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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찾아나선 강아지, 가족 찾아나선 네 살 꼬마

중앙일보 2019.01.15 00:03 종합 23면 지면보기
한·일 애니 대표감독들의 신작
‘언더독’은 떠돌이 개 뭉치(맨 오른쪽)와 친구들의 로드무비. [사진 NEW]

‘언더독’은 떠돌이 개 뭉치(맨 오른쪽)와 친구들의 로드무비. [사진 NEW]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이름난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신작이 16일 나란히 개봉한다. ‘언더독’은 8년 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을 세운 오성윤(56) 감독과 이춘백(55) 애니메이션 감독이 공동연출을 맡아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는 개들의 모험을 그린다. ‘미래의 미라이’는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에 이어 호소다 마모루(52) 감독이 어린 소년의 시간여행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감독들을 서울에서 차례로 만났다.
 
먼저 ‘언더독’이란 제목은 이길 가능성이 낮은 약자란 뜻. 두 감독은 “약자들이 힘을 합쳐 무모해 보였던 뭔가를 이뤄내는 성취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뭉치(목소리 도경수)가 떠돌이 개 짱아(박철민), 들개 밤이(박소담) 등과 자유를 찾아 인간세상을 벗어나는 여정을 좇는다. 두 감독은 미술대학 선후배로 만나, 애니메이션으로 의기투합한 지 올해로 25년째. ‘언더독’은 기획단계부터 6년을 함께 바쳤다.
 
이춘백(左), 오성윤(右)

이춘백(左), 오성윤(右)

각본은 오성윤 감독이 썼다. TV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버려진 시츄를 본 것이 계기였다. “유기견 문제를 잘 몰랐을 때라 깜짝 놀랐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도 10일 안에 입양 안 되면 죽을 운명이라더라. 나중에 여러 개 농장(공장식 번식장)을 취재하며 만난 개들도 너무 슬퍼 보였다. 모든 생명체에겐 자유·행복의 추구권이 있잖나. 그런 개들이라면 인간과 공존하지 않는 환경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굵직한 이야기는 제가 쓰고, 디테일은 애견인이기도 한 이 감독이 잡아줬는데, 이 지점에서 충돌이 좀 있었다.”(오성윤 감독) “우리가 다루려는 개들은 인간과 살기 위해 끝없이 개량돼온 종이잖나. 그들에겐 인간과 함께하는 것도 행복의 하나이지 않을까. 오 감독과 논의 끝에 이런 부분을 극 중 에피소드에 반영했다.”(이성백 감독)
 
뭉치를 보더콜리 종으로 설정한 이유도 뚜렷하다. 오 감독은 “활달한 양몰이 견종이라 아파트에서 키우려는 자체가 잘못된 일인데 강아지 때 귀엽다고 데려왔가 커지면 감당 못 하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뭉치의 진한 눈썹과 큰 눈은 목소리를 연기한 도경수와 판박이. 배우가 목소리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 표정과 감정표현까지 그림에 살려냈다. 재개발지역부터 비무장지대(DMZ) 대자연까지 서정적 화풍의 배경도 눈길을 끈다. 개농장·로드킬 등 비극적 현실도 담았다. “버려진 생명체에겐 그런 잔혹한 현실이 팩트다. 담지 않을 수 없었다.”(오성윤 감독) “강아지가 그저 귀엽다고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도 책임감을 알려주고 싶었다.”(이춘백 감독)
 
‘미래의 미라이’는 네 살배기 소년 쿤(가운데)과 미래에서 온 여동생 미라이의 시간여행 이야기다. [사진 얼리버드 픽쳐스]

‘미래의 미라이’는 네 살배기 소년 쿤(가운데)과 미래에서 온 여동생 미라이의 시간여행 이야기다. [사진 얼리버드 픽쳐스]

반면 ‘미래의 미라이’는 4년 전 둘째가 태어나자 큰아이가 부모 사랑을 빼앗겼다고 느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주인공은 네 살배기 소년 쿤. 갓 태어난 여동생 미라이 때문에 인생 최대 위기에 처한 그에게 미래의 미라이가 찾아온다. 시간여행에 나선 쿤은 증조부모까지 4대에 걸쳐 가족을 만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아이가 어떤 식으로 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이제껏 제가 만든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큰 테마”라고 말했다.
 
이들 가족은 미라이가 태어난 뒤 엄마가 복직하고 아빠가 육아와 살림을 맡는다. 감독은 “근대화 과정에서 어머니다움, 아버지다움을 중시했던 시기가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가족의 형태와 의미를 개인이 각자 찾아야지 사회가 규정짓는 것은 아니란 생각에 부부의 젠더 모드를 역전시켰다”고 말했다. “극 중 대사는 대부분 우리 부부가 나눈 말이다. 처음 아이를 돌보게 됐을 때 아내를 계속 쳐다보며 어떡할지 물으니 ‘나 말고 아이를 보라’더라. 그때만 해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서야 제대로 의미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느끼게 됐다.”
 
호소다 마모루

호소다 마모루

다채로운 화풍도 볼거리다. 상상 속 괴물이 등장하는 기차역 장면이 공포영화처럼 오싹하다면, 가족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무 속에 빨려드는 장면은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이 두드러진다. 과거로 간 쿤이 어린 시절의 엄마와 신나게 노는 장면도 재미있다.
 
영화에는 쿤의 외증조부가 2차 대전 때 다리부상을 입고 고통스레 생존하는 장면도 나온다. 호소다 감독은 “아내 할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라며 조심스레 설명했다. “부상을 딛고 할머니와 결혼한 사연을 그리려다 보니 전쟁장면이 들어갔다. 결코 특정 시각에서 전쟁을 표현하려던 의도는 아니었다. 한국이나 중국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 알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전쟁에 휘말린 서민들의 전 세계 공통된 경험으로서 그렸다.”
 
그 자신에게 힘이 됐던 과거의 순간으로는 “1991년”을 꼽았다.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상당히 큰 도에이란 회사에 들어갔는데 애니메이션계의 현실은 소문대로 가혹했다. 월급은 적고 장시간 일하고 보장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림 실력조차 기대에 부응 못 해 그만두겠다 생각했을 무렵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가 출시됐다. 이렇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하면서 계속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스기이 기사부로 감독의 ‘은하철도의 밤’도 제겐 그런 ‘인생 애니메이션’이다.”
 
두 작품은 국경을 넘어 호평을 받고 있다. ‘언더독’은 지난해 중국 ‘실크로드영화제’에서 베스트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했다. ‘미래의 미라이’는 수상은 못 했지만,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다. 호소다 감독은 “골든글로브 진출도 영광스럽지만, 해외에서 가장 먼저 제 작품을 환영해준 영화제는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처음 찾은 부산국제영화제”라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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