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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송영길의 난’에 깔린 의미들

중앙일보 2019.01.17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818호. 송영길(4선·계양을) 의원실에는 요즘 매일 수십통 넘는 전화가 걸려온다. “시원하다. 계속 그렇게 나가라”가 7할, “여당 중진이 대통령 발목 잡으면 어떡하나”가 3할이라고 보좌진은 전한다.
 
지난 닷새 동안 송영길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줏단지 모시듯 해온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에 두 번이나 태클을 걸었다. 그동안 여당 내에서 대통령 입장에 다른 목소리를 낸 의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어디 감히” 한마디 하면 빛의 속도로 얼어붙었다. “조국 수석은 사직이 올바른 처신”이라 했다가 청와대의 ‘레이저빔’을 맞자 침묵모드로 전환한 조응천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송영길은 달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신한울은 다 정리된 문제”라고 일축하자 하루 만에 ‘미세먼지’까지 들고나와 재반박 메시지를 날렸다. 원고지 22장 분량의 장문이다. ‘충심의 제안’이란 제목부터 자극적이었다. 청와대는 즉각 “미세먼지는 탈원전과 무관하다”고 대응했다. 이른바 ‘문빠’들도 ‘송영길 배신자’ 문자 폭탄 투하에 나섰다. 그만큼 아팠다는 방증일 수 있다. 송영길은 인터뷰를 극구 피하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워낙 많은 매체가 인터뷰를 원해 택한 고육지책”이라 했다. 급한 김에 그에게 물었다.
 
왜 이런 목소리를 냈나.
“송 의원이 현 정부 1년 반 동안 북방경제협력위원장과 동북아평화협력 특별위원장을 지냈지 않나. 북한과 동북아에 가장 절실한 게 전기다. 만나본 전문가마다 ‘원전을 유지해야만 수요를 맞춘다’고 하더라. 그런 고언을 경청한 끝에 내놓은 소신이다. 이목을 끌려고 던진 벼락치기 발언이 아니다.”
 
청와대가 일축하면 침묵하던 민주당 관습을 깼다.
“옳은 소리 했는데 청와대가 ‘이놈!’한다고 입을 닫아버리면 뭐가 되겠나? 그런 염려 때문에 반박 메시지를 낸 거로 안다. 그리고, 솔직히 억울하다.”
 
뭐가 억울한가.
“한 달 전까지 문 대통령 보좌관을 하던 문미옥 과기정통부 차관이 중앙일보(11일 자) 인터뷰에서 ‘탈원전은 대선 전후 선명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구호로, 많이 나간 표현’이라고 했지 않나. 송영길 말과 뭐가 다른가. 그런데 청와대 사람 말은 문제 안 삼고 송영길 말만 ‘어깃장’이라며 욕하느냐. 아군끼리 이러면 안 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문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들면서 철옹성 같던 민주당의 ‘침묵 카르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송영길뿐 아니라 박영선(4선·구로을)·정성호(3선·양주)·우상호(3선·서대문갑) 등이 청와대나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송영길의 반기는 주목된다. 4선 중진으로 두 차례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두 번 다 친문들의 조직적 ‘비토’로 물을 먹었다. 그 결과 비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내년 총선에 ‘물갈이’ 대상으로 컷오프될 우려가 생겼다. 한데 문 대통령이 3년 차 들어 불통 논란 속에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회생 가능성이 열렸다. 급소는 ‘탈원전’이었다. 미세먼지 탓에 산업계를 넘어 주부들까지 탈원전을 반대하게 되자, 이 분야를 남달리 공부해온 송영길에겐 큰 도박을 걸어볼 빅카드가 된 것이다.
 
송영길은 586이지만 친북 일변도인 다른 586 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그의 사무실엔 태영호의 책 ‘3층 서기실의 비밀’이 수십권 꽂혀있다. 태영호와 카톡도 자주 한다. “김일성은 기껏 보천보 주재소 습격이 ‘항일’업적의 전부다. 청산리·봉오동 대첩에서 일본군 수천 명을 척살한 김좌진, 홍범도 같은 민족주의자들이 진짜 항일 영웅이다. 민족주의자들이 세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김일성의 북한을 압도한다”가 그의 지론이다.
 
그는 또 전남 고흥 출신으로 광주에서 고교를 나왔다. 전국 호남 향우회와 끈끈하다. 일정부분 호남을 기반으로 청와대의 실정을 공격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낙천 칼날을 맞을까 봐 떨어온 비문 민주당 의원들이 송영길을 중심으로 뭉칠 여지도 커진다. 때마침 전대협 후배인 임종석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뒀으니, 청와대와 각을 세운다고 특별히 미안할 일도 없어졌다.
 
새해 벽두에 송영길이 문 대통령의 ‘천기’인 탈원전에 두 번이나 반기를 든 배경이다. ‘송영길의 난’을 필두로 친문이 독주해온 여권 판을 뒤흔들려는 비문들의 공세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엔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송영길을 ‘장사 안되니까 언론 플레이로 튀어보려는 미꾸라지’쯤으로 간주하고 ‘마이웨이’를 계속하면 제2, 제3의 송영길이 속속 튀어나올 수있다. 집권 3년 차 자연현상이다. 문 대통령이 이런 여권의 원심력을 막는 길은 단순하다. 국민 여론을 경청해 잘못된 정책이라면 바꾸고 부족한 정책은 보완하는 것이다. 최근 취재한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고언들은 이렇다. “우리는 정의, 저들은 악이란 이분법을 이젠 버려야 해요. 그 독선 때문에 법안 통과율이 제로예요. 제로. 그리고 여당 의원들 청와대랑 얘기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게 안되니까 언론 플레이가 나오는 거 잖아요.”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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