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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로 간 국민은행 분쟁…“파업해도 티 안 나는데”

중앙일보 2019.01.15 00:03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 8일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홍역’을 치른 국민은행이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희망퇴직 조건에 대한 노사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53~54세 이상 직원 21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서를 받았다. 은행 측은 이달 중 인사위원회 등을 거쳐 최종 희망퇴직 인원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희망퇴직을 하는 인원은 지난해(407명)보다 많아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희망 퇴직자들에게는 최대 39개월 치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특별퇴직금과 자녀학자금 지원 혜택 등을 준다. 39개월 치의 특별퇴직금을 돈으로 환산하면 1인당 3억~4억원에 달한다.
 
희망퇴직 합의로 잠시 훈풍이 불었던 국민은행의 노사 관계는 지난 주말 집중교섭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다시 냉랭해졌다. 노조는 14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노사 협상의 중재안을 마련해 달라는 사후조정을 신청했다. 노조는 파업 참가자들의 출·퇴근 여부를 기록하라고 지시한 사용자 측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낼 계획이다.
 
노조는 설 연휴를 앞둔 오는 30일과 다음 달 1일의 이틀에 걸쳐 2차 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만일 2차 파업이 현실화되면 노조는 물론 허인 국민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도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귀족노조의 파업’이라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에도 국민은행 노사 협상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임금 문제뿐 아니라 은행 내부에 풀기 어려운 숙제가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어서다. 특히 직원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노노 갈등’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노조는 2014년 정규직으로 전환된 최하위 직급(L0) 2600여 명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 이들의 경력을 최대 10년까지 인정해 호봉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정규직 직급(L1)의 일부 직원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은행의 한 대리급 직원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고 입사한 직원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현재 L0 직원의 평균 급여가 5300만원 수준인데 과거 경력 기간을 인정하면 L1 직급의 연봉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사측도 직원 간 형평성 논란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진입 시기 연장,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페이밴드(호봉 상한제) 등 핵심 쟁점에서도 노사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파업의 부메랑은 이미 노조원에게 돌아오고 있다. 유휴 인력이 많았던 것이 증명된 만큼 인력을 더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은행 안팎에서 나온다. 노조 추산 9000여 명, 은행 추산 5500여 명이 참여한 지난 8일 1차 파업에도 영업 현장에선 큰 혼란이 없었다. 인터넷 게시판 등에선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어서 파업하는 줄도 몰랐다”는 말까지 나왔다.
 
대부분의 은행 업무는 인터넷·모바일뱅킹이나 현금 자동입출금기(ATM) 등을 이용해 지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자금융 공동망을 이용한 계좌 이체 규모는 하루 평균 51조3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 증가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시스템의 전산화가 잘돼 있기 때문에 노동력 공급을 중단하는 파업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업에도 은행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유휴 인력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는 “이번 총파업 사태를 통해 은행권도 영업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깨닫게 됐을 것”이라며 “유휴 인력의 재교육을 통해 자산관리(WM) 등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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