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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읍을 옮기는 일은 세가대족(世家大族)들이 함께 싫어하는 바이므로, 이를 중지시키려는 것이다. 재상(宰相)은 송경(松京·개성)에 오랫동안 살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즐겨하지 않으니, 도읍을 옮기는 일은 경들도 역시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왕조가 바뀌고 천명을 받는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기게 마련인데, 내가 계룡산(鷄龍山)을 급히 보고자 하는 것은 친히 새 도읍을 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태조실록』 2년 2월 1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당면한 가장 큰 고민은 새 도읍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즉위 한 달만인 1392년 8월 천도를 지시했지만 좀처럼 진척이 없었습니다. 풍수를 맡아보는 선운관(書雲觀)들과 중신들은 옛 고려의 수도인 개경만한 길지가 없다는 대답만 내놓을 뿐이었습니다.
“고려 태조가 송산(松山) 명당(明堂)에 터를 잡아 궁궐을 지었는데, 중엽 이후에 임금들이 여러 번 이궁(離宮)으로 옮겼습니다. 명당의 지덕(地德)이 아직 쇠하지 않은 듯하니, 그대로 송경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태조실록』 3년 8월 11일)
고려 왕조의 기득권층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키려는 이성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1라운드: 계룡 vs 한양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금강일대. 풍수지리에서는 이 모양을 반궁수 혹은 배류수라고 본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금강일대. 풍수지리에서는 이 모양을 반궁수 혹은 배류수라고 본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당초 후보는 충남 계룡이었습니다. 현재 3군사령부가 있는 자리입니다. 이성계의 지시로 기초공사까지 벌였지만 9개월만에 중단됐습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당대 풍수도참(風水圖讖)의 대가로 통했던 개국공신 하륜이었습니다. 그의 반대 논거는 이랬습니다. “도읍은 중앙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쳐 있고, 수파장생(水破長生)이기 때문에 도읍을 건설하기엔 적당하지 않습니다.”(『태조실록』 2년 12월 11일)
 
수파장생(水破長生), 즉 (금강의) 물이 (나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장생(長生)’의 기를 꺾어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신라 말 고승 도선이 들여온 풍수도참설은 여전히 영향력이 컸습니다. 하륜의 조언으로 새 도읍지는 한강 이북으로 돌려졌지만 논쟁은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북악산과 안산(鞍山) 중 어느 곳을 주산(主山)으로 삼을 것이냐를 두고 천도 논쟁은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됩니다.
 
2라운드: 무악 vs 북악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모습.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은 지금의 연세대 일대를 조선의 궁궐터로 점찍었다.[홈페이지]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모습. 조선의 개국공신 하륜은 지금의 연세대 일대를 조선의 궁궐터로 점찍었다.[홈페이지]

“무악은 산과 물이 모여들고 조운(漕運)이 통하지만 터가 좁고 뒷산이 낮아서 도읍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길지라면 옛사람이 어째서 쓰지 않았겠습니까.” (성석린)
“무악이 좁다고 하나 경주나 평양의 궁궐터에 비하면 좁지 않습니다. 나라의 중앙에 있고 조운이 통하며, 산과 강이 균형을 이뤘으니 궁궐터로 적당합니다.” (하륜)
 
계룡에 이어 두 번째 후보로 떠오른 지역은 무악(母岳), 즉 서대문구 안산 일대였습니다.
조선의 신 수도를 한강 이북으로 되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하륜은 지금의 연세대가 자리잡은 안산 일대를 주목했습니다. 삼각산-인왕산-안산으로 이어지는 산세의 흐름이 좋고, 한강과 인접해 조운(漕運)에 유용하고 중국과의 무역에도 유리해 상업적 활용도가 높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왕의 스승으로 불리던 고승 무학대사와 성석린 등 관료들이 반대했습니다. 안산 일대는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가 약하고 도성으로서 부지도 좁다는 이유였습니다.
 
남산쪽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중앙포토]

남산쪽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중앙포토]

논쟁만 길어지자 이성계는 답답했는지 음양산정도감(陰陽刪定都監)까지 만들었습니다(태조 3년 7월). 요즘 말로 풀이하자면 ‘신 수도 선정을 위한 풍수지리 TF’ 정도로 불릴만한 국왕 직속 임시기구입니다. 풍수도참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다르니 여기서 끝장토론을 하라는 의미였죠. 이런 과정을 통해 새 도읍이 들어설 곳은 안산이 아닌 북악산 인근으로 결정됐습니다.
 
