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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로의 알고리즘 여행] 라마르크와 볼드윈, 바로 가기와 에둘러 가기

중앙일보 2019.01.16 00:31 종합 27면 지면보기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진화론을 두고 한 사람만 든다면 단연 영국의 찰스 다윈(1809~1882)이지만 역사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라마르크(1744~1829)와 미국의 볼드윈(1861~1934)이다. 라마르크는 개체가 태어난 뒤 노력해서 습득한 능력이 유전된다고 주장했고, 볼드윈은 개체가 어떤 능력을 습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라마르크 방식은 직접적인 진화다. 반면 볼드윈 방식은 간접적 진화다. 문제 풀이에 비유한다면 라마르크 방식은 목적함수를 직접 공략하는 방식이고, 볼드윈 방식은 목적함수 주변을 에둘러 공략하는 방식이다. 후에 라마르크설은 폐기되었고 볼드윈설은 정설이 되었다.
 
유전알고리즘은 집단유전학의 진화 원리를 문제 해결 과정에 차용하는 기법이다. AI, 최적화, 알고리즘 분야에 속한다. 문제의 솔루션 후보들을 생명체의 DNA처럼 표현해서 진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우연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프로그램하면 그다음부터는 자연이 스스로 발견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유전알고리즘이 작동하는 모습을 관찰하면 자연의 진화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다. 슬프게도 우리 인간들이 고고한 목적을 갖고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유전알고리즘으로 라마르크 방식과 볼드윈 방식을 실험해 봤다. 난이도 높은 문제로 실험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결론이 나온다. 당혹스럽게도 정설이 된 볼드윈 방식보다 유전학에서는 이미 폐기된 라마르크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다. 왜 자연은 더 효율적인 라마르크 방식의 진화를 택하지 않고 볼드윈 방식을 택했을까?
 
알고리즘 여행 1/16

알고리즘 여행 1/16

우리가 푸는 문제들은 대개 한번 시작하면 목적함수가 변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단일 목적함수에 최대한 잘 맞춘 풀이를 찾으면 된다. 반면 자연은 환경이 변한다. 즉, 목적함수가 변한다. 지나치게 하나의 목적함수에 적응한 개체는 환경이 급변하면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스피드를 한 단계 낮춘 간접 진화 방식의 개체는 환경이 급변할 때 타격을 덜 받는다.
 
진화의 초기에 라마르크형과 볼드윈형 생물군이 병존했을 것이다. 오랜 경쟁의 결과 볼드윈형의 압승으로 끝났을 것이다. 지금도 하등 생물 중에는 생존 과정에서 DNA가 변하고 그것이 유전되는 라마르크형의 생물이 있다.
 
이 결과는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다. “현상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보다 메커니즘에 대한 대응이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이 있다.” 효율성을 희생하면서 범용성을 높인 셈이다. 비슷한 은유는 도처에 존재한다. 고기를 잡아주느냐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느냐? 기업이 단기 실적에 집중할 것인가, 실적을 쌓을 수 있는 프로세스에 집중할 것인가? 똑같지는 않지만, 전자들은 라마르크스럽고 후자들은 볼드윈스럽다. 경제계에서도 케인스 방식과 슘페터 방식을 놓고 비슷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사회생물학의 본성과 양육 논쟁도 무관하지 않다. 볼드윈적 해석을 붙이면 본성은 양육의 결실에 대한 경향성을 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과 경제가 단일 목적함수로 튜닝하기 위험한 것은 목적함수가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임기가 불과 몇 년밖에 안 되는 기업의 CEO는 장기적인 기업의 체질보다는 자신의 임기 중에 나올 재무제표가 중요한 목적함수다. 정치 공학의 주목적함수는 득표수다. 그래서 선거 민주주의는 자극적인 방향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국민의 대표는 국민 수준의 중앙값을 대표한다. 안타깝게도 대개 중앙값은 평균값보다 낮다. 자연은 직접적인 전승보다 간접 전승 방식을 택했다. 우리 개인이나 기업, 국가는 어떤 방식을 택하고 있는가?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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