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상처만 남긴 한국당의 5·18 조사위 선정

중앙일보 2019.01.16 00:24 종합 29면 지면보기
유성운 정치팀 기자

유성운 정치팀 기자

“군(軍)에 의해 조직적으로 학살이 집행되지 않았다.” “증거가 날조됐다.” “정부에서는 지시한 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저지른 학살은 실제론 없었으며, 보상을 바라는 유대인들이 지어낸 허구라는 게 요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홀로코스트 허구설은 역사학계에선 ‘유사 역사학(類似 歷史學·pseudohistory)’, 즉 사이비 취급을 받는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조작설이나 고조선 대륙지배설처럼 뒤틀린 욕망과 정치 성향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서구에서 집권을 경험한 정당은 좌우를 막론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인하지 않는다. 종전 직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가해자들이 인정한 명백한 증거들이 있어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홀로코스트 허구설이 떠오른 것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자유한국당 측 조사위원 선정 논란 때문이다. 한국당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오랫동안 주장해 온 논객 지만원씨를 추천명단 후보로 올려 도마 위에 올랐다. 보수층에서도 그의 주장이 공감을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던 보수 논객 조갑제씨는 “진실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근거가 약한 의혹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한국당 지도부는 지씨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씨는 지지자들과 함께 나경원 원내대표의 자택 앞에서 시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당은 15일 지씨를 제외하고 권태오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변호사 등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그동안 계엄군의 만행을 부정하거나 내란 쪽에 초점을 맞춘 주장을 해와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5·18 관련 단체에서는 “진상조사를 방해하려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모두에게 상처만 안겼다. 한국당은 5·18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전격 구속시켰다는 성과를 내세우곤 했다. 하지만 그런 한국당의 ‘훈장’엔 일정 부분 녹이 슬게 됐다. 5·18 유족들은 또 한 번 좌절했고, 다수의 국민은 실망했다.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다가 ‘몸값’을 올리게 된 지만원씨뿐인 것 같아 씁쓸하다.
 
유성운 정치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