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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 걷어찬 이승우, 손흥민도 천번 흔들려 어른이 됐다

중앙일보 2019.01.17 06:35
1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후반 손흥민의 상대 반칙으로 쓰러진 뒤 괴로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후반 손흥민의 상대 반칙으로 쓰러진 뒤 괴로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11월1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씨를 만났다. 당시 독일프로축구 함부르크에서 뛰던 스무살 손흥민에게 주려고 책한권을 선물로 준비했는데, 우연히 만난 아버지에게 전달했다.

박린의 아라비안 나이트
손흥민, 2011년 아시안컵 때는 울보
2019년 혹사논란 딛고 조1위 16강행
14억명 중국인들 절망에 빠뜨려
무릎보호대 던진 이승우 논란

 
제목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였다. 흔들리면서 한뼘씩 성장해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후, 함부르크-뒤셀도르프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손흥민은 “책을 잘 받았다”고 했다.
2012년 뒤셀도르프 에스프리 아레나 믹스트존에서 만난 손흥민. 뒤셀도르프=박린 기자

2012년 뒤셀도르프 에스프리 아레나 믹스트존에서 만난 손흥민. 뒤셀도르프=박린 기자

 
앞서 2011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 현장에서 지켜 본 손흥민은, 그  당시만해도 어린 아이 같았다. 손흥민은 일본과 4강전 후반 38분에 교체투입됐지만 승부차기 패배를 막지 못했다. 경기 후 기성용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 [중앙포토]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손흥민. [중앙포토]

8년이 흘러 2019년 1월17일.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서 만난 손흥민은 ‘진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손흥민은 이날 중국과 조별리그 3차전에 선발출전해 2골에 관여하며 2-0 완승을 이끌었다. 
 
‘혹사 논란’은 손흥민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앞서 잉글랜드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은 지난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치른 뒤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틀만에 다시 경기에 나섰는데도 손흥민은 전반 12분 노련한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쿨하게 황의조(감바 오사카)에게 키커를 양보했다. 손흥민은 후반 6분에는 자로잰듯한 정확한 코너킥으로 김민재(전북)의 헤딩 추가골을 도왔다. 
 
손흥민은 14억명 중국인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마치 ‘축구 도사’처럼 중국수비진을 농락했다. 설렁설렁 뛰다가 기어를 변속하듯 1단→2단→3단으로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중국선수들은 이날 옐로카드를 4개나 받으면서 소림축구를 펼쳤는데, 손흥민은 거친 파울에 수차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섰다.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후반 손흥민이 장린펑의 반칙으로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후반 손흥민이 장린펑의 반칙으로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경기 전날 의무진이 흥민이의 근육상태를 체크했는데 괜찮더라. 특히 본인이 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주장으로 책임감이 엄청나다”고 귀띔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손흥민에게 ‘빡빡한 프리미어리그 박싱데이와 지금 중 언제가 더 힘든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손흥민은 “계속해서 박싱데이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건 지금도 제게 꿈같은 일입니다. 코치진과 동료들이 제가 피곤할까봐 걱정을 많이 해줬어요. 제 결정이었습니다. 저만 고생하는게 아니잖아요. 다른 선수들도 더운날씨에서 고생하는데, 책임감을 갖고 돕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에이~ 그게 무슨 도움인가요. 다른 선수들이 잘해서 도움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데”란 말도 남겼다.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탈락한 뒤 눈물을 펑펑 쏟았다. 2014년 독일 레버쿠젠 시절에는 거친태클을 한 상대선수와 멱살을 잡고 다툰적도 있다. 그렇게 시련과 상처를 견뎌가며 진짜 어른이 됐다.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 [뉴스1]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승우. [뉴스1]

반면 이날 중국전에서 공격수 이승우(21·베로나)는 돌발 행동을 했다. 이승우는 이날 코너킥 부근에서 최선을 다해 몸을 풀었다. 하지만 후반 35분경 마지막 교체출전선수로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호명됐다.
 
이승우는 벤치로 걸어가면서 물병과 수건을 차례로 걷어찼다. 벤치에서는 정강이보호대를 내던졌는데, 그 모습을 파울루 벤투 한국 감독이 지켜봤다. 벤투 감독은 2011년 포르투갈 사령탑 시절 팀의 기강을 깬 카르발류와 보싱와를 대표팀에서 빼버렸다.
 
이승우는 이번대회 3경기 연속 벤치만 지켰다. 대표팀 합류 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6경기 연속 선발출전하면서 몸상태가 좋았다. 벤투 감독이 자신을 뽑아 놓고 기회를 주지 않으니 속상할만하다.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승리한 뒤 손흥민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알 나얀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승리한 뒤 손흥민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팀이 조1위로 16강에 진출한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전 승리를 이끈 골키퍼 조현우(대구)도 벤치를 달궜다.
 
경기 후 기성용(29·뉴캐슬)은 “승우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는 됩니다. 경기에 못나가서 아쉬움이 클거에요. 아직은 어려서 그래요.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잘 타이르고 이야기해볼게요”라고 말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이승우의 축구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도 2017년 20세 이하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40m 드리블 골을 터트린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승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흥민이 형도 천번 흔들려 어른이 됐다고.  
 
아부다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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