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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한국서 창업하기, 정말 나아졌다고 믿나

중앙일보 2019.01.23 00:18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지영 산업2팀 팀장

최지영 산업2팀 팀장

한국 시간 21일 오후 9시, 지구 반대편 칠레 산티아고에서 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협회(GERA)가 리포트 하나를 발표했다. 54개 국가를 조사한 글로벌기업가정신연구(이하 GEM) 리포트다. 창업과 관련된 광범위한 지표의 국가별 순위를 매긴 거다.
 
정부는 오랜만에 고무된 듯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발표가 나오기도 전인 21일 오후 날쌔게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회형 창업은 전년 대비 4단계 오른 세계 4위, 생계형 창업은 4단계 내려간 27위로 창업의 질이 개선됐다”고 했다. ‘창업 관련 정부 정책 적절성’이 5위를 차지했다는 것도 강조했다. “다양한 정부 지원책과 민간의 창업 붐이 시너지 효과를 내 점차 국내 창업 생태계가 개선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까지 붙여서다.
 
일반성인 조사서 17개 지표 중 16개가 전년보다 좋아졌다, 전문가 조사서도 12개 중 6개가 개선됐고, 6개는 비슷한 수준이란 점도 강조했다. 정부가 아쉽다고 한 결과는 ‘창업에 대한 실패의 두려움’이 32.8%로 전년보다 0.6% 증가해 순위가 7단계 나빠진 것이 유일하다.
 
GEM 사이트에 22일 들어가 리포트 전문을 확인했다. 아주 조금 나아진 게 확인됐다. 정부 정책 적절성은 지난해보다 지수는 높아졌지만(5.76→6.14), 순위는 오히려 내려앉았다(4위→5위). 정부 정책 중 규제 분야 지수도 4.48→4.45로 0.03점 나아졌고, 순위는 1단계 올라갔다.
 
이런 조그마한 성취에 만족해야 하나. 중앙일보 신년기획 ‘규제 OUT’ 취재팀은 지난해 말 중국·동남아의 다양한 혁신 기업들을 만났다. 정부 규제가 아예 없었다(베트남), 한번 지원 대상에 선정되면 프로젝트를 바꾸라고 하면서 밀어준다(싱가포르),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 문제는 취업비자 등으로 정부가 해결해준다 (말레이시아), 정부 규제가 없어 중국 의사 230만 명 중 210만 명이 참여하는 24시간 의료상담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중국)…. 물론 ‘외국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굿, 한국 정부는 무조건 미흡’이란 시각도 패배주의적이다. 하지만 소소한 변화를 자화자찬하기엔 국내 경제 환경이 엄혹하다.
 
보도자료엔 빠졌지만, GEM 리포트에서 한국이 세계 1위를 한 분야가 있다. ‘긱(Gig) 이코노미(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단기 근로자를 채용하는 형태) 또는 공유경제에 참여하는 성인 비율’이다. 무려 21.5%로 관련 유니콘 기업이 버티고 있는 미국(10.8%), 이스라엘(12.3%) 보다 현저히 높다. ‘이용’이 아니라 ‘참여’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대표적 공유경제인 숙박공유·카셰어링은 일부 규제만 올해부터 풀리고, 카풀은 도입될 기미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창업 환경이 나아졌다고 위안해야 할까.
 
최지영 산업 2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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