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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주는'에서 '끌어주는'으로…봉사활동의 진화

중앙일보 2019.01.16 09:01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4)
장애어린이의 치료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에 기부금 전달을 위해 마련한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전 모스. [사진 한익종]

장애어린이의 치료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에 기부금 전달을 위해 마련한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전 모스. [사진 한익종]

 
취미 삼아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 그림으로 시화전을 열었다. 푸르메재단에 장애어린이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전공은커녕 미술학원 근처도 못 갔던 내가 개인전을 열다니 창피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참 대견하다고 여겼다.
 
미술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미술이 좋아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선친으로부터 호되게 혼났고, 그 꿈을 접은 기억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을 고려하면 미술은 배고픈 화쟁이가 되겠다는 것이니 선친의 생각으로는 얼토당토않은 얘기였다. 살아오면서 가끔 그런 아버지가 야속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 하게 도와주시지…·’ 그런 기억을 깨끗이 잊게 한 것이 해녀시화전이었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해녀시화전은 살아가면서 해서는 안 될 ‘~때문에 못한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미술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미술을 못 한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100세 인생에서 제3막 초반인 60세에라도 알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핑계의 덧없음은 봉사현장에서도 많이 느껴 온 바이다.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자주 있다 보니 장애를 겪는 그들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해 나가는데 소위 사지 멀쩡한 내가 무엇 때문에 못했다는 핑계가 어디 가당한 말인가.
 
피봉사자의 자립 돕는 것이 중요
젓가락 해녀시화전은 내게 봉사활동의 영역이나 방법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줬다. 무엇이든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면 못 할 게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피봉사자에게도 적용되는 원리이며 그런 확신과 방법을 피봉사자에게도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내 봉사의 영역과 기부의 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부나 노력 봉사로 시작한 것이 소위 프로젝트성 기부로 변해가는 것 같다. 단순히 주고받는 행위의 관계에서 함께 발전하는 봉사로 영역이 발전했다고나 할까.
 
걷기를 통해 기부하는 모임에서 시 낭송 봉사를 하는 김기월 시인. 재능 봉사, 역량 봉사는 피봉사자에게 자립이라는 선물을 안기는 좋은 기부다. [사진 한익종]

걷기를 통해 기부하는 모임에서 시 낭송 봉사를 하는 김기월 시인. 재능 봉사, 역량 봉사는 피봉사자에게 자립이라는 선물을 안기는 좋은 기부다. [사진 한익종]

 
예를 든다면 방송제작능력을 활용해 전국의 방송반 학생들을 지원했던 봉사라든가, 노인 요양시설을 방문해 노인들과 꽃밭을 함께 조성하면서 그들에게 정원 가꾸기를 통한 삶의 활력을 갖게 했던 일, 걷기 봉사모임인 ‘한걸음의 사랑’을 만들어 그들을 인솔함으로써 회원들이 걷기에 따른 성금을 기부케 하는 일 등이다. 물론 물품 봉사나 노력 봉사와 병행하긴 했지만 함께 하는 봉사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피봉사자에게도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일이다.
 
함께 하고, 그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봉사활동의 예는 푸르메재단이 장애우들의 치료와 재활 지원과 함께 그들이 홀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장애우들이 성장했을 때 그들 스스로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한 행복한 베이커리&카페사업이나, 스마트팜을 건립해 장애우들이 농산물을 직접 가꾸고 수확해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나는 이를 ‘푸쉬(push)형’ 봉사에서 더 발전한 형태인 ‘풀(pull)형’ 봉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탈무드에서는 자선(체다카) 단계를 모두 8단계로 묘사하고 있다. 자선의 8단계란 맨 하급단계인 마지못해 주는 것에서부터 받는 이가 자립할 수 있게 돕는 마지막 단계가 그것이다. 푸쉬형 봉사가 받는 이를 뒤에서 밀어주는 행위라면 풀형 봉사는 그들을 이끌어 주는 봉사이다. 풀형 봉사가 바로 자선의 최고 수준인 받는 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탈무드에서 밝힌 자선의 8단계를 잘못 이해하면 봉사 자체를 꺼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자선의 지고지순한 단계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8단계라 해 저급 단계는 봉사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질까 걱정스럽다.
 
왜 탈무드는 자선의 수준을 ‘단계’라는 표현을 썼는지 생각해보자. 모든 건 순서가 있다, 단추도 첫 단추부터 잘 끼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선의 첫 단계라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걸 마지못해서 하는 봉사라도 하자. 그것이 습관화하면 2단계가 보이고, 2단계가 습관화하면 그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으니 시작이 중요하다.
 
해안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그를 이용한 비치코밍으로 정크아트를 시현해 보는 모습. [사진 한익종]

해안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와 그를 이용한 비치코밍으로 정크아트를 시현해 보는 모습. [사진 한익종]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 전을 열었을 때 그 만용에 가까운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스스로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남도 도울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낳은 성과라고 확신한다. 결국 봉사현장에서 느꼈던 다른 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봉사의 최고단계라는 생각은 오랜 봉사가 내게 준 교훈이었다.
 
인생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지식이나 능력, 경제적으로나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내가 다른 이와 나누는 것. 이보다 인생 후반부를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본다. 인생 선배로서 후손들에게 삶을 열어가는 방법을 전수하는 일, 이보다 숭고하고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이 순간도 새로운 봉사프로젝트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무얼 할까 생각하고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가.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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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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