야사에 의하면 당시 이성계는 정도전, 무학대사 그리고 서운관(書雲觀)들을 데리고 무악산에 올랐는데 한 서운관이 “무악은 나라를 도적질 할 사람이 사는 기운을 가진 땅”이라고 평가절하했고,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무악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고도 합니다.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유동근) [사진 KBS]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유동근) [사진 KBS]

 
3라운드: 인왕 vs 북악    
“낙산은 좌청룡으로 삼기에 부족하니, 왕조의 기틀이 흔들릴 것이 우려됩니다. 반드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과 남산을 좌우의 청룡백호로 삼아야 합니다” (무학대사)
“제왕이 남쪽을 바라봐야지, 어찌 동쪽을 보고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중국의 모든 황제들이 궁을 모두 남향으로 지은 데는 이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정도전)
 
결국 북악산 일대에 도읍을 정하기로 했지만 이번에는 궁궐을 짓는 구체적인 위치를 두고 3라운드 논쟁이 펼쳐집니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과 무학대사 간에 의견이 갈렸습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 북악산을 좌청룡, 목멱산(지금의 남산)을 우백호로 궁궐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아야 인왕산(우백호)과 낙산(좌청룡)이 좌우를 호위할 수 있어 도읍을 삼기에 안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도전의 의견대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경복궁은 남향이 되지만 좌청룡(낙산)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픽=조혁 디자인 인턴]

정도전의 의견대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경복궁은 남향이 되지만 좌청룡(낙산)이 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픽=조혁 디자인 인턴]

 
무학대사의 의견대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좌청룡(북악산)의 기운은 강력하지만 경복궁이 동향이 된다. [그래픽=조혁 디자인 인턴]

무학대사의 의견대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좌청룡(북악산)의 기운은 강력하지만 경복궁이 동향이 된다. [그래픽=조혁 디자인 인턴]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무엇보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해야 궁궐을 남향(南向)으로 배치할 수 있다. 임금은 남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정도전의 명분에 힘이 실렸습니다. 무학대사의 말대로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으면 궁궐은 동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악산 주산론’에도 약점은 있었습니다.
우백호인 인왕산에 비해 좌청룡인 낙산(현재 동숭동 일대)의 산세가 너무 약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2년 전 서울시는 ‘2025 도시환경정비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사대문 안에 높이 90m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높이 제한을 90m로 결정한 이유가 바로 낙산의 높이였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양도성을 둘러싼 내사산(북악산ㆍ인왕산ㆍ낙산ㆍ남산) 중 낙산이 가장 낮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낙산과 좌청룡ㆍ우백호의 짝을 이루는 인왕산은 해발 332m에 달합니다.
낙산공원 일대 한양도성길 [중앙포토]

낙산공원 일대 한양도성길 [중앙포토]

 
우백호의 기운이 좌청룡보다 강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좌청룡이 약하면 장자(長子), 정통 계승자가 약해진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개성은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막힌 형세라 권신들의 발호가 많았던 반면 한양은 북서쪽 우백호가 높고 남동쪽 좌청룡이 낮아 맏아들인 장자가 잘 되지 못하고 차남 이하 아들이 잘되어 오늘날까지 임금과 재상, 거경(巨卿. 높은 벼슬아치)은 장남 아닌 사람이 많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결정한 정도전도 이 문제가 영 찜찜했던 모양인지, 한 가지 안전장치를 달았습니다. 바로 낙산이 위치한 흥인문(興仁門ㆍ동대문)의 현판에 ‘지(之)’를 하나 추가해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고 적은 것입니다. 갈 지(之)‘자는 산의 모양과 비슷합니다. 이것을 추가해 낙산의 약한 기운을 보충하려고 한 것이죠.
 
동대문 [뉴스 1]

동대문 [뉴스 1]

[유성운의 역사정치]
‘좌청룡 징크스’에 시달린 조선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제1차 왕자의 난 [사진 SBS]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제1차 왕자의 난 [사진 SBS]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도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27명의 왕 중에서 정상적으로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경종 7명에 불과했습니다.
일단 이성계의 맏아들인 이방우(진안대군)부터 세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위화도회군 후 이성계의 새 왕조 건국의 움직임이 노골화되자 이에 반발하면서 강원도 철원으로 숨어버렸습니다. 꼬여버린 왕위계승 문제는 제1ㆍ2차 왕자의난이라는 피바람으로 이어졌고, 셋째 이방과(정종)와 다섯째 이방원(정안대군)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 [사진 쇼박스]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장면. [사진 쇼박스]

이방원(태종)은 분쟁의 싹을 자르기 위해 일찌감치 맏아들(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것은 셋째 아들(세종)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2년만에 병사한 문종, 삼촌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된 단종을 비롯해 20세에 급사한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 조선 최악의 폭군 연산군, 동생(광해군)에게 축출된 임해군, 모친 희빈장씨의 사건 여파로 시름시름 앓았다는 경종,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등 맏아들을 둘러싼 왕가의 비극은 차곡차곡 쌓입니다.
 
