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쿄에도 있다, 짜장면 먹으며 한국TV 볼 수 있는 미용실

중앙일보 2019.01.17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3)
외국살이, 타향살이의 외로움, 쓸쓸함. 굳이 외국이 아니더라도 태어나서 자란 곳을 떠난 사람이라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유학일 수도 있고 직장생활일 수도 있다. 나처럼 국제결혼을 해서 고국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상시는 외국의 언어와 문화, 일상생활에 적응하느라 향수병에 걸릴 여유조차 없이 지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나 일본이나 한국에서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나 휴일을 맞으면 갑자기 내 집과 고향이 그리워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도 밀려오는 외로움을 어찌해 볼 수가 없어진다. 지난 12월 하순에 접어들었을 즈음, 도쿄 우에노(上野)에서 한국 미용실을 경영하는 김옥심 원장 카톡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이날을 위하여 케이크를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다. 송년회의 분위기를 띄워줬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진 양은심]

이날을 위하여 케이크를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다. 송년회의 분위기를 띄워줬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진 양은심]

 
“원장님, 올해도 떡 먹으러 가도 돼요?”
“올해도 송년회 하나요?”
외로운 사람들이 고향의 맛을, 고향의 정을 찾는다.
 
내가 이 미용실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7년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자기도 제주도 사람이라며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나는 외국 생활이 길어서인지, 제주도나 한국 사람이라 해서 무작정 반갑고 심장이 뛰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 원장은 제주도 사람, 한국 사람에게 약하다. 정이 많다. 2018년 봄, 둘째 아이 대학입시를 마치고 드디어 ‘도쿄 우에노 한국미용실’을 찾았다.
 
“언니, 짜장면 불러 드릴까요? 짬뽕도 맛있어요”
깜짝이야. 미용실에서 음식을 불러서 먹다니. 한국인이 한국인 미용실에서 컬쳐 쇼크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미용실 커피는 익숙하지만 짜장면이라니. 일본인 사회에 젖어있던 나는 그녀의 한국 사람다운 붙임성에 주춤거리면서도 싫지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일본 미용실을 다니던 중이어서 한국식 커트에 만족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으나, 그녀는 세 번 정도 커트하는 사이에 내 머리통 모양과 취향을 잡아내었고 지금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다음은 내 머리를 가지고 놀아 보라 할 참이다.
 
외국에 살다 보면 한국과는 다른 커트 방식이나 유행 때문에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사진을 보여줘도 일본 미용실에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은 하기는 어렵다.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머리를 하곤 했었는데 커트 방식이 다르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일본 미용실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2016년 우에노에 미용실을 개업한 김옥심 원장. 세상은 연말이라고 들썩이고 새해를 맞는다고 들떠있는데, 커트하러 오는 한국인 유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은 한국에 가지도 못하고 쓸쓸히 지낸다는 소리를 듣고 송년회를 차렸다고 한다. 외로운 사람끼리 떡이라도 같이 먹자고 시작한 것이 3년째를 맞이했고, 연례행사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젊은이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커트하러 오는 어른들에게도 미리 떡을 준비했다가 대접한다.
 
취향에 맞게 마시라고 준비한 맥주와 음료수들. [사진 양은심]

취향에 맞게 마시라고 준비한 맥주와 음료수들. [사진 양은심]

 
올해는 귀향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다. 그런데 카톡이 울리는 것이다. "떡 먹으러 가도 돼요?"라고. 김 원장은 미리 공지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하기로 했다. 떡 서너 종류, 약밥, 김밥, 잡채, 족발, 수육, 귤 등. 나는 가족들과 일본의 그믐날 풍습인 도시코시소바(年越し蕎麦/해를 넘기면서 먹는 소바)를 준비해야 해서 낮에 갔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귀가했다.
 
감사와 격려차 꼭 참가하겠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생활 25년을 넘긴 나는 설이나 추석이라고 해서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일은 없다. 이곳에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가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용실 송년회는 단체나 기관에서 하는 모임과는 성격이 달랐다. 참가자들의 거리가 가깝다. 친척 누나처럼 이모처럼 고모처럼 삼촌처럼, 조카 같은 젊은이들의 외로움을 녹여주려 애쓴다. 조금 일찍 일본에 와서 자리 잡은 사람, 일본회사에 취직해서 적응 중인 사회 초년생, 유학생들.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김옥심 원장을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작은 모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명절에는 빠질 수 없는 떡들. 신주쿠에 있는 떡집에 주문하여 배달 온 것이다. [사진 양은심]

명절에는 빠질 수 없는 떡들. 신주쿠에 있는 떡집에 주문하여 배달 온 것이다. [사진 양은심]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머리 손질하러 온 손님들끼리 소소한 대화와 덕담이 오고 간다. “떡 드시고 가세요” “떡을 먹어야 복 받지” 이런 말들이 이처럼 따스한 말이었던가. 
 
이 미용실에서는 스포츠 관전도 한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때는 커다란 TV를 들여서 응원했다. 송년회 날은 ‘불후의 명곡’이 분위기를 띄워 주었다.
 
무엇 하나 공짜가 없는 일본이어서인지 회비는 얼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회비는 없다. 순수하게 김옥심 원장이 준비하는 것이다. 송년회의 의미에 찬동하여 찬조금을 내는 사람도 있다.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품으려 하고 외로움을 덜어주려 하는 그녀의 심성이 한없이 고맙다. 그녀에게 말한다. “너 있지, 얘네들 도쿄 엄마 해라”라고.
 
한국의 설날 2월 5일은 일본에서는 그냥 평일이다. 정월을 보내고 일상생활에 익숙해진 시기이다. 설인지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외국살이라는 게 그렇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먼지알지 런칭 이벤트
공유하기
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