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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엎드린 화웨이 창업주 "트럼프는 위대한 대통령"

중앙일보 2019.01.16 16:29
15일 중국 선전시 화웨이 본사에서 해외 언론 인터뷰에 응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 [AP=연합뉴스]

15일 중국 선전시 화웨이 본사에서 해외 언론 인터뷰에 응한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 [AP=연합뉴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의 총수가 오랜 침묵을 깨고 몸을 낮췄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74) 회장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 시한(3월 1일)을 한달여 앞두고 딸 멍완저우(孟晩舟)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캐나다에서 체포되고, 화웨이 유럽지사 임원이 폴란드에서 체포되는 등 세계 곳곳의 잇따른 ‘경영 악재’를 해소하기 위해 직접 위기 타개에 나선 것이다.

경영 악재 타개 위해 4년만 외신 인터뷰
딸 멍완저우 이어 폴란드서 직원 체포
“무역전쟁서 참깨 씨만도 못한 존재”
스파이 의혹 부인…“세계에 해 안 가했다”

 
지난 15일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시 화웨이 본사에서 열린 런 회장 인터뷰엔 블룸버그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기자들이 참석했다. 런 회장이 외신 인터뷰에 응한 것은 2015년 이후 4년 만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 총수의 이날 인터뷰 태도는 ‘단호함’과 ‘겸허함’으로 요약됐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이 제기한 ‘스파이 기업 의혹’에 대해 “세계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며 부인했고,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갈등 속 화웨이를 “참깨 씨에 불과하다”고 낮춰 표현했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함께 있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함께 있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런 회장 인터뷰의 핵심은 화웨이의 스파이 의혹을 부인한 것이었다.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정보 제공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 만약 이 같은 요구를 받을 경우 거절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공산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세계에 해를 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런 회장은 “중국 내 어떤 법도 특정 기업에 의무적으로 백도어(우회 접근 통로) 설치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백도어는 인증되지 않은 사용자가 무단으로 시스템에 접근해 특정 메시지, 연락처, 통화 기록, 위치 정보 등을 파악하는 기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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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도용했다”며 화웨이 등 중국 첨단기업을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서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그는 “트럼프는 ‘위대한 대통령’이다. 미국 기업에 이득을 주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 갈등에서 화웨이는 "참깨 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양국 무역 갈등에서 화웨이는 일개 기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에 런 회장은 줄곧 관심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후반 공산당에 입당한 런 회장은 화웨이를 창업한 뒤 회사 내 공산당위원회를 개설했다. 이에 미 정부는 “민간기업에 불필요한 조직을 뒀다”며 ‘화웨이-공산당 결탁설’을 제기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화웨이에 대한 압박은 전방위로 확대됐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기업 제품 사용 금지가 핵심인 ‘2019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한 데 이어 호주·뉴질랜드·영국 등 주요 동맹국에 화웨이 5G(5세대) 장비 사용 금지를 요청했다. 현재 3개국은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를 결정했거나,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대(對)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멍 CFO가 체포됐고, 스파이 혐의로 화웨이 직원이 폴란드에서 체포되면서 화웨이의 유럽 사업이 신뢰 위기에 놓였다. 화웨이에 유럽은 중국 본토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2017년 화웨이의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사업 매출액은 1639억 위안(약 27조원)으로, 전체 매출의 27% 수준이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 부회장은 1000만 캐나다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 허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오른쪽)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경호원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의 한 보호관찰소에 도착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된 멍 부회장은 1000만 캐나다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보석 허가를 받았다. [AP=연합뉴스]

 
화웨이는 ‘순환 회장’ 제도로 대표되는 런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하에 성장했다. 2012년 도입된 순환 회장 제도는 임원진 3명(궈핑·수지준·후허우쿤)이 6개월씩 돌아가며 순환 회장직을 수행하는 제도다. 현재는 궈핑 회장이 순환 회장을 맡고 있다. 또 다른 임원인 멍 CFO의 자금 관리 역할은 량화 화웨이 이사회 의장이 대신하고 있다.
 
데이비드 크레머 영국 케임브리지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런 회장은 의사 결정 권한이 한 명에게 집중되길 바라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의 갑작스러운 부재 시 리더십이 공백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크레머 교수는 화웨이 경영 구조를 기러기의 ‘V자 편대 비행’에 비유했다. 그는 “앞쪽 양 끝에서 비행을 지휘한 기러기들은 체력 회복을 위해 뒤쪽 기러기와 교대한다. 기러기들의 안정적인 단체 비행이 유지되는 비결”이라며 “화웨이의 순환 회장 제도는 ‘인간판 편대 비행’에 비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갈등 속에서도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한 화웨이를 유독 의식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편대 비행’ 뒤쪽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노년의 총수는 화웨이에 닥친 가장 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중 앞에 나오는 길을 택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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