녀오면서 그 동생네 부부가 생각나 안부 전화를 했다. 그의 반가운 목소리가 하늘만큼 맑고 높았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