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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폭망? 쇠고기 못 먹어도 돼지 정도는…

중앙일보 2019.01.15 02:00 경제 1면 지면보기
반도체 2019년 '폭망론' 팩트체크 
 
연초부터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 위기론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고,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연초에도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달 1~10일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를 기록했다. 올해 급격한 반도체 부진으로 우리 경제 전반과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과연 올해 반도체 시장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학계와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 의견을 들어 팩트체크를 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도체업계 내부에선 "잔치가 끝나 지난해처럼 쇠고기는 못 먹지만, 올해도 돼지고기 정도 먹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비유를 꺼낼 만큼 담담한 분위기다.    
 
①삼성의 '어닝쇼크'?…지난 2년 '유사 이래 최대 호황기'  
삼성전자 실적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삼성전자 실적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반도체 위기론은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어닝쇼크를 기록하면서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기록한 지난해 4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10조8000억원, 시장의 기대치(13조5000억원)에 훨씬 못 미친 게 사실이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2016년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14조 원대 이상의 영업이익 기록을 세우던 참이었다. 증권가는 "기대보다 크게 낮은 어닝쇼크'"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시각을 넓혀 3년 전만 돌아봐도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2016년 영업이익은 13조6000억원,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살펴봐도 한 해 평균 영업이익은 9조원 수준이었다. 2008년 4분기와 2009년 1분기엔 연속 60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약 46조원의 흑자를 냈을 것(전체 영업이익의 약 80%)"이라며 "이걸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상무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도체 시장은 이상 과열이라 할 정도로 유사 이래 최대 호황을 보였다"며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길게 보면 시장이 정상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상무는 "반도체를 둘러싼 요즘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 같다"며 "(잔치가 끝나)지난해처럼 쇠고기는 못 먹어도 올해 돼지고기는 먹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반도체 폭망론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반도체 전문가는 "지난 2년간 삼성전자는 약 7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며 "독점적 공급자로서 수혜를 본 것이지만 글로벌 시장 차원에서 보자면 반독점 조사 같은 갈등을 불러올 수 있어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반도체를 제외한 국내 제조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다.   
 
②삼성전자의 호황 비결? 한발 앞선 3D 낸드플래시 양산 
삼성전자가 최근 2년간 최대 실적을 낸 건 초격차 전략의 성공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초 업계 최초로 3D낸드 플래시 양산에 성공하면서 마침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는 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2017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글로벌 대표 IT기업인 이른바 '팽(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은 대대적인 서버 증설 작업을 추진했다. 이 흐름을 타고 반도체 시장의 초호황이 시작됐다. 
 
 
특히 이들은 서버를 기존 하드디스크(HDD)에서 데이터를 더 빨리 읽고 쓸 수 있는 SSD로 교체했는데, 이때 삼성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SK하이닉스나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가 돼서야 반도체 수퍼 호황 흐름 위에 올라탔다"며 "이는 삼성전자보다 3D 낸드플래시 생산이 약 10개월 늦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수요 폭발은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인의 콘텐트 총 사용량이 급증한 결과다. 이동통신 속도가 LTE-A급으로 빨라지면서 휴대전화로 TV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받거나 모바일로 쇼핑하는 게 일상이 된 덕분이다. 이렇게 개인들의 콘텐트 이용량이 늘고, IT업체의 데이터 증설이 잇따르면서 어마어마한 반도체 수요가 발생한 것이다.     
  
③올해 반도체 시장 폭락?… 하반기부터 예년 수준의 '정상화'  
지난해 4분기부터는 반도체 시장 흐름이 바뀐 게 사실이다. FAANG 같은 글로벌 IT기업들의 신규 서버 구축이 거의 완료됐고, 미·중 무역 전쟁이나 세계 경기 둔화 움직임에 투자가 위축됐다. 여기에 반도체를 많이 쓰는 스마트폰 총판매량도 줄었다. 스마트폰은 전 세계에서 지난해 14억4000만대가 팔려, 2017년(15억800만대)보다 판매가 줄며 스마트폰 출현 이후 처음으로 역신장했다. 여기에 후발주자인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올해부터 양산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격 하락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 바닥을 점치기에는 이르다는 데 학계나 애널리스트들 의견이 일치한다. 우선 여전히 전 세계인의 콘텐트 이용량이 늘고 있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한국·미국·일본 등에서 5G(세대) 통신 시대가 개막한다. 이는 개개인의 영상 콘텐트 이용 시대가 본격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FAANG의 서버 구축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지난해 8%에 불과했던 인공지능(AI)서버 시장은 오히려 점점 커져 2025년까지 50% 이상 급성장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선두주자인 구글은 지난 12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상용화했고, 우버나 GM도 올해부터 자율주행차를 속속 상용화한다. 지난주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2019)에서 봤듯이 가전업체들도 AI를 채택한 가전제품 출시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AI 서버나 자율주행차 모두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한 분야"라며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상반기쯤 주춤하면서 하반기부터는 다시 오름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반기에 회복된다 해도 물론 지난 2년간의 초호황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며 "하지만 반도체 시장이 올해나 몇 년 새 걱정할 수준으로 꺾이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 역시 올해 반도체 시장을 비슷하게 내다봤다. 가트너는 14일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총 4890억 달러(약 545조원)로, 지난해(4770억 달러)보다 2.6%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2017년(21.6%)이나 지난해(13.4%)처럼 두 자릿수 증가율은 아니지만, 올해도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인 셈이다. 
 
④수출 반도체 의존 심화…포트폴리오 다양화 시급 
반도체 경기가 일시적으로 냉각되면서 수출 전선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도체가 지난해와 비슷한 수출액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반도체가 1265억 달러를 수출하며 최대치를 기록했다"며 "올해도 지난해만은 못하겠지만 1100억 달러 이상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오히려 문제는 우리 수출에서 반도체 의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란 지적이 많다. 반도체의 지난해 수출액은 우리 전체 수출액(약 6050억 달러)의 약 21%쯤 된다. 반도체의 수출 비중은 2010~2016년만 하더라도 1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초호황이 시작된 2017년 17.1%로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더 높아졌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수출에서 반도체가 잘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한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건 문제"라며 "국가적으로 반도체 외에도 바이오·자동차 등 수출 먹거리를 육성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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