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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정규직인 적 없었어요"…1년 계약직 부장에서 사장까지 오른 박정림 KB증권 대표

중앙일보 2019.01.16 16:05
박정림 KB증권 사장. [KB증권 제공]

박정림 KB증권 사장. [KB증권 제공]

 
“일 할 때만은 전사가 되고 싶다.”
국내 증권업계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된 박정림(55) KB증권 대표의 삶의 모토다.  
 
 
최근 본사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도 한마디로 ‘여장부’다. 허례허식이 없고 소탈한 그는 웃음소리도 화통하다. 그러다가 일 얘기로 돌아서면 눈빛은 날카로워진다. 그는 “열심히 일하며 불태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승진할 때마다 달라진 처우나 월급을 따져 본 적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롯이 자신의 역량을 쏟아내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통 증권맨이 아닌 그가 KB증권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2017년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합병한 KB증권은 몸집은 커졌지만 제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증권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자보다 더 좋은 실적을 내는 게 올해 목표”라며 “1년 지나서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보다 실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얘기다.  
 
 
박정림 KB증권 사장. [KB증권 제공]

박정림 KB증권 사장. [KB증권 제공]

 
 
박 대표는 도전하는 삶을 즐긴다. 국민은행에서 1년 계약직 부장으로 시작해 그룹 계열사 CEO까지 오른 비결이기도 하다. 그는 1986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에서 근무했다. 이후 대학원을 다니다 결혼을 하고 육아에 매달렸다. 자칫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업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었다. 1992년부터 2년간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금융권으로 복귀해 조흥경제연구소, 삼성화재 등을 거쳐 2004년부터 KB국민은행에서 일했다.  
 
 
특히 국민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을 때는 이수창 삼성화재 전 사장까지 나서서 만류했다. 삼성화재에 계약직으로 들어갔다가 실력을 인정받고 정규직 전환은 물론 부장까지 승진한 참이었다. 그런 그가 리스크 관리 전문 인력이지만 다시 1년 계약직으로 옮긴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선택에 고민도 많았다. 그런데 계약직이다 보니 오히려 잘릴 두려움 없이 마음껏 일했던 듯하다”고 들려준다.  
 
 
그는 매년 1년씩 계약을 연장하며 리스크관리부, 재무보고 통제부, 제휴상품부 등 은행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고 2012년 8년 만에 자산관리(WM)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임원이 되니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연장돼서 좋았다”며 웃음 짓는다. 무엇보다 임원이 돼보니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몸 사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새로운 일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요즘 박 대표는 미래 먹거리인 WM에 가장 공을 들인다. WM은 박 대표의 강점 분야이기도 하다. 박 대표가 은행에서 WM을 총괄하면서 매년 펀드와 방카슈랑스 판매에서 국민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성과가 좋았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취임 이후 절반 이상 부행장이 바뀌었을 때도 자리를 지킬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7년부터는 KB금융그룹 WM 총괄 부사장을 맡으면서 KB증권의 WM 부사장을 겸임했다. 이미 위탁매매(브로커리지) 관련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던 증권사의 수익구조를 WM 등 신사업으로 바꾸는 준비를 해온 것이다.  
 
 
특히 복합점포와 온라인 마케팅 두 축을 강화하고 있다. 우선 국민은행과 KB증권 창구가 한 자리에 들어선 복합점포를 지속해서 늘린다. 증권보다 폭넓은 고객 접점을 지닌 은행에서 다양한 증권 상품을 판매해 계열사 간 협업 시너지를 높이는 방법이다. 2016년 24개였던 복합점포는 지난해 말 65개로 늘었다.  
 
디지털 시대에 맞춰 조직도 개편했다. 별도로 운영했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ㆍ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 온라인 사업부를 WM 총괄본부에 배치됐다. 박 대표는 “금융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 고객이 편리하게 주식 투자나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갖추는 게 앞으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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