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시론] 김정은 방중, 비핵화 협상에 ‘중국 개입’ 길 텄다

중앙일보 2019.01.15 00:34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전 중국 선양 총영사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전 중국 선양 총영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 벽두에 ‘깜짝 방중’을 했다. 지난해 3월 이후 네 번째인 이번 방중을 통해 새해 동북아 외교전의 서막을 알렸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다가올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환영할 만한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북·중 정상이 공동보조를 맞추기로 의기투합하면서 해법이 복잡해졌다.
 
다층구조의 3차 방정식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무엇보다 김정은 방중의 성격과 함의를 진지하게 분석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 프레임 전환을 위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점검해야 한다. 현주소 좌표를 정확히 읽고, 북한 문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북·중 양자 관계의 지배논리를 이해하고, 북·중 관계의 기복이 일정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전략적 이익균형의 법칙이 그것이다.
 
우선, 북·중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이냐, 아니면 걸림돌이냐를 놓고 각계는 엇갈린 평가다. 정부는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우려스러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걸림돌 변수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북한은 중국을 등에 업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면서 흥정하고 있다. 미국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즐겨 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아직 조용한 것이 찜찜하다.
 
앞서 김정은 신년사는 비핵화와 관련 두 가지 메시지를 던졌다. 하나는 ‘새로운 길 모색’이고, 다른 하나는 다자협상 추진이다. 전자는 작년 9월 제재완화를 놓고 미국과 충돌한 이후 과도한 기대를 접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시그널이다. 후자는 중국을 끌어들여 평화체제를 담판 짓겠다는 뜻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북한은 메시지를 던져놓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 고려가 끝난 후에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방중은 두 가지 메시지에 대한 실행에 이미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시론 1/15

시론 1/15

둘째, 북·중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에서 북한 문제로 초점이 넘어가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대북 정책에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해왔다. 중국에 북핵은 해결의 대상이지만, 북한 문제는 이익 지키기 대상이다. 비핵화는 미국과 협조가 가능한 공동 목표이지만,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중국은 양보할 수 없다. 미국의 대중 견제·압박이 가중되고 있는 최근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시진핑은 김정은을 불러 후견국임을 자처한 것이다. 중국이 지난 1년 북한 길들이기를 끝내고 이제야 한반도 개입을 본격화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가 지난 연말에 둘러본 북·중 접경 지역은 대북 제재 압박의 고삐를 최고조로 당겼던 2017년에 비해 별반 늦춰진 것이 없어 보였다. 랴오닝성 단둥(丹東)과 지린성 훈춘(琿春)시 취안허(圈河) 세관에서 그런 분위기가 읽혔다. 북한으로 가는 차량은 화물을 가득 실었지만 돌아오는 차량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지난해 세 차례 김정은의 방중에도 중국의 대북제재 그물망은 사실상 그대로다.
 
교역통계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해 1~11월 북·중 교역액은 22억32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52.9%가 줄었다. 반 토막이 났다. 그렇다고 94.7%를 중국에 의존하는 무역구조에서 다른 국가로 숨통을 열 방법도 없다. 중국을 통한 경제 돌파가 절실하다. 김정은이 또 다시 달려가 시진핑의 발언을 메모하는 낮은 자세를 보인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북·중 관계의 프레임에서 우리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정전협정의 당사자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정하는 파트너’로 중국을 끌어들였다. 오히려 중국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상황관리가 필요하다. 북·중 관계는 역사가 증명하듯 일정한 단계에서 더는 좋아질 수 없고 그 이상 나빠지지도 않는다. 그들만의 양자 관계 지배논리가 있다. 거기에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비핵화가 미·중 무역갈등의 폭풍우에 떠밀려 버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마저 떠나는 미국의 정치 난맥상을 보면서 시간을 벌수록 유리하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상반기가 지나면 미국은 대선정국에 빠져든다. 그만큼 비핵화의 길은 험난해진다. 한국 정부로서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일지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핵 협상 시즌2’에 만반의 대비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전 중국 선양 총영사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