한편 정도전이 좌청룡(낙산)이 약한 ‘북악산 주산론’을 밀어붙인 데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 차천로의 수필집 『오산설림초고』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도전이 무학의 말이 옮음을 알지 못함은 아니었지만 다른 마음이 있어 듣지 아니한 것이다.” 다른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 소개 [사진 SBS]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 소개 [사진 SBS]

정도전은 국왕중심제가 아니라 신하들의 합의에 의해 정국이 주도되는 형태를 선호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내각제 스타일이죠. 좌청룡이 약해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국왕의 권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선 풍수적 관점에서 벗어나 경복궁의 위치 선정엔 보다 현실적인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궁궐을 지키기 위한 방어 목적으로서 탁월하기 때문이죠. 북악산을 비롯해 인왕산, 낙산, 남산, 안산 등이 사방을 겹겹이 둘러싸고, 남쪽 아래엔 한강이 막고 있어 군사가 쳐들어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도성 안을 보더라도 지금은 사라진 삼청동천과 백운동천이 경복궁의 좌우로 흐르고 있어 청계천과 함께 궁궐을 둘러싸는 자연적 해자(垓字)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도인 '동여도東輿圖'에 수록되어 있는 '도성도都城圖'. 경복궁을 둘러싼 물길이 잘 나타나있다. 경복궁 왼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백운동천, 오른쪽이 삼청동천이다. 이 두 하천은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 [사진 사울역사박물관]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도인 '동여도東輿圖'에 수록되어 있는 '도성도都城圖'. 경복궁을 둘러싼 물길이 잘 나타나있다. 경복궁 왼쪽으로 흐르는 물길이 백운동천, 오른쪽이 삼청동천이다. 이 두 하천은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했다. [사진 사울역사박물관]

'천하산천도(한양도)' 1778년(정조 2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도성을 둘러싼 산과 하천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한양은 방어하기에 용이한 자연적 지형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천하산천도(한양도)' 1778년(정조 2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도성을 둘러싼 산과 하천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한양은 방어하기에 용이한 자연적 지형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경복궁의 위치를 결정한 정도전이었지만 사실 천도 계획에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성계가 재상들에게 천도 후보지를 적어서 내라고 했을 때 정도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은 음양술수(陰陽術數)의 학설을 배우지 못하였는데, 여러 사람의 의논이 음양술수를 벗어나지 못하니, 실로 말씀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청하옵건대, 평일에 배운 바로써 말하겠습니다. 주(周)나라 성왕이 관중(關中)에 도읍을 정하고, 30대 800년을 전했습니다. 주나라는 11대손 평왕 때에 449년 만에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고 진(秦)나라 사람이 관중에 자리잡았습니다. 주나라는 30대 난왕(赧王)에 이르러 망하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이로써 보면 주나라의 운수는 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지리의 성쇠(盛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태조실록』 3년 8월 12일) 
 
청와대는 풍수적으로 불길?
조선의 도읍을 둘러싼 논쟁이 떠오른 것은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4일 대통령 관저를 광화문 일대로 옮기는 것을 보류한다고 발표했을 때입니다. 유 위원은 “관저의 풍수상 불길한 점을 생각할 때 옮겨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수많은 근거가 있다”라고만 답했습니다. 사실 하야·쿠데타·탄핵 등 각종 어두운 말로로 이어진 대통령의 전례 때문에 흔히 청와대의 풍수 문제가 거론되곤 합니다. 실제로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사옥이나 집을 고를 때 풍수적 고려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유홍준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 자문위원이 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청사 이전 보류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홍준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 자문위원이 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청사 이전 보류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더라도 국가의 공식적 설명자리에서 풍수 운운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인식이라면 청와대가 점성술로 올해 경제전망을 알아보거나 거북이 등껍질이 불에 갈라지는 형태를 보며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요.
청와대의 공간적 문제점은 풍수지리라기 보단 극도의 폐쇄성일 것입니다. 경복궁과 북악산으로 사방이 가로막혀 일반 국민들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 마다 청와대만 들어가면 민심과 멀어진다는 얘기를 듣기 일쑤였습니다.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에서 내려다본 경복궁 전경 [중앙포토]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에서 내려다본 경복궁 전경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긴다는 공약을 내놨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포기하고 말았죠. 하지만 애초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청와대가 풍수적 측면이 아니라 대국민 소통의 관점에서 좋은 대안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조선의 쇠망은 풍수때문이 아니라 외부 변화에 눈감은 지도층의 무능, 그리고 민심의 이반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 기사는 김흥순 『조선 개국 초 한양 천도 논쟁』, 이태진 『漢陽 천도와 風水說의 패퇴』, 정해은 『조선초기 도성의 위상과 도성방어론』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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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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