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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SKY 캐슬’의 이무기들

중앙일보 2019.01.15 00:42 종합 27면 지면보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나 보고 천벌 받을 년이라고 했지? 너도 영영 나오지 못할 지옥불에서 살아봐.” 지난주 JTBC 금·토 드라마 ‘SKY 캐슬’에서 나온 대사다. 모범생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린 주부 수임(이태란)에게 입시 코디 주영(김서형)이 내뱉은 말이다. 어마어마한 저주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비극적 사고로 집에 유폐된 딸 때문에 사회에 원한을 품고 사는 주영은 대입 자녀를 둔 주변 가정을 하나둘씩 무너뜨린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다.
 
요즘 ‘SKY 캐슬’이 단연 화제다. 오는 25일 최종 방영을 앞두고 시청률 20%에 접근했다. 명문대 입학을 둘러싼 상류층의 허욕과 위선을 발가벗긴다. 공포와 웃음,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유현미 작가가 얄미울 정도다. 시청자를 조였다 풀었다 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때론 막장 직전까지 치달으면서도 서울대 의대 합격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한국인의 오늘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드라마 속 세상은 한마디로 지옥이다. 용광로보다 뜨거운 그 불길에서 자유로운 이는 하나도 없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의사·교수 등 이른바 최고로 잘 나가는 이들이 최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모습에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늘(SKY)로 솟구쳐 남들을 지배하는 용이 되려는, 그리고 그 단단한 신분을 자녀들에 고스란히 물려주려는 최상위 0.1% 부모들의 탐욕에 넌더리가 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선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제작진의 함구에도 이런저런 예측이 쏟아진다. 그 어떤 논문·보고서보다 현실을 빼닮은 드라마의 힘이다. 하지만 매번 드라마를 보고 난 후의 뒷맛은 소태처럼 쓰다. 정말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이처럼 아비규환 세상인가.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살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위험사회·단절사회·피로사회·공포사회 등 온갖 용어가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더 두려운 건 상류층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일반인은 꿈도 꾸기 어려운 성채에 모여 사는 그들은 신분 사다리가 끊긴 작금의 우리 사회를 은유한다. 외부인은 절대 들어설 수 없는 곳에서 ‘그들만의 게임’을 벌이는 모습이 웬만한 호러영화를 무색하게 한다. 가상의 공간이긴 하지만 요즘 요즘 세태를 작심하고 틀어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쉽게 읽힌다.
 
‘SKY 캐슬’은 자녀를 용으로 키우고 싶은 이들의 광시곡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이제 속담에서나 찾을 수 있는 말이다. 갈수록 굳어지는 양극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아이들 성적에 따라 부모들 식탁 좌석마저 결정되는 장면에선 ‘썩소’(썩은 미소)가 터진다. 수억 연봉의 코디 선생마저 ‘한번 쓰고 버리는 참고서’로 묘사된다. 용이 아닌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새다.
 
이 드라마는 산업화 세대의 단말마(斷末魔)를 보여준다. 성적·출세주의의 마지막 고통쯤 될까. 아직도 의사·변호사에 목매는 상류층, 그들을 좇고 싶은 보통사람들의 허망한 바람이 애달프기만 하다. 물론 출구도 있다. 가짜 하버드대생 사건으로 집안을 왈칵 뒤집어놓았으면서도 이를 질책하는 로스쿨 교수 아버지 앞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클럽 MD로 당당히 일어서겠다는 딸 세리(박유나)는 부모 세대와의 이별을 선언한다. 드라마 주제가 ‘위 올 라이(We all lie)’도 노래한다. ‘Shout it out. What you want for the world(외쳐봐,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을)’라고.
 
20세기는 노력의 시대였다. 빈한한 사람에게도 폭은 좁지만 올라갈 사다리가 있었다. 요즘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20세기 중국 대표화가 치바이스(齊白石·1863~1957)가 그랬다. 오죽 가난이 지긋지긋했으면 자서전 첫 문장에서 “가난한 집 아이가 잘 자라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출세하기란 진정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 했을까. 그는 “소나무 가지로 땅에 한 획 한 획 그리며” 글과 그림을 익혔고 “돌가루가 과자 상자 서너 개를 채울 만큼” 도장을 새기며 기예를 닦았다. 치바이스뿐이랴. 지금은 거의 사어(死語)가 된 수많은 우골탑(牛骨塔)이 2019년 대한민국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학력·노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이 세상을 병들게 한다. 인공지능 4차혁명을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 자유로운 상상과 즐거운 마음이 다음 세대를 이끌 원동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서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함께 잘 사는 사회’에 반대할 이는 없다. 문제는 용이 아니다. 개천을 맑고 넓게 정리하는 일이다. 대학에 안 가도 사람 구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져야 한다. 이무기도 좋은 물을 만나면 언제든 용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심술만 남게 된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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