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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중앙일보 2019.01.15 00:28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토요일. 12일에도 어김없이 태극기 부대가 모였다.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거쳐, 시청 광장, 광화문, 사직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태극 깃발이 줄지어 걷고 있었다. 성조기를 함께 든 사람도 많다. 어린이 음악대를 연상시키는 큰 북을 가슴에 매고 두드리며 걷는 사람, 농악기로 흥을 돋우는 행렬도 있다.
 

현 정부 주말마다 태극기집회
공감하지 못할 주장이라도
갈등 장기화 방관만 해도 되나
작은 목소리도 국민의 것
진영 대결 앞장서지는 말아야

토막토막 선도하는 방송차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정부를 비난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호하는 구호로 선창과 복창을 반복한다. 태극기뿐 아니다. 곳곳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린다. 극단적인 대결 양상이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인 것처럼 불안하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지 않은 게 고마울 뿐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0개월이 넘었다. 촛불 집회에 맞불을 놓는 집회로 시작했지만, 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만 따져도 벌써 88번째 집회다. 솔직히 필자는 태극기 집회의 주장을 공감하기 어렵다. 80%의 국민이 찬성해 탄핵했다. 그런데 ‘배신자’, ‘탄핵 7적’이라며 과거 여당 의원에게 더 날카로운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보수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지난 9년의 집권 기간을 반성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도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데, 오히려 탄핵 이전으로 되돌리자니.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저절로 표는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인가.
 
그러나 공감하고 말고는 다음 문제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의 도심이 매주 수만 명의 시위로 마비되고 있는데도, 정신 나간 사람들의 엉뚱한 주장으로만 치부하면 끝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되는 건가.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촛불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그것이 ‘촛불 세력’만의 대통령이란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낡은 체제, 적폐를 일소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촛불 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그러나 정말 ‘국민 통합’이 시작되었는가. 여민관 집무실의 일자리 상황판처럼, 대통령도 우리도 잊어버린 단어가 아닌가. 그는 “이제 치열했던 경쟁의 순간을 뒤로하고 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했지만, 손을 맞잡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통합의 첫 번째 조건은 ‘탕평 인사’다. 그러나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는 들어봤어도 ‘탕평’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비서실 인선을 두고, 전임자와 후임자가 누가 더 ‘친문’인가 경쟁한다. 화급한 국정 과제인 일자리에 실패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인사는 ‘코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외교고, 국방이고, 과거를 뒤집는 게 절대 기준이다. 전문가를 내치고, 비주류로 채운다. 오죽하면 문희상 국회의장마저 “이제부터는 인연으로 인사한다든지, 보상 인사는 끝내고, 전문가를 써야 할 시기”라고 주문했겠나.
 
1964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격화되자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은 직접 서울대로 뛰어가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학생들의 의견이 어쨌거나 반대 의견을 듣고, 설득해보겠다는 노력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독재를 했지만 수많은 인재를 발굴했다. 반대 진영 인사까지 끌어들였다.
 
10일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고 강조하면서 기조를 바꾸지 않으려는 자신감의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 당연히 나올 질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30분 내내 드린 말씀”이라며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고 묵살했다. 그 불쾌한 표정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레이저를 떠올리게 했다.
 
대통령이 태극기 집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태극기 집회를 촛불 집회, 세월호 유족들의 집회, 파인텍 노조의 굴뚝 농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이 달려가 함께 단식하고, 마이크를 잡으라는 말도 아니다. 그래도, 아무리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해도, 그 수만 명도 대통령이 통합을 약속한 ‘우리 국민’이다.
 
다행히 문 대통령이 비서실을 벗어나 귀를 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원로들로부터 쓴소리도 들었다. 야당과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면 길이 열린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소수 의견이 있다. 그 가운데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약자들도 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보듬으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을 풀고, 하나로 묶으려는 통합 노력이다. 그게 정치가 할 일이다. 특히 대통령은 통합의 상징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앞장서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는 하지 않아야 한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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