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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더 민주적? 글쎄…”

중앙선데이 2019.01.19 00:34 619호 4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100년 - 최장집·박상훈 대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와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최근 중앙SUNDAY와 베버 강연 100년을 맞아 대담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왼쪽)와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최근 중앙SUNDAY와 베버 강연 100년을 맞아 대담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100년 전 독일은 존망의 기로에 섰다. 제1차 대전에서 패망했으며 제정은 붕괴됐다. 신생 공화국 곳곳에선 폭력이 난무했다. 혼란의 와중 한 학자가 학생들의 초청 강연에 응했다. 1919년 1월 28일 그간 사유했던 정치의 정수(精粹)를 공유했고 이는 책으로도 발간됐다. 막스 베버, 그리고 『소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정치)』다.

최장집 교수
100년 전 독일과 한국 유사성
촛불은 다원적 요구 분출인데
권력, 분산되기보다 정점에 집중

박상훈 학교장
문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처럼
반정치적 신념 가진 건 아닌지 …
청와대 중심, 내각·국회에 훈시

 
베버 강연 100년을 맞아 중앙SUNDAY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제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최장집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 형태로 2011년『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발간했었다. 둘은 당시 독일과 지금의 한국 상황이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박 학교장은 특히 3·1운동 100년과 비교하며 “통치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혁명이나 운동, 민족 열정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 없다면 정치적 이성을 생각하는 베버와 같은 정치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베버는 당시 ‘귀족은 더 이상 국가를 통치할 능력이 없고 부르주아는 귀족의 방해로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갖지 못했고, 농민과 도시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 구조 결함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베버라면 지금의 한국 정치를 어떻게 규정할까.
최장집=“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을 건설한 건 보수 세력이다. 1960~70년대 산업화는 엘리트랄까 부르주아 그룹을 형성시키고 성장시키는 전환점이었지만, 내용적으로 이 세력이 자유주의적인 대체 세력으로 성장했던 것도 아니다. (특히) 민주화 이후엔 젊은 세대,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들이 역시 ‘사회를 이끌 능력을 가졌느냐’ 스스로 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베버는 정치에서 책임성·객관성 결여를 질타했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키워드인 ‘내로남불’은 객관성에 대한 지적이겠다.
박상훈=“객관성은 의견에 따라서 달라지는 판단이 아니라 누구의 눈에도 합리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사실에 대한 판단이다. 정치는 누구도 사실을 독점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다뤄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소 본인이 제창해 왔거나 주장했던 것의 정당성을 손상 받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관점이 저는 많았다고 생각이 든다.”

최장집=“베버는 책 마지막 부분에 책임 윤리와 신념 윤리를 말한다. 나는 베버의 텍스트를 읽을 때 책임 윤리가 더 초점이라고 생각했다. 신념 윤리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도 얘기할 수 있다. 사실을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이해해 어떻게 실현할까 노력하는, 자기 대의를 실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책임 윤리는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 가치중립성이 아니면 구현될 수 없는 윤리의 측면이라고 이해한다. 우리나라엔 이 측면이 굉장히 부족하거나 결여돼 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한다.”(※신념 윤리는 옳다고 굳게 믿는 걸 우선시하고,책임 윤리는 행위가 유발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보는 윤리다.)
 
현 정부는 ‘선한 의도’를 강조하곤 한다.
박상훈=“좋은 의사나 의도, 선한 목적을 갖고 하는 것 자체가 정치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갖는 건 아니라는 게 베버의 요체다. 가치나 신념으로서의 정당성은 여러 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장집=“아무리 좋은 정치 체제라도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넘어설 수 없다고 베버는 보고 있다. 권력의지라고 할까, 이거를 인간의 본질적 측면으로 보고 있다. 지금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개인 윤리와 정치 윤리를 같은 차원에 놓고 사용하고 있다. 개인이 다 착하고 선하고 이러면 정치도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를 잘하는 문제는 선한 사람이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란 걸 인식하는 게 정치의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에 비해 정당은 약하다.
박상훈=“대통령이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부를 운영하지 않고는 어떤 민주적 변화도 불가능하다. 국회와 국민을 대립시키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좋지 못한 모델이었는데 왜 반복하는지…. (반대)세력을 처벌하고 처벌을 통해 새 사회나 새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건 정치의 방법이 아닐 거라고 본다. 보수·진보 차이가 있지만, 정치를 운영하는 방법에서는 문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처럼) 전형적인 반정치적 신념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금 정부가 박근혜 정부보다 진보적이라는 건 맞다고 생각하지만 더 민주적이냐고 물으면 그건 긍정적으로 답하는 게 힘들다.”

