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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일자리 안정자금 ‘영업사원’은 1년짜리…올해 703명 또 뽑았다

중앙일보 2019.01.16 01:30 종합 4면 지면보기
“열심히 하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할 것처럼 얘기했어요. 지나고 나서야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고 희망 고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요.”

근로공단 간부 “정규직 전환” 언급
공단 측 국회 보고서엔 “대상 안 돼”
1기 심사원들 “희망 고문 당했다”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근로복지공단(이하 근로공단) 경기지역 본부 산하 지사에서 일했던 일자리 지원 심사원(이하 심사원)의 탄식이다.
 
심사원은 일자리 안정자금의 신청·접수·심사·지급 업무를 위해 근로공단이 채용한 계약직 근로자다. 지난해 703명을 뽑았고 약 300명이 중도 퇴직했다. 급여는 기본급 159만원과 하루 식대 6300원을 포함해 월 178만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덜어준다며 만든 일자리 안정자금의 집행을 위해 정부가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를 대거 채용한 것이다.  
일자리 지원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일자리 지원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일자리 정부’를 내세운 현 정부가 이들에게 보인 아이러니는 또 있다. 본지에 제보하거나 취재에 응한 심사원들은 “1년 내내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하루 20통, 많게는 100통씩 신청 독려 전화를 하고 무작위로 소규모 작업장을 방문해 신청서를 받았다. 한 심사원은 “하루 5건 신청받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심사원도 있었다. 그는 진정서에서 “실적에 대한 압박은 가장 하층에 있는 심사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며 “원치 않는 야근과 휴일 근무를 강요받았다”고 토로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과 일부 내용을 지웠다.

일자리 안정자금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과 일부 내용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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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근로공단 정규직 간부들은 ‘정규직(무기계약직) 전환’을 약속하는 듯한 행보를 했다. 한 심사원은 “심사원 중에는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정규직 전환은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본지가 입수한 심사원들의 단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방에는 실제로 무기계약직 전환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일자리 지원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일자리 지원 심사원들의 SNS 대화방

그러나 지난해 8월 근로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일자리 지원 심사원은) 한시적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김광수 근로공단 일자리안정계획부장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심사원을 채용했을 때부터 정규직 전환 얘기를 하지 말라고 각 지사에 정확히 공지했다”고 해명했다. 각 지사의 실무자가 지시를 어겼다는 주장이다.

 
퇴직금도 논란거리였다. 심사원들의 계약기간(1월 2일~12월 31일)은 법적으로 퇴직금을 줘야 하는 만 1년에서 하루가 모자란다. 한 심사원은 “지사마다 퇴직금을 준다 안 준다 말이 달랐다”며 “퇴직금을 실적을 독려하는 데 이용하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근로공단은 심사원들이 퇴사한 이후에도 지급 여부를 검토하다 지난 14일 지급을 결정했다. 
 
근로공단은 업무 숙련도가 높은 기존 심사원들과 재계약하지 않고 2기 심사원 703명을 새로 채용했다. 1기 심사원이 다시 일하려면 재채용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공단 측은 “일자리 안정자금 사업이 1년 단위로 하는 한시적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안정자금 사업은 일찌감치 확정돼 있었다. 
 
올 계약기간도 1년에 못 미친다(1월 16일부터 12월 31일). 올해도 퇴직금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재채용된 심사원들의 경우 연말까지 일해도 정규직이 될 수 없다. 정규직 전환 기준인 만 2년에서 16일이 빠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친 정부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다.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울산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본사

이와 관련해 본지가 입수한 근로공단 간부와 국회 관계자의 통화 녹취엔 이렇게 돼 있다. “기존 심사원이 재채용돼 올해 끝까지 일해도 만 2년이 되지 않잖아요? 업무 시작일이 늦으니까, 정규직 대상이 아니죠. 그런데 만약 내년에 또 지원하면 (2년을 채우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문제로) 그땐 우리가 미치는 거죠. 고용노동부에서도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고….”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