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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 중 15등'이었던 학생, 학종으로 고려대 뚫었다

중앙일보 2019.01.21 13:48
[학생부 종합전형 돋보기]

톡톡에듀
중학교 하위권, 고교 때 학종으로 반전
고려대 사회학과 진학한 이재호 군
"연극부 열정이 대입 합격 지렛대"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학종)은 ‘금수저 전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학종은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가 주요 대학에 갈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입학 전형’입니다. 주요 대학이 가장 선호하는 입학 전형이 학종이기 때문입니다.  
 
“학력고사 때가 가장 공정했다. 그때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는 ‘스카이 캐슬’의 예서 엄마 같은 학부모도 요즘은 아이를 학종으로 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톡톡에듀’는 올해 학생부 종합전형을 다루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2019학년도 성균관대 논술을 마친 수험생이 고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19학년도 성균관대 논술을 마친 수험생이 고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중학교 때 중하위권이던 그는 어떻게 고려대에 진학했을까  


첫 회 주인공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2018 대입에서 고려대 사회학과에 진학한 이재호(20·사진)씨입니다. 중학교 시절 평범한 중위권 성적이었던 그는 고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기에 고려대 사회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27명 중 15등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27명 중 15등 정도였다. 중하위권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중학교 내신 성적에 따라갈 수 있는 학교가 달라졌다. 나는 시 외곽에 있는 화성 반월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한 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공부했는데도 못한 건 아니었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내가 짝사랑하던 여자애는 다른 학교로 갔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못한다면 또다시 커다란 기회를 잃을 것 같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고교 입학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첫 시험에서 전교 7등  
입학 전에 EBS 교재와 인터넷 강의로 고교 수학 과정을 스스로 공부했다. 기초가 부족하지만, 중학교 과정부터 시작하기보다는 고교 수학 과정을 부딪쳐보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해결하는 식으로 공부했다. 고 1 첫 시험에서 반에서 1등, 전교에서 7등을 했다. 전반적으로 학교 수준이 떨어져 좋은 성적을 거둔 측면도 있고, 겨우내 열심히 준비한 결과이기도 했다.  

 
학교생활에서 희망을 찾다  
중학교 때는 학교생활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고교 진학 후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의욕적으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부를 마치고 어둑어둑한 길을 걷는데 뭔가 해냈다는 마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희망에 부풀었다. 공부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검사가 되겠다’는 장래희망도 만들었다.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겼다.  

 
열린 마음으로 대회에 적극 참여
중학교 때는 표어 만들기에서 장려상 한 번 탄 게 전부였다. 그런데 고교에서는 4~5월에만 상을 3개 받았다. 우리 학교에는 여러 가지 대회가 있다. 내가 관심이 있는 대회는 물론, 관심이 없는 분야도 열린 마음으로 최대한 참석했다. 삼 년 동안 학력우수상을 포함해 상을 43개 받았다. 수상 몰아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정말 대회 하나하나마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대회에서도 의외로 배우고 얻는 게 많았다.  
 
수능 최저 뚫기 대작전  
내신은 어렵지 않게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고2까지 전국 단위 모의고사를 보면 국어·영어·수학 등이 4~5등급이었다. 고등학교라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밖으로 나가려면 다시 한번 도약이 필요했다. 수학은 스스로 공부하다, 친구 추천으로 잠시 학원에 다녔다. 그때 성적이 확 올랐다. 그러다 다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혼자 공부했다. 어느 순간 수학의 원리가 확 이해됐다. 고2 6월 모의고사는 60점이었는데, 12월에는 88점이 됐다. 고3 때는 내내 92점이었고, 수능까지 그 점수를 유지하며 1등급을 받았다.  

영어는 문법을 포기하고, 독해에 집중했다. 모르는 단어엔 밑줄을 긋고 외웠다. 처음엔 한 문단에 모르는 단어가 15개 안팎이었다. 수능 직전엔 3~4개로 줄었다. 88점으로 2등급을 받았다. 국어는 상대적으로 자신 있는 종목이었는데, 나중엔 도리어 벽에 부딪힌 것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2등급을 받았다. 탐구 두 과목은 1등급을 받았다.
 
