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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삼성은 프로축구팀, 공무원은 조기축구회 같다”

중앙일보 2019.01.21 00:05 종합 8면 지면보기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19’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19’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인재원)은 인사혁신처 소속 기관으로 주로 5급 이상 신규 임용 공무원의 공직 가치, 리더십, 직무역량 향상 교육을 담당한다. 지난해 8월 관료나 교수 출신이 원장을 맡던 관례를 깨고 기업인 출신이 처음으로 수장에 임명됐다. 삼성전자에서 ‘고졸 임원’의 신화를 쓴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52) 원장이 주인공이다.
 

‘고졸 임원’ 출신의 공직사회 진단
삼성, 포지션별 최고로 팀 꾸려
공무원은 보직 옮겨다녀 문제
골키퍼 하다 공격수로 뛰는 격
여러 부처 돌되 전문분야 파야

CES 본 공무원 기술충격 고백
산업현장 접해야 공직 DNA 변해

취임 후 반 년. 첨단 기업의 혁신 현장에서 30년 이상 몸담아 온 양 원장은 삼성과 공직 사회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비교·평가하고 있을까. 지난 14일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9’ 참관을 마치고 돌아온 양 원장을 서울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양 원장은 공무원들이 두려움 없이 도전과 실패에 나서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인재원 내에 ‘퍼스트 펭귄’ 상을 만들었다. 지난달 말 열린 첫 시상식에서 공무원 교육 플랫폼을 국민에게 개방하는 아이디어를 낸 팀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양 원장은 부상으로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CES 관람 권한을 내걸었다. 그러고는 수상자와 개발직 공무원과 함께 3박6일 일정으로 CES 현장을 꼼꼼히 둘러봤다. 그는 “동행한 공무원 둘과 매일 저녁 리뷰 회의를 했다. 두 사람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세상을 모르고 가르치려 들고, 4차산업 혁명을 얘기해 왔다, 부끄럽다’고 했다”며 “거대 산업현장에서 세상의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는 공무원이 많아질 때 정부의 DNA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양 원장은 삼성과 공직사회의 가장 큰 차이로 인재를 키우는 방식을 꼽았다. 그는 “삼성은 업무의 세세한 단위까지 나눠 분야별로 세계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를 키운다. 공무원들은 자질이 매우 훌륭하지만 여러 보직을 도는 인사 시스템 때문에 제너럴리스트를 면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프로축구팀과 조기축구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프로팀은 포지션별로 최고 선수를 모아 팀을 꾸린다. 그러나 조기축구팀은 공격하다가 골키퍼로도, 미드필더로도 뛴다. 분야별로 ‘마스터’라 불리는 전문가를 키워내 그들 역량의 합으로 조직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삼성 방식이 공직사회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원장은 혁신에 나서는 태도에서도 삼성과 공직사회의 차이를 비교했다. 그는 “삼성에서는 10원짜리 물건을 만들기 위해 원가를 9원에 맞추라고 지시가 내려오면, 혁신적 마인드의 임직원들이 아예 발상을 바꿔 ‘왜 단가를 1원에 맞추지는 못할까’를 고민한다. 익숙한 모든 일을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 삼성 반도체가 용량은 키우면서 가격은 더 싸고, 전력 소모는 오히려 줄이는 패러독스를 실현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스페셜리스트들이 혁신 DNA를 발휘하면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혁신에 대해 능동적,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분위기가 공직사회에는 덜하다는 생각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그는 “공직사회가 혁신에 미온적이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해법도 내놨다. 현재 공무원 인사 방식은 ‘한 부처 안에서 여러 부서를 맴도는’ 식으로 이뤄진다. 양 원장은 이를 ‘여러 부처를 돌며 한 가지 업무만 맡는 방식’으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공무원 직무군을 ▶IT·산업 ▶외교·국방 ▶국토·환경 ▶재정·경제 ▶사회복지 ▶교육·과학 등 7~8개로 나눈 뒤, 예를 들어 IT 담당자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부처를 돌면서도 IT 한 분야만 맡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과거 대한민국은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이 발전을 견인했다”며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뉴테크노크라트가 등장해야 정부가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이 한 가지 업무를 오래 맡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부패의 문제에 관해서는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일벌백계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국가 운영 시스템이 더 고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직사회가 전문가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면 ‘무슨 자리를 맡느냐’라는 ‘비(Be)이즘’ 보다 ‘무슨 일로 기여하느냐’라는 ‘두(Do)이즘’이 확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무원들의 관심사는 오직 어떤 자리로 가야 승진에 도움이 되느냐에 있다”며 “전문성을 우대하는 두이즘이 비이즘을 압도할 때 승진에 목매는 현상이 사라지고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한때 ‘무노조 경영’을 해 오던 삼성 출신으로서 고용 유연성에 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우리 사회는 고용 유연성을 기업에 해고 권한을 주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며 “발상을 바꿔 기업이 각 업무 분야별로 스페셜리스트를 키워내면, 이들은 외부에서 항상 스카우트 대상이 되고 오히려 직무 안정성(Job Security)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든 데려가고 싶은 인재로 성장하면 더 큰돈을 벌 기회를 갖게 되므로 노조도 장려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해고 문제에 관해서는 “기업이든 공직사회든 1만 명 중 한 명, 0.0001%는 해고 가능한 원칙을 둬야 한다”며 “이들에게 능력에 맞는 다른 일을 찾아주는 게 최고경영자(CEO)의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조도 철밥통을 요구하기보다는 조합원의 ‘성장’이 결과적으로 조합원과 조직 모두의 ‘생존’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기업도 건강해진다”고 덧붙였다.
 
양향자 원장
전남 화순 출신으로 광주여상을 졸업한 뒤 1986년 삼성반도체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학업을 병행해 2008년 성균관대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에 오른 뒤 2016년 정치권으로 옮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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