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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가 김창숙은 왜 민족대표 33인에서 빠졌을까?

중앙일보 2019.01.19 13: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40)
성균관대 총장 시절 교수들과 함께 한 김창숙. [사진제공 서울 심산기념관]

성균관대 총장 시절 교수들과 함께 한 김창숙. [사진제공 서울 심산기념관]

 
100년 전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서는 알려진 대로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선포됐다. 33인은 천도교와 기독교‧불교 등 당시 종교계 지도자들이었다. 여기에 유교를 대표하는 유림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까닭일까. 유림은 이후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민족 대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을 통탄한다.
 
그러나 유림이 처음부터 민족 대표에 제외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에 비타협‧불복종으로 맞섰던 유학자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당시 민족 대표로 거명이 됐다. 그런데 왜 최종 명단에는 빠졌을까.
 
심산은 ‘벽옹(躄翁)’이란 별호로도 불리었다. ‘앉은뱅이 노인’이란 뜻이다. 일제의 고문으로 두 다리를 못 쓴 것이다. 김창숙은 ‘벽옹73년회상기’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거기에 독립선언서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고향 경북 성주에 머무를 때다.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있는 김창숙의 생가. [사진 송의호]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사도실 마을에 있는 김창숙의 생가. [사진 송의호]

 
1919년 2월 심산은 선배인 성태영(成泰英)이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받는다. 성태영은 당시 양심적인 지주로 젊은 인재를 지원하며 애국 사업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편지에는 “광무 황제의 인산(因山)이 3월 2일 거행된다. 그때 국내 인사들이 모종의 일을 일으키려 한다. 자네도 곧바로 서울로 와서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쓰여 있었다.
 
모친 병환으로 늑장 상경, 독립선언서 서명 못 해
경북 성주군 성주읍 군청사 왼쪽에 있는 심산기념관 안 추모관. 초상화는 김창락 화백이 그렸다. [사진 송의호]

경북 성주군 성주읍 군청사 왼쪽에 있는 심산기념관 안 추모관. 초상화는 김창락 화백이 그렸다. [사진 송의호]

 
자서전은 다음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나는 그때 친환(親患)이 있어 감히 슬하를 떠나겠다고 아뢰지 못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즉시 상경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어 심산은 그믐께 비로소 서울에 들어가 성태영을 만난다. 성태영은 “자네 걸음이 어찌 그리 더딘가.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참이고 자네는 연대 서명할 기회를 잃었으니 한스럽다”고 했다.
 
이튿날이 3월 1일이었다. 손병희 등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한다. 김창숙은 그 글을 읽고 통곡했다.
“우리는 유교의 나라였다. 유교가 먼저 망했기 때문에 나라도 망했다. 지금 광복 운동은 3교의 대표가 선도하고 있다. 유교는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제 세상은 유교를 꾸짖고 썩은 선비와 일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우리가 이 나쁜 이름을 덮어썼으니 이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김창숙이 중심이 돼 추진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유림의 독립 호소문인 파리 장서. [사진제공 서울 심산기념관]

김창숙이 중심이 돼 추진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유림의 독립 호소문인 파리 장서. [사진제공 서울 심산기념관]

 
그때 옆에 있던 김정호(金丁鎬)가 “자네는 통곡만 하지 말고 부끄러움을 씻을 방법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심산은 눈물을 닦으며 사과한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나도 자네도 모두 유교의 죄인이다.”
 
 
심산이 대안을 밝힌다.
“손병희 등이 선언문을 발표해 국민을 고취했지만 국제적인 운동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손병희 등과 협력해 파리 평화회의에 유림 대표를 파견해 국제 여론을 환기해 독립을 인정받도록 하자. 거기서 우리가 독립을 인정받는다면 유림도 광복 운동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직후 김창숙의 주도로 곽종석‧이만규 등 전국의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한 독립 호소문이 ‘파리 장서(長書)’다. 이 장서는 이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전해졌으며 일제는 대대적으로 서명자 검거에 나선다. 이른바 ‘제1차 유림단 사건’이다.
 
경북 성주군은 올해부터 대가면 칠봉리 김창숙의 생가 건너편에 심산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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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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