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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빙하 속 잠든 바이러스…지구온난화로 깨어난다

중앙일보 2019.01.16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녹아내리는 그린란드 빙산. 빙하 속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다. [AP=연합뉴스]

녹아내리는 그린란드 빙산. 빙하 속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다. [AP=연합뉴스]

캐나다 북쪽의 영구동토층.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일 년 내내 얼어붙었던 이곳은 이제 여름철이면 녹아내려 땅이 질퍽질퍽해진다. 지난 2014년 뉴질랜드 등 다국적 연구팀은 이곳에서 700년 된 순록 배설물을 발견했다. 녹아내린 배설물 속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바이러스가 들어있었다. 이 바이러스는 죽은 게 아니었다. 현대 식물을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온난화가 부메랑돼 인류 위협
지난해 폭염 탓에 48명 사망
한국 열대 감염병 안심 못해

인구 이동 증가로 ‘상승효과’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필요
근본 대책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로 북극이나 남극 빙하 아래에 잠든 고대(古代) 미생물이 다시 깨어난다면 인류에게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 미생물뿐만 아니라 과거 인류가 배출했던 납·수은 같은 유해 중금속, 유해 화학물질이 빙하와 함께 녹아내려 강과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기후변화가 부메랑이 돼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재해 역학(疫學)센터’의 데이터를 인용, 지난해 전 세계에서 기상이변 탓에 숨진 사람이 약 5000명, 재해를 당한 사람이 2890만명에 이르렀다고 지난달 21일 보도했다. 또,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이 펴낸 2018년 판 ‘건강과 기후변화에 대한 랜싯 카운트다운’ 보고서는 2030년부터 전 세계에서 매년 25만 명이  기후변화 탓에 건강을 잃고 사망할 것이라는 경고했다.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이다.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 통계에 따르면 역대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2018년 전국에서 4526명의 온열질환자 발생했고, 이 가운데 48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등의 질환을 평소 앓고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기온이 상승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압이 떨어지게 돼 허혈성 뇌졸중이 생긴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는 열사병 외에 다양한 형태로 인류 건강을 위협한다. 홍수가 발생하면 건물이 침수된다. 침수됐던 건물에는 곰팡이가 자라고, 곰팡이 포자는 실내 공기를 오염시킨다. 폭우가 쏟아지면 도로나 논밭에 흩어져있던 오염물질이 빗물에 씻겨 상수원으로 들어간다. 온갖 오염물질과 병원균이 강과 하천, 호수로 들어가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깨끗한 물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수인성 전염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온과 수온이 상승하면 장출혈성 대장균, 비브리오 패혈증 등 감염성 질병 위험이 커진다. 2012년 미국·영국·스페인·핀란드 등 4개국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발트 해(海) 수온 상승과 북유럽에서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출현하는 시기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8월에는 국내에서 15년 만에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는데, 당시 폭염과 바닷물 수온 상승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폭염이 심했던 그해 여름 바닷물 온도가 예년보다 5도 높게 유지됐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늘어난 인구 이동은 감염 질환 확산에서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웨스트나일열은 1937년 우간다에서 처음 발견된 것처럼 당초 아프리카 질병이었다. 모기가 옮기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의해 걸리는 이 병은 99년 미국에서도 첫 환자가 발생했다. 2012년엔 이 병으로 인해 미국에서만 200명 이상이 숨졌다. 한국에서도 2012년 7월 첫 웨스트나일열 환자가 확인됐다. 아프리카 기니에서 감염된 뒤 귀국한 것이다.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려면 취약계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진은 쪽방촌 주민에게 계란을 나눠주는 모습. [뉴스1]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려면 취약계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진은 쪽방촌 주민에게 계란을 나눠주는 모습. [뉴스1]

지난 2013년 제주대 이근화 교수의 보고에 따르면 뎅기열이 창궐하는 베트남에 주로 서식하는, 뎅기열 매개체인 흰줄숲모기가 제주도에서도 발견됐다. 기후변화로 확산하는 지구촌의 감염 질환, 열대 감염병 앞에 한반도도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질병을 옮기는 쥐나 매개 곤충도 늘어난다. 지난달 22일 영국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기온 상승으로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등 미국 대도시에서는 쥐와 관련한 민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뉴욕 시에서는 2017년 쥐와 관련된 민원 전화가 1만9152건이었는데, 2016년에 비해 10%나 늘어난 것이다. 기온이 상승할수록 모기도 더 빨리 번식한다. 서식 범위도 위도가 높은 곳으로(북반구에서는 북쪽으로), 고도가 더 높은 곳으로 넓어진다. 모기 서식지가 확대되면 말라리아 등 질병도 같이 확산한다.
 
기후변화로 가뭄도 자주 발생한다. 가뭄 때 자주 발생하는 산불은 대기오염의 원인이다. 서부 캘리포니아의 산불이 미국 전역을 위협한다.
 
기온이 상승하고 자외선이 강해지면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 오염도 치솟는다. 오존 농도가 높아지면 당장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태아에게도 영향을 준다.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 홍윤철 교수팀의 연구 결과, 임신 중기(4∼7개월) 때 오존농도가 약 0.018 증가하면 태아의 비뇨기계 기형이 발생할 확률은 11.7% 높아졌다.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 피해를 줄이려면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약자나 어린이 등 민감계층, 빈곤계층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오염에 더 많이 노출된다. 이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근본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단국대 의대 권호장(예방의학) 교수는 “기후변화를 예방하려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육류 섭취를 줄이거나 걷기를 장려하는 등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과 공중보건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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