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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감 몰아주기, 불법파견…공공부문에선 해도 되나

중앙일보 2019.01.15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본사 직접고용 방식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아닌 본사 직접고용 방식을 요구하며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설립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경우 모(母)회사가 100% 출자해야 한다. 사실상 공공기관화하는 셈이다. 또 자회사에 독점적, 지속적으로 일거리를 줘야 한다. 직원의 임금과 고용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일감 몰아주기다.
 
정부가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공기업의 자회사 운영 지침을 마련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이다. 정부는 조만간 이를 발표하고 곧바로 시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2017년 7월부터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계약직·파견·용역 근로자 20만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상당수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자회사를 만드는 방식을 쓴다.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운영비가 절감되고, 인원 관리의 어려움을 덜 수 있어서다. 이용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3만2514명이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이 확정된 5만9470명의 55%다.
 
이 과정에서 노사갈등과 노노갈등이 잦다. 불법파견·위장도급 논란에다 근로자 처우 문제까지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회사 운영 지침을 마련한 것은 공통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이런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부문 자회사 설립과 운영 지침.

정부가 마련한 공공부문 자회사 설립과 운영 지침.

운영 지침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모회사가 자회사에 100% 출자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의계약 보장 ▶임원과 관리직 수 가급적 최소화 ▶경영 독립성 보장 ▶모회사와의 소통 연계성 강화 ▶노동이사제 등 경영 투명성 확보 ▶모자(母子)회사 간 업무협의체 운영 ▶모회사의 사내근로복지기금 공동 활용 ▶자회사 예산·산업 안전에 대한 모회사 책임 강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기초한 성과형 연봉제 ▶CEO 선발 시 공정채용 시스템 구축 등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자회사를 독립적 전문 서비스 조직으로 대접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침이 자회사의 예산과 인력운용 등 경영 전반과 일감, 노사협의까지 규율하고 있다”며 “기업 지배구조에 직접 간여하는 것으로 향후 위장도급이나 불공정 거래 같은 법적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독립성을 보장한다면서 임원 최소화 방침이나 예산 운용에 모회사 책임을 강조하는 등 모순도 많다”며 “더욱이 노동이사제와 같은 여러 실험을 자회사에서 하려는 의도까지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비대화=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나온 인천공항공사만 해도 자회사가 3개 넘는다. 공항운영, 시설, 보안경비 등이다. 공공기관이 이처럼 직무별로 자회사를 만들면 338개 공공기관의 자회사가 1000여 개에 이를 수 있다. 지침은 민간자본의 지분 참여를 배제했다.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공공기관이 3배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공공기관의 비대화는 민간 사업자의 먹거리를 빼앗고, 방만·적자 경영 우려를 낳는다.
 
특히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모회사가 자회사의 경영·노무관리에 개입하거나 자회사 근로자의 업무를 지휘·감독하면,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인정된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 근로자는 모회사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뀐다.
 
◆위장 도급 논란=자회사는 모기업인 공공기관과 업무위탁계약(도급계약)을 맺는다. 자회사 근로자는 이 계약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일을 한다. 2003년 대법원은 모회사가 100% 출자(소유)한 자회사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모자(母子)회사 관계로서 사실상의 결정권은 모기업에 있다. 따라서 업무도급 계약은 위장도급”이라고 판결했다. 자회사가 모회사의 사업부서 또는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 위장도급일 경우 근로자는 자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모회사와 근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모회사의 직원이라는 얘기다.
 
낙하산 인사도 위장도급 요소다. 정부는 ‘전문성 없는 낙하산 취업을 방지하기 위한 공정한 CEO 선발 시스템 구축’을 지침에 명시했다. 그러나 모회사 직원에게 전문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남동발전은 자회사 대표이사를 내부에서 공모했다.
 
◆불법파견 지뢰=자회사가 여러 공공기관과 거래하지 않고 하나의 공공기관에 전속(종속)되는 것은 불법파견 소지를 안게 된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협회 수석위원은 “공공기관의 자회사는 도급회사의 업무 지정이나 지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불법파견 요소”라고 말했다.
 
정부 지침에는 ▶모·자회사 간 경영협약을 통해 자회사 운영 및 서비스를 합리적 수준으로 관리 ▶임금수준은 모회사의 예산을 고려해 적정수준에서 결정 등 사실상 모회사에 관리 의무를 줬다. 심지어 노동조건, 작업환경, 복지 등을 협의하기 위한 공동 협의체 운영도 명시했다. 사실상 이 협의체가 노사 교섭창구의 역할을 할 전망이다. 노무지휘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든 셈이다.
 
◆부당 거래=자회사에 일감이 수의계약으로 제공된다. 독점적, 지속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비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자회사와의 수의계약이 관련 규정에 위배되자 해당 규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공기업·준공공기관 계약 사무규칙’ 등에 따르면 ▶해외 물품의 현지구매 ▶국가안전보장 등에 따른 비밀 계약 ▶국산화 촉진 물품의 계약 등 예외적인 사유에만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입찰 계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정규직 전환을 서두르기 위해 이 규정을 지난해 7월 개정해 사실상 모든 업무에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처럼 공공기관이 수의계약으로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민간부문의 공공기관 거래는 사실상 막힌다. 또 민간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공공부문에선 허용하는 이중잣대도 논란거리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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