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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 철거 후 뚫린 좁은 오솔길, 머잖아 평화 순례길 되길

중앙선데이 2019.01.19 00:25 619호 10면 지면보기
[박신홍의 人사이드] 서주석 국방부 차관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남북 군사합의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인터뷰 도중 ’확고한 경계 태세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남북 군사합의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인터뷰 도중 ’확고한 경계 태세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2018년은 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해였다. 판문점과 평양에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싱가포르에선 첫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특히 군사 분야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를 철거하고 이를 상호 검증하기 위한 오솔길을 뚫은 게 대표적이다. 이는 대북 제재로 인해 경협 등 다른 분야가 속도를 조절하는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군이 유독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난해 정상회담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결과물로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의 실질적 이행을 꼽는 이유다.
 

GP 폭파
군사 대치 상징 철거 상상 못했던 일
남북 양쪽서 지뢰 제거하며 길 뚫어

북한 반응
늘 약속 안 지켜 처음엔 이행 의구심
김정은 결심하자 오히려 더 적극적

안보 논란
합참 검토 거쳐 미국과도 결과 공유
앞으로는 비핵화 진전 상황도 고려

올해 계획
DMZ 유해 발굴에 미·중 참여 기대
북 장사정포 위협 해소도 논의할 것

남북한의 군이 이처럼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많은 국민의 우려처럼 대북 군사방위 태세가 약화될 소지는 없는 것일까. 서주석 국방부 차관과 마주한 것도 이 같은 궁금증 때문이었다. 서 차관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확대 개편된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에서 군비통제분과위원장을 맡아 GP 폭파 등 남북 군사합의 이행 실무를 총괄해 왔다. 지난 15일 국방부 청사에서 그를 만나 지난해 군사 분야 성과에 대한 평가와 올해 추진 계획 등을 들어봤다.
 
 
북이 먼저 “GP 한꺼번에 폭파” 통보
 
지난해 11월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 개설 작업 중이던 남북 장병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 개설 작업 중이던 남북 장병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9·19 군사합의 두 달 만에 GP가 폭파됐다.
“DMZ 평화지대화는 1970년대 유엔사가 북측에 제안한 이후 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7년 10·4 공동선언에서도 언급됐지만 한 번도 이행되진 않았다. 그러니까 북한이 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엔 합의뿐 아니라 실제로 다 이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뜻깊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남북 대치의 상징인 GP 파괴는 과거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올해 남북 공동 유해 발굴과 공동경비구역(JSA) 자유 왕래까지 성사되면 전쟁의 상흔을 씻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추진된 건가. 누구 아이디어였나.
“평창 겨울올림픽 때 특사가 오간 게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을 하더라도 당장은 제재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제재와 무관한 부분부터 추진하기로 했고 그중 하나가 한반도 평화 정착이란 카드였다. 당시 한·미 정상 간 통화도 기폭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가 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가 비핵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판문점 선언의 큰 틀이 잡히게 됐다.”
 
북한이 선뜻 합의할 거라 예상했나.
“전혀. 사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에도 실제 진전이 될까 확신하진 못했다. 과연 북한이 동의할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만나 보니 오히려 더 적극성을 띤 적도 적잖았다. 과거엔 2박3일간 입씨름하는 게 당연시됐는데 이번엔 서로 입장을 밝히곤 바로 헤어진 뒤 문서 교환으로 세부 사항을 확정했다. 북한이 변한 이유가 뭔지 많이들 궁금해하던데, 아마도 북한의 체제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고지도자가 두 차례나 선언에 담았으니 따르지 않을 수 있었겠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통 크게 돌파하지 않으면 다시 어려운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거다. 실무자들도 이런 방향 전환에 공감하는 분위기였고. 이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본다.”
 
GP 철거도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GP는 최고의 긴장감이 감도는 지역 아닌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총을 쏘는 곳이다. 게다가 11개씩 시범 철거해도 북쪽엔 여전히 150여 개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 최대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굴착기로 부수기로 했는데 갑자기 북한이 한꺼번에 폭파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비무장화를 하려면 흔적조차 없애야 한다는 취지였다. 깜짝 놀랐다. 상호 검증도 난제였다. 검증 과정에서 서로의 방어 전략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아예 길을 뚫자고 했더니 북측도 순순히 동의하더라.”
 
남북 병사의 오솔길 악수 사진이 화제였다.
“가운데 점을 찍고 깃발을 꽂은 뒤 양쪽에서 지뢰를 제거하며 길을 뚫었다. 1㎞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워낙 험지인 데다 한 번도 난 적이 없던 길을 새로 만들다 보니 정말 쉽지 않은 난공사였다. 그렇게 긴장과 충돌의 현장에 새 역사의 오솔길 11개가 뚫린 거다. 앞으로 이 비포장길이 다져질수록 남북 평화도 단단해질 것이다. 지금은 비록 좁은 오솔길이지만 머잖아 평화의 순례길이 되는 날이 오지 않겠나.”
 
