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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소득 불평등 최고”라는 가짜뉴스

중앙일보 2019.01.17 00:18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했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명백한 가짜 뉴스를,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말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언론이 이 말의 오류를 지적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마디 해명도 없다.
 

대통령이 직접 읽어
모르고 했나, 알고 했나

우선 사실부터 따져보자. 소득 불평등은 일반적으로 지니계수로 비교한다. 숫자가 작을수록 불평등이 덜하다. 유엔인간개발보고서 2018년 판은 세계 206개 국가 중 비교 가능한 156개국의 자료를 싣고 있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6으로 동률 28위다. 한국보다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가 적어도 120곳 이상이란 얘기다. 중국과 미국은 0.4가 넘어 아주 불평등한 나라다.
 
소득 양극화 비율을 나타내는 팔마 비율(소득 점유율 하위 40에 대한 상위 10% 비율)은 또 어떤가. 역시 수치가 작을수록 양극화가 덜한데 한국은 1.2로 독일·일본과 같다. 156개국 중 28~30위쯤 된다. 한국보다 양극화가 덜한 나라는 27곳밖에 없다는 의미다. 퀀타일 비율(소득 점유율 하위 20%에 대한 상위 20% 비율)로 따져도 한국은 40위 정도다. 어떤 기준으로도 한국이 세계 최고의 불평등 국가란 통계 숫자는 없다.
 
대통령의 말은 고의적·반복적이었다는 점에서 실수였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부터 “극심한 불평등”(2016.1.20일 신년 기자회견)을 말해왔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2017년 6·10 항쟁 기념 연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졌다”(2018.9.1 당·정·청 전원회의)며 여전했다. 사실 왜곡이 시작된 건 두 달 전쯤이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국은 발전된 나라들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됐다”(2018.11.1)고 했다. ‘가장 심한 나라’는 명백히 거짓이다. 그래도 이땐 ‘발전된 나라들 가운데’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했다. 그러더니 지난주엔 거두절미, ‘대한민국=세계 최고의 불평등 국가’로 못 박았다.
 
왜 그랬을까. 짐작은 간다. 대통령은 그즈음 지지율 급락에 시달렸다. 고용 참사 같은 참담한 경제 성적 탓이 컸다. 경제 실패를 부정해 온 대통령으로선 “경제 실패 프레임”에 맞설 강력한 대응 프레임이 필요했을 수 있다. “세계 최고 불평등” 프레임은 달콤한 유혹이다. 이념에만 집착하는 참모들이 부추겼을 수도 있다. 쓰나미 사망자 1368명을 후쿠시마 원전 사망자로 잘못 말하고, 재난 영화에 감동받아 탈원전을 결심하는 등 사실과 숫자를 꼼꼼히 따지지 않는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 고의든 실수든 대통령의 잘못된 진단과 현실 인식은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복통 환자를 위암 4기로 진단해 위를 모두 도려내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과 같다. 반복되면 대통령 말의 신뢰가 떨어진다. 북한 지도자의 진심이라며 대통령이 전해도 국민은 의심부터 할 것이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해 10월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도, 유포하는 사람도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도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가짜뉴스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가 처벌 대상인가. 가짜 뉴스를 읽은 대통령인가, 그걸 써 준 참모나 연설문 담당자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보도한 유포자, 언론인가.
 
사실 나는 가짜뉴스 처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다. 광우병·천안함·세월호 관련 수많은 가짜뉴스가 나라를 뒤덮었을 때도, 그런 쓰레기들을 처벌하다가 진실까지 박제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정부의 처벌 의지가 그토록 강하고, 그 안에 대통령의 가짜뉴스도 포함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 찬성할 밖에.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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