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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한국형 원전 'APR+'의 운명

중앙선데이 2019.01.18 16:20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APR+’를 아십니까. 생소한가요. ‘APR1400’은 들어 보셨겠죠. 한국형 원자로의 이름입니다.  APR은 ‘Advanced Power Reactor’의 첫 말을 따온 것입니다.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원자력발전소 4기가 APR1400 원자로로 구성됐습니다.  2009년 12월 국제 공개입찰에서 프랑스, 일본 등을 누르고 순수한 국산 기술로 낙찰받은 한국 원전 기술의 상징입니다.  
 
APR+는 APR1400의 형뻘 되는 원자로입니다. APR1400의 성능을 향상한 APR+는 전원이 끊겨도 3일간 버틸 수 있고, 핵 원료가 녹아도 원자로를 침수시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원래 2027년쯤 준공될 천지 1ㆍ2호기, 대진 1ㆍ2호기 원전에 적용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서 건설을 취소했습니다. 경북 울진에 짓기로 한 신한울 3ㆍ4호기 건설계획도 같이 백지화했습니다.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에 따른 결정입니다.  
 
2017년 10월 15일 신고리 원자력발전 5,6호기 계속건설과 중단여부를 판단할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2박 3일 종합토론회 폐막식 장면.

2017년 10월 15일 신고리 원자력발전 5,6호기 계속건설과 중단여부를 판단할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의 2박 3일 종합토론회 폐막식 장면.

신한울 3ㆍ4호기는 APR1400 형인데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건설이 확정됐고 이후 설계와 부지 조성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최근 건설 재개를 주장한 원전이 신한울 3ㆍ4호기입니다. 송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탈원전 정책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중장기 에너지 믹스(mix)ㆍ균형 정책은 필요합니다”라고 썼습니다. 화력발전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 발전은 장기간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원전 기술의 가치를 따지면 고민은 더 깊어집니다. APR1400의 기술력으로 수출의 물꼬를 텄다면 APR+로는 더 많은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습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원전시장에서는 APR+급 213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각고의 노력으로 개발한 기술마저 국내에서 쓰지 못하는데 수출하겠다고 나선다면 설득력이 있을까요.  
 
일부에서는 원전 6기 건설계획을 백지화한 건 2017년에 벌인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 조사’결과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공론화위 논의를 거쳐 정리했는데 왜 뒷말이 나오느냐는 지적입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17년 10월 20일 국무총리에게 제출한 공론화 결과 보고서의 ‘정책권고안’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재개▶원자력발전 축소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 전환▶세부실행 계획 추진(원전 안전기준 강화, 신재생 에너지 비중 늘리기 위한 투자 확대, 사용 후 핵 원료 해결 방안 마련) 입니다(95~97페이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에너지 정책을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권고는 있지만 이게 원전 6기 건설 백지화의 의미라고 주장하는 건 과잉해석입니다. 더구나 당시 국무총리 훈령을 보면 공론화위 발족 목적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탈원전 전반에 대해 논의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송 의원은 오래된 원전을 정지시키고 신한울 3ㆍ4호기를 건설하는 걸 헌 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원전을 확대하지 않으면서 신규 원전을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고, 기술인력과 생태계도 지키면서, 수출 경쟁력도 지키자는 주장입니다. 
 
1977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되면서 국내에서 원전시대를 열었습니다. 건설 주체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였습니다. 이후 한국의 과학자ㆍ연구자들은 외국 선진 기술을 베껴가면서 기술을 익혀 2005년 한국표준형원전 ‘OPR(Optimized Power Reactor)1000’을 개발했습니다. 이게 3세대 원전인 APR+로 진화했고, 지금은 4세대 원전인 ‘I(Innovative) Power’로 발전하는 중입니다. 
 
반세기 동안 연구자들이 피와 땀을 쏟았습니다. 국민은 세금을 내 뒷받침했습니다. 이렇게 이룩한 기술 성과를 미래 청사진 없이 방치하는 게 맞는 것일까요. 탈원전 여부는 한칼에 결론 낼 사안이 아닙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금이 국민 공론화 조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딥러닝(Deep Learning)의 아버지로 불리는 일본 퍼지논리시스템연구소 후쿠시마 구니히코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AI(인공지능) 지각생이 되지 않기 위한 전략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후쿠시마 박사는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데 기여한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처럼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기초 연구에 일관된 투자를 해야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말의 울림이 우리 사회에 전달되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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