최장집=“기본적으론 의회가 민주주의의 대표 기구다. 우리나라에는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저해 요소 중 하나는 의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대통령 권력과 대통령 권력을 집행하는 관료에 대한 의존과 신뢰가 훨씬 더 크다. (의회와 대통령의) 두 힘 중 먼저 고려할 게 의회의 힘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밑에서부터 기반을 갖는다.”

박상훈=“대통령이 청와대 중심으로 내각에 훈시하고 국회에 훈시하고 정당에 훈시하면서 실제 민주 정부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 정부가 진보적인지, 그런 신념이라도 지킬 수 있는지도 자꾸 회의적이 된다. 이 정부는 또 본인들이 통치권을 위임받을 때 했던 공약을 너무 우습게 안다. (공약의) 껍데기만 남아 있고 실제로는 공약을 안 지켜도 되는 절차와 방법을 자꾸 익혀 가고 있는데 이는 매우 큰 문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공약을 통해) 어떤 통치 엘리트들이 필요한가를 결정하고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 정부에서도 민주적인 정부운영이 갖는 가치가 여전히 최소화돼 있다.”
 
현 정부는 촛불정부란 의식도 강하다.
박상훈=“촛불 체제는 두 가지가 특징적이었는데, 사적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과 특정한 정견만 가진 동질적 시민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종의 사회적 대연정 체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촛불이 (현 정부에 의해) 특정한 신념과 관점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점유될 수 있는지…, 그게 늘 궁금하다.”

최장집=“촛불 시위는 권위주의적 권력행사를 통해 사회의 다원적 요구나 발전을 억압하는 구조였기에 그에 반하는 열정이 일시에 분출한 현상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현 정부에 의한) ‘청와대 정부’는 촛불시위가 요구했던 큰 시민적 요구를 잘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권력이 분산되기보다는 아주 정점으로 집중되고, 다른 기구들의 역할이 제한되거나 한정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다.”
 
100년 전 독일과 달리 우리 사회에선 사회경제적 갈등 못지않게 남북 갈등도 크다.
최장집=“경제적 분배와 성장의 문제는 앨버트 허시먼의 이론을 빌리면 ‘나눌 수 있는(divisible·서로 양보해 타협할 수 있는)’ 갈등이고 남북 문제는 ‘나눌 수 없는’ 갈등이다. 경제 문제는 기본적으로 나누는 것을 통해 해결하고 접근해야 한다. 남북 문제의 경우 데탕트의 힘에 굉장히 이율배반적 자기모순적 측면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남북 관계에서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문제에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가 이성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도록 틀과 조건을 만들어내는 게 정부의 리더십이라고 본다. 남북 관계도 베버의 관점처럼 사실주의적·현실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박상훈=“민주주의 하에선 사회경제적 갈등은 커져야만 하고 커지는 게 사회를 통합하고 평화롭게 관리하는 방법이고, 민족 문제나 외교적인 것에선 갈등이나 균열이 커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 남북관계에서 집권당이나 집권세력이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회는 말할 수 없이 적대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수파들도 (남북관계에선) 협력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진보적인 사람도 성과를 독점하려고 해선 안 된다.”
 
박 학교장은 보수 정치 세력을 향해서 “보수도 노사관계 등 이런 쟁점에서 본인들이 어떤 방법으로 경제를 운영할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Max Weber said…
“정치 영역에서 궁극적으로 두 종류의 치명적 죄악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결여와 책임성의 결여다.”
 
“정치가에겐 다른 무엇보다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이다. … 균형적 판단은 내적 집중력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자 달리 말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은 (대의라고 하는)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선한 것이 선한 것을 낳고 악한 것이 악한 것을 낳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차라리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실로 정치적 유아에 불과하다.” 
 
탐사보도팀=고정애·하준호 기자 ockham@joongang.co.kr
베버(1864~1920)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의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이다. 정치·경제·사회·역사·종교 등 학문과 문화 일반에 대해 두루 조예가 깊었다. 대표작으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쉰의 나이에도 참전, 야전병원에서 근무했다. 1919년 1월 바이마르공화국 최초의 총선에 출마해 낙선한 경험도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또는 소명으로서의 정치)’ 강연 때 베버는 “10년 후 이 문제에 우리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 6월 56세의 나이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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