대입 지렛대 된 연극 동아리 열정
화성 반월고 연극포스터

화성 반월고 연극포스터

비교과 활동 중 독서활동은 1학년 때는 소홀했다. 1학년 때는 4권을 읽었다. 2학년에는 14권, 3학년 때는 부랴부랴 27권을 읽었다. 한꺼번에 몰아서 읽는 것은 좋지 않지만,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외부 봉사활동은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필수 봉사로 81시간을 채웠다. 이 부분에서는 좀 게을렀다.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건 연극 동아리다. 1학년 말에 연극 동아리에 찾아갔을 땐 동아리가 와해 직전이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아서 무대에 공연을 올렸다. 공연에 성공한 후 연극 동아리 모두 너무 즐거워하며 곧바로 다른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2학년 때는 창작 극본으로 경기도 청소년 연극제에 나가 동상도 받았다. 이 수상 기록은 외부 활동이라 학생부에는 쓸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즐겁기 때문에 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 면접 때 연극 동아리 이야기를 했을 때 교수님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돈독한 관계 중요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선생님과 자주 이야기했다.  선생님과 어울리고 답을 구하는 게 즐거웠다. 선생님 중에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에 ‘아주 영특한 학생’이라고 써준 게 기억에 남는다. 자기가 한 활동을 스스로 잘 기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고1 때부터 내가 한 여러 가지 활동을 컴퓨터에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수시전형으로 고려대와 한양대에 합격  
서울대를 지역균형 선발로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그 밖에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경희대에 지원했다.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경희대에서는 탈락하고, 고려대와 한양대에 합격했다. 서울대 최종까지 갔는데 다른 학교에서는 일찌감치 떨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성적순으로 뽑는 게 아니라, 학교마다 자체 기준으로 학생을 뽑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학교별 순위가 뚜렷했지만, 앞으로 20년 후에는 어떤 학교가 얼마다 더 좋은 인재를 뽑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표는 대입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
친구나 후배에게 어떤 활동을 하자고 제안하면 "그거 생기부에 쓸 수 있어요"라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그럼 난 "생기부에 안 들어가면 안 할 거니"라고 되물었다. 대입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고교 시절을 보냈다. 우리 학교는 진학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극부 친구나 후배 중에 좋은 결과를 받은 경우가 많다. 당장의 이익이 없어도 뭔가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스카이 캐슬' 에 담긴 절반의 진실
‘스카이 캐슬’은 재밌게 보고 있다. 내가 경험한 것과는 달라 뭐라 말하기 힘들다. 같은 과 친구 중에 외고 출신이 많다. 나는 중학교 내신이 140점대인데 외고 출신 과 동기는 197점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이미 토익 900점이 넘긴 친구도 있다. ‘기초 통계학’ 등 학교에서 더 다채로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영어로 소논문을 썼다고 하더라.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와는 여건부터 달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학종은 이런 면까지 보면서 선발하는 게 아닐까.

 
몰입하면 길이 보인다  
고등학교에 막 올라가는 동생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공부하고 싶다면, 공부하라. 그러나 공부가 아니더라도 뭔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 좋겠다. 한동안 놀았더라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와서 공부하라. 공부를 시작하는 데에 늦은 시간은 없는 것 같다. 나도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게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한 달만 참자’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고3 즈음이 되고서야 책상에 앉는 게 편해졌다. 난 고교 시절을 생각하면 내 인생의 밝게 빛나는 섬이 떠오른다.  

 
다시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대학에 온 뒤 뮤지컬부에서 활동했다. 뮤지컬부 활동은 올해 3월까지 한 뒤 공부에 좀 더 전념할 생각이다. 요즘에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다시 깊이 생각하고 있다. 공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요즘 미적분 심화 과정이 담긴 고교 수학 교과서를 보고 있다. 교과서가 이렇게 정리가 잘 돼 있다는 걸 새롭게 느끼고 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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