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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행복 천재들은 간섭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9.01.16 00:30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대한민국은 지금 간섭과 조언의 위태로운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삐끗하면 간섭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조언은 잔뜩 몸을 사리고 있고, 간섭은 진정성 있는 조언의 모양을 갖추지 않으면 갑질이라는 시대적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쯤 되면 타인의 삶에 대한 부당한 참견이 자취를 감출 만한데도,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은 ‘간섭 사회’의 모습을 점점 더 견고하게 갖춰가고 있는 듯하다. 간섭받지 않는 삶에 대한 욕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타인의 삶에 간섭하려는 시도 역시 커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간섭할 정당성을 부여받은 양, 간섭의 범위는 가족, 친구, 조직을 넘어 불특정 다수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어른들은 ‘쓴소리’라는 이름으로, 네티즌들은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에 무례하게 끼어든다. 인터넷 댓글에는 타인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대한 논리 없는 판단과 애정 없는 참견이 넘쳐난다.
 

우리 사회에 간섭 받지 않는 삶에 대한 욕망이 커지고 있어
타인 삶에 무례하게 간섭하려는 본능과 위대한 싸움 나서자

우리 사회가 간섭 사회로 향하게 된 것은 생활의 경계는 개인주의적인데 ‘자기’의 경계가 여전히 집단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적 자기를 가지고 개인주의적 삶을 추구하게 되면 여러 가지 역설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개인의 취향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되는 현상이 한 예이다. 중고등학교 교실을 보라. 학생들 모두가 개인의 취향을 추구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롱패딩을 입고 있지 않은가?
 
간섭도 마찬가지이다. 간섭받지 않을 개인주의적 가치를 ‘위계’와 ‘집단’이라는 집단주의적 자기가 실천하다 보니, 모두가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역설을 보이는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해볼 사람들이 행복 천재들이다. 행복 천재들은 간섭이라는 바이러스가 없는 무균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유의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낯선 도시들을 여행하는 존재들이고, 평가와 감시와 비교가 존재하지 않는 제3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문화를 즐기고 예술에 탐닉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이 존재하지 않아도 불편해하지 않으며, 자연 속에서, 어둠 속에서 자발적 격리를 실천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소유의 억압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구매하는 존재들이고,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그들의 모든 행위는 자유를 향하고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행복 천재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간섭받지 않을 뿐 아니라 타인을 간섭하지도 않는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기를 꺾는 쓴소리를 하지 않는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비유를 들어 부당한 참견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라는 전통 의식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굳이 한마디 해야 한다면 그저 격려하고 축하하고 감사해 한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다. 행복 천재들은 늘 남들이 열심인 일에 한가하고, 남들이 한가한 일에 열심인 법인데, 간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와 달리 행복 둔재들은 빈번한 간섭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억압한다. 간섭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삶에 집중한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실수와 실패와 단점을 찾는 데 몰두한다. 타인의 실패를 통해 ‘샤덴프로이데(타인의 불행을 통해 경험하는 쾌감)’를 경험하지만, 그 쾌감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간섭하기가 행복에 불리한 이유는 간섭이 삶의 중심을 ‘자기’에게서 ‘타인’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행복 천재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비칠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의심해 보라. 그 생각 자체가 간섭 사회의 산물이 아닌지. 나이와 성과 직위와 학력으로 강고하게 위계가 세워진 세상에서 수천 년 동안 생성된 간섭 DNA가 만들어낸 생각이 아닌지 의심해보라. 간섭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집단주의의 산물은 아닌지, 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타자의 약점을 파고드는 방어기제는 아닌지 의심해보라. 진정, 타인의 행복을 위한 관심인지 자문해보라.
 
우려와는 달리 행복 천재들은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이타적이며 공동체적이다. 그들은 타인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다만 자기의 경계를 지킨다. 왜냐하면 행복의 본질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을 위한 결심 리스트에 ‘간섭하지 않기’를 추가해본다. 간섭 본능과의 위대한 싸움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해본다. 최소한, 한 말씀 하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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