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박린의 아라비안나이트] 바레인전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굿바이 기성용

중앙일보 2019.01.23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한국축구대표팀 기성용.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대표팀 기성용. [사진=대한축구협회]

“기성용 선수가 인터뷰 없이 조용히 (소속팀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22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기성용(30·뉴캐슬)은 떠나는 순간까지 한국 축구대표팀을 먼저 생각했다. 기성용은 21일 아시안컵이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를 떠나 소속팀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있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7일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던 그는 회복이 더디자 결국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했다.
 
지난 20일 대표팀 훈련에 앞서 미드필더 황인범(22·대전)은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는 성용이 형”이라고 말했다. 그때까지도 황인범은 기성용의 부상 상태를 잘 몰랐다. 그날 밤 대표팀 저녁 식사 자리에서야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감독이 선수들에게 기성용의 하차 소식을 전했다. 그 자리에 기성용은 없었다.
 
젊은 시절 천방지축이었던 기성용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후배가 가장 잘 따르는 팀 리더가 됐다. 2007년 콜롬비아전 승리 후 손흥민과 기쁨을 나누는 기성용. [양광삼 기자]

젊은 시절 천방지축이었던 기성용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후배가 가장 잘 따르는 팀 리더가 됐다. 2007년 콜롬비아전 승리 후 손흥민과 기쁨을 나누는 기성용. [양광삼 기자]

대회 직전 부상으로 낙마한 공격수 나상호(도쿄)에게 동료들은 사인 유니폼을 선물했다. 하지만 기성용은 21일 새벽 비행기로 조용히 떠났다. 기성용 측근은 “절친 이청용 정도에게만 ‘정말 정말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기성용은 지난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딸 시온(4)의 사진을 올리면서 ‘아빠 축구 뻥하고 30밤 자고 만나자’고 적었다. 다음달 1일 아시안컵 결승을 치르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3월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질주하는 장면.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북아일랜드 평가전에서 질주하는 장면. [연합뉴스]

사실 기성용은 지난해 6월 러시아 월드컵을 마친 뒤 대표팀에서 은퇴하려 했다. 몇 차례 수술받은 무릎은 그에게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통증이 심해 경기를 마친 뒤에는 얼음찜질을 해야 버틸 정도다. 기성용 측근은 “성용이가 티를 안내서 그렇지 무릎 상태가 악화한 지 꽤 오래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한국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기성용이 필요하다며 강력하게 대표팀 은퇴를 만류했다.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한이 남았던 기성용은 고심 끝에 벤투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기성용은 대표팀을 이끌고 2011년 아시안컵에서는 3위, 2015년 대회 때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 패배 후 주저앉은 김민우를 위로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전 패배 후 주저앉은 김민우를 위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명예롭게 대표팀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던 기성용은 지난 7일 필리핀과의 조별리그 1차전 후반 10분, 오른쪽 햄스트링에 통증을 느껴 그대로 주저앉았다.
 
기성용은 이후 열흘 동안 부지런히 재활 훈련을 했다. 지난 13일 운동화를 신고 러닝을 시작했고, 14일에는 축구화를 신고 테스트를 했다. 이청용(31·보훔)이 다가가 걱정스러워하며 “어때”라고 묻자, 기성용은 “많이 좋아졌어”라고 답했다.
 
기성용은 지난 18일 팀 훈련에 복귀했다. 하지만 기성용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골대를 향해 찬 롱킥은 크게 빗나갔다. ‘패스 마스터’란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킥이 부정확했고,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축구협회는 20일 “기성용은 19일 훈련 도중 다시 통증을 느꼈다. 재검 결과 대회가 끝날 때까지 경기에 나서기 어렵다고 판단해 소속팀으로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기성용을 돌려보내는 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경험 많은 기성용과 함께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이제 기성용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기성용의 롤러코스터 축구 인생
2007년 올림픽대표 시절 SNS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든지’라는 글을 남겼다가 논란이 됨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2어시스트)
2012년 스완지시티 이적, 런던 올림픽 4강
2013년 SNS에 최강희 당시 대표팀 감독 조롱
2013년 8세 연상 배우 한혜진씨와 결혼
2014년 10월부터 대표팀 주장 완장
2016년 중국 상하이 상강 연봉 220억원 제의 거절
2018년 6월1일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 가입
2019년 1월 아시안컵 햄스트링 부상으로 중도하차
2008년 9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기성용은 10년 넘게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중원의 키(key)’로 활약했다. 그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천방지축이었다. 2007년 올림픽 대표 시절엔 팬들이 경기력이 부진하다고 지적하자 인터넷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가서 뛰든지’라고 써 논란을 일으켰다. 2013년 7월엔 소셜미디어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최강희 당시 대표팀 감독을 향한 발언이었다. 이 때문에 팬들의 맹비난을 받았다.
 
기성용은 2013년 7월, 여덟 살 연상의 배우 한혜진 씨와 결혼한 뒤 한층 성숙해졌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마치 농구의 포인트가드처럼 경기를 진두지휘했다. 미사일처럼 정확하게 날아가는 롱패스는 그의 전매 특허다.
 
2014년 10월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뒤, 그의 책임감은 더 커졌다. 2016년 중국 상하이 상강으로부터 연봉 220억원에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난 대한민국 주장”이라며 당당하게 거절했다. 지난달 4일 영국 데일리 메일과 인터뷰에서는 “만약 전쟁이 난다면 조국을 돕길 원한다. 라파엘 베니테즈 (뉴캐슬) 감독님에게 ‘내 가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내일 돌아가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기성용은 부상으로 대표팀 하차가 정해진 뒤 소셜미디어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끝났습니다는 글을 남겼다가 지웠다.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글이다.[기성용 인스타그램]

기성용은 부상으로 대표팀 하차가 정해진 뒤 소셜미디어에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끝났습니다는 글을 남겼다가 지웠다.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글이다.[기성용 인스타그램]

 
기성용은 부상으로 대표팀 하차가 정해진 뒤 소셜미디어에 ‘THANK GOD. IT’S FINALLY OVER(하느님 감사합니다. 마침내 끝났습니다)’는 글을 남겼다가 지웠다.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글이다.
 
기성용은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뒤 주장 완장을 손흥민(27·토트넘)에게 넘겼다. 이제 대표팀 미드필더는 차세대 ‘중원 사령관’ 황인범이 맡았다. 기성용은 지난해 11월 황인범에게 ‘이제 (황)인범이한테 맡겨도 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공격수 황의조(27·감바 오사카)는 21일 바레인과의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성용이 형이 빠져 아쉽지만, 우승을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꼭 우승해서 성용이 형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출생: 1989년 1월 24일(광주)
체격: 키 1m89㎝, 몸무게 75㎏
가족: 아내 한혜진(38)씨, 딸 시온(4)
별명: 캡틴키, 기라드(기성용+제라드)
소속팀: 서울(2006~09), 셀틱(2009~12),
스완지시티(2012~18),
선덜랜드(2013~14 임대), 뉴캐슬(2018~)
A매치: 110경기(10골, 2008. 9.5 요르단전 데뷔)
 
두바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