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무실에 놓은 아이폰 '실시간 듣기'···에어팟 도청 논란

중앙일보 2019.01.16 06:30
"도청 가능" vs "보청 기능" 
 
“맨 왼쪽에 앉은 사람은 좀 별로다.”
 
직장인 이모(31)씨는 지난 주말 친구와 미팅을 나갔다 괜한 상처를 받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이폰 에어팟(무선 이어폰) 사용해 도청하기’라는 팁을 따라 해본 게 화근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던 이씨는 문득 테이블에 자신의 아이폰을 두고 온 것을 깨닫자 호기심이 생겼다. 이씨는 “아이폰에서 ‘실시간 듣기’ 기능을 켜면 기계에서 떨어져 있어도 에어팟만으로 기계 주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인터넷 글이 떠올랐다. 
 
호기심에 에어팟을 귀에 꽂은 이씨는 화들짝 놀랐다. 미팅 상대방이 자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걸 들어버린 것이다. 이씨는 “장난삼아 해본 건데 생각보다 잘 들렸다”며 “나는 그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런 속마음을 들어버려서 정말 우울했다”고 말했다.
 
'실시간 듣기' 켜면 15m 밖에서도 소리 들려
실시간 듣기 기능을 통해 ‘도청’까지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기능을 켜면 아이폰 사용자가 단말기와 떨어져 있어도 에어팟을 통해 단말기 주변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애플이 지난해 12월 17일 iOS 12.1.2 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새로 적용한 기능이다. 아이폰 5s와 후속 모델들에 모두 적용됐다.
해외 네티즌들이 SNS에 많이 공유하고 있는 글. ’만약 당신이 에어팟 사용자라면 당신이 빠진 방 안에 아이폰을 두고 나오길 추천한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을 수 있고, 훗날 이 기능을 소개한 내게 감사해 할 것“이라는 내용. [사진 트위터 캡쳐]

해외 네티즌들이 SNS에 많이 공유하고 있는 글. ’만약 당신이 에어팟 사용자라면 당신이 빠진 방 안에 아이폰을 두고 나오길 추천한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을 수 있고, 훗날 이 기능을 소개한 내게 감사해 할 것“이라는 내용. [사진 트위터 캡쳐]

기자가 15일 아파트 거실에서 실시간 듣기 기능을 실행해 봤더니 현관문 밖으로 나와서까지 집안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현관문을 닫고 복도까지 나와서도 집안의 TV 방송이나 가족의 대화, 강아지가 으르릉대는 소리가 깨끗하게 들렸다. 
 
카페 테이블 위에 아이폰을 놓고 외부로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계약 내용이 여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안녕하세요, ✕✕로펌 관계자시죠? 김○○ 대리입니다” 같은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애플에 따르면 최장 15m 떨어진 곳에서도 활성화가 가능하다. 게다가 녹음도 가능하다. 실시간 듣기 상태에서 음성 녹음을 했더니 원래보다 더 깨끗하고 큰 소리로 녹음이 됐다.
 
녹음도 가능, '도청'으로 악용 우려도
아이폰의 에어팟(무선 이어폰). [중앙포토]

아이폰의 에어팟(무선 이어폰). [중앙포토]

애플에 따르면 이 기능은 당초 청력 장애가 있는 이용자들의 청력 기능을 돕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애플코리아 기술팀 관계자는 “실시간 듣기 기능은 보청기와 연결할 수 있도록 해 시끄러운 곳에서도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도청에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행 통신비밀 보호법 3조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건 불법이다. 
 
법무법인 원일의 김소연 변호사는 “‘나’라는 당사자가 없는 제3자들의 대화를 엿듣는 건 불법”이라며 “흔히 농담처럼 얘기하는 ‘누가 나의 뒷말하나 들어보자’며 실시간 듣기 기능을 사용한다면 엄연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