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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말모이’ 최현배의 ‘시골말 캐기 잡책’

중앙일보 2019.01.15 00:03 종합 23면 지면보기
말모이 원고.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말모이 원고.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말모이’는 일제의 탄압에도 우리말 사전을 펴내려고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 뒤늦게 한글을 깨치는 판수(유해진) 같은 캐릭터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실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비롯한 역사가 녹아있다.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3월 3일까지 이어지는 기획전 ‘사전의 재발견’(무료 관람)이다.
 
영화 제목에 나오는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뜻에서 사전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자, 1910년대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과 그 제자들이 집필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제목. 완성단계에서 주시경이 세상을 떠난 뒤 실제 발간되진 못했지만 우리말 사전의 기틀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골말 캐기 잡책.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시골말 캐기 잡책.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현재 그 일부인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가 전해져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종이로 겹쳐 붙인 부분까지 재현한 복제본도 마련, 관람객이 넘겨 볼 수 있다. 한자어는 ‘+’, 외래어는 ‘x’를 낱말 앞에 붙여 순우리말과 구분한 것도 눈에 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사투리 수집에 들인 노력도 여러 자료에 나타난다. 영화의 주배경인 1940년대에 앞서 잡지 ‘한글’에 이미 1935년 실린 광고에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에서 각 지방 방언을 수집하기 위해, 사오년 전부터 부내 각 중등학교 이상 학생을 총동원해 하기 방학 시 귀향하는 학생에게 방언을 수집하였던 바, 이미 수집된 것이 만여 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장차 정리하여 사전 어휘로 수용할 예정입니다.”
 
한글학회가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한글학회가 소장한 조선말 큰사전 원고.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조선어학회는 각지에서 보내온 사투리를 잡지에 실은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사투리 수집에 활용할 전용 수첩도 만들었다. 국어학자 최현배(1894~1970)가 엮은 『시골말 캐기 잡책』이 그것. 주제별로 약 1000여개에 달하는 낱말을 늘어놓고 빈칸에 이에 해당하는 각 지방의 말을 적도록 했다. 머리말을 보면 ‘시골말’의 반대가 ‘서울말’이 아니란 점도 적혀 있다. “여기서 시골말이란 것은 대중말(標準語·표준어)과 사투리를 아직 구별하지 않은 모든 시골(地方·지방)의 말을 이름이니, 서울말도 서울이란 한 시골(地方·지방)의 말로 보고서 캠이 옳으니라”
 
영화 마지막에는 조선어학회 실제 사전 원고가 등장해 묵직한 감동을 준다. 영화에서 이를 되찾는 과정은 상상력을 발휘한 허구이지만,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서울역 창고에서 원고가 기적적으로 발견된 건 사실이다. 그 감격은 2년 뒤 나온 『큰사전』(1권, 총 6권 완간은 1957년)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이날 원고가 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으며, 원고를 손에 든 이의 눈에는 더운 눈물이 어리었다.”
 
2만 6500여 장, 총 17권의 방대한 원고 가운데 12권은 한글학회가, 5권은 한글학회의 기증으로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는 한글학회의 소장본 가운데 ‘시~싶’ ‘유~윷판’ ‘ㅎ~허리’ 등 세 권이 나왔다. ‘유’로 시작하는 낱말 중에는 ‘유관순’도 눈에 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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