 
주적 삭제, 국방 목표 더욱 분명히 한 것
 
지난해 11월 20일 북한이 중부 전선 GP를 폭파하는 모습. [사진 국방부]

지난해 11월 20일 북한이 중부 전선 GP를 폭파하는 모습. [사진 국방부]

하지만 남북 군사합의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비판의 목소리 또한 끊이질 않는다. “이러다 우리 방위 태세만 허술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잖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위장 평화 공세에 동조함으로써 우리의 안보 역량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 차관은 “우리 군의 경계 태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이행 과정마다 합동참모본부의 작전성 검토를 거쳤다. 군사적 측면에서 혹여나 대비 태세가 약화되는 건 아닌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진 거다. 그 결과는 유엔사는 물론 미국과도 늘 공유했다. 예를 들어 GP가 철거되더라도 GOP(일반전초) 감시 태세는 변함이 없다. 그에 따른 경계 태세 보완책도 세웠고 이를 위해 올해 예산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만약 합의 이행으로 경계 태세가 약화됐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다. 오히려 북한이 더 힘든 상황일 거다.”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 대해서는.
“(지도를 놓고 설명하며) 군사합의 당시 서해 완충수역을 설정하면서 우리가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북한은 그동안 공식적으로 NLL이란 단어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공동선언에 ‘NLL 일대 평화수역화’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갔다. 완충수역을 최대한 넓히자고 주장한 것도 우리쪽이었다. 대동강 어귀에 초도라는 섬이 있는데 평양 초입이라 전략적 요충지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는 여기도 넣자고 했고, 북한이 과연 받을까 싶었는데 받았다. 앞으로 평화수역과 공동 어로구역 설정 때도 NLL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게 우리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NLL은 양보한 적도, 포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핵화보다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닌가.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목표다. 동시에 지난해에는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는 역할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남북 긴장 완화가 가시화될수록 남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비핵화와 그에 따른 항구적 평화 정착에 대한 확신도 커지지 않겠나. 다만 앞으로는 비핵화 진전 상황도 충분히 고려하면서 진행해 나갈 생각이다.”
 
북한에 또 속는 것이란 비판도 적잖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북한이 정말 또다시 속임수를 쓰는 거라면 우리 정부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많은 국민까지 실망시키게 될 거고, 그러면 북한은 더욱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될 거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대한 입장은.
“한·미 연합훈련 조정이 동맹 약화나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데 한·미 동맹 강화와 주한미군 계속 주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한도 공개적으로 철수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넘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유지될 거다. 독일이 그런 케이스다. 통독 과정에서 옛 소련군은 철수했지만 미군은 지금도 남아 있지 않나. 종전선언이 철수 논란을 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오는데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는 별개로 군사적 뒷받침을 위한 한·미 공조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북이 주적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사실 국방백서에 주적이란 표현을 쓰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우리 주권과 영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은 다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방의 목표를 더욱 분명히 한 거다. 여기에 북한도 그렇게 하는 한 적이라는 뉘앙스의 설명을 곁들였다. 과거엔 북한 위협 대비가 군의 가장 큰 존재 목표였지만 이젠 전방위 안보 위협으로 대상을 확대할 때가 됐다. 우리 국민을 위협하는데 정치적으로 친구니까 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주적이란 표현을 빼도 국방 대비 태세는 전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JSA 안보 관광 43년 만에 재개
 
GP 완전 철거와 공동 유해 발굴 계획은.
“이미 남북이 모든 GP를 철거하기로 합의한 만큼 올해도 작업은 계속될 거다. 다만 역사적 유적이란 의미에서 몇 곳은 보존하자는 요구가 있어 검토 중이다. DMZ 내 공동 유해 발굴은 다음달까지 공동 발굴단을 구성하고 10월 31일까지 발굴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워낙 치열하게 전투한 지역이라 미군과 중국군 유해도 다수 묻혀 있다 보니 미·중 양국도 유해 발굴에 관심이 많다. 남북뿐 아니라 미·중이 함께 발굴 작업에 나서면 한반도 긴장 완화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JSA 내 민간인 자유 왕래도 관심사다.
“이미 비무장화 조치는 완료됐고 현재 남북한과 유엔사가 새로운 근무수칙을 협의 중이다. 최대한 빨리 민간인 자유 왕래가 실현되도록 할 거다. 안보 관광 활성화도 기대된다. 사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에는 민간인 방문객이 북측 JSA까지 자유롭게 넘나들곤 했다. 그때는 가운데 금이 없었다. 그게 43년 만에 재개되는 셈이다. 한강 하구의 민간 선박 자유 항해도 4월부터는 가능할 전망이다.”
 
또 다른 히든카드가 있나.
“국민이 느끼기에 핵과 미사일 다음으로 큰 위협이 북한 장사정포다. 남북 간 적대행위 금지 원칙에 따라 장사정포 위협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의 계획은.
“대학 때부터 외교사에 관심이 많았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비스마르크도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철혈재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통일 이후에는 ‘전쟁 없는 평화’가 그의 신조였다.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데는 모든 국민이 같은 생각일 거다. 평화가 정착돼야 통일도 가능하지 않겠나. 그 방안을 학자·관료·전문가들과 끊임없이 모색해 나갈 생각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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