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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왈칵하던 감정이 갑자기 나를 시인으로

중앙일보 2019.01.14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2)
갑자기 아마추어 시인이 되었다. 몇 년 전 어느 퇴근길 며칠 동안 업무 스트레스가 쌓였던지, 정신적인 공복감과 갈증을 느끼며 ‘하루하루 흘린 나의 땀은 대체 뭐로 남을까’ 생각하다가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에 꾹꾹 몇 글자 입력한 것이 ‘시’라는 이름을 달고 얼마 전에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붙었다. 수필을 쓰던 내가 시를 써서 남 앞에 내보이자니 나로서도 어리둥절하다.
 
좀도리쌀. 내 이름으로 시가 노출된다는 게 어색하고 신기하다. 동묘 앞, 사당, 충무로, 아차산, 대림역에 붙었다. [사진 박헌정]

좀도리쌀. 내 이름으로 시가 노출된다는 게 어색하고 신기하다. 동묘 앞, 사당, 충무로, 아차산, 대림역에 붙었다. [사진 박헌정]

 
시와 산문은 무척 다르다. 스포츠로 치면 야구와 축구만큼 다를 것 같다.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 김동리 선생의 이 표현이 절친인 미당 서정주 시인에게 큰 느낌으로 와 닿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가슴 절절한 한(恨)의 정서다. 미당이 동리에게 "아, 벙어리도 꽃이 피면 운다라…. 참 좋네. 자네 시인 다 되었네" 했더니 김동리는 "무슨 소리야? 벙어리도 꼬집히면 운다고 했는데?" 시인과 소설가 사이의 이 멀고 먼 거리감!
 
그러니 수필을 쓰는 내게 시의 세계는 참 어렵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 서점에서 시간 보내다가 감성을 살짝 건드리는 표현에 이끌려 얇은 시집을 사거나, 시인이나 그 주변인에게 시집을 선물 받은 적은 많지만 끝까지 읽기는커녕 며칠 옆에 두고 읽기도 힘들었다.
 
문자와 문장 속에서 실행 적인 답을 찾아내야 하는 회사원으로서 시는 말 그대로 다른 언어였고 야근, 아니 밤샘근무를 해도 풀리지 않을 코드였다. 삶의 큰 방향보다 사무실에서 하루를 헤쳐나갈 즉답이 필요했고, 시집보다 경제신문이 더 유용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시를 읽으라고 해서 읽어봤더니 속에서 더 열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퇴근길에 고단한 나의 노동과 나를 키워낸 어머니의 노고가 오버랩 되면서 이런 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동안 지하철 승강장의 시에 대해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가 많았다. 찾아보니 2011년부터 시민에게 공모해서 게시했는데 처음에는 문학단체들에 맡겼더니 동호회 중심으로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이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혹평하는 가운데 그래도 시민들 반응은 ‘좋은데 왜?’였다고 하니 우리 문단 중심부와 대중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직접 공모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고 한다. 꽤 번거롭던 응모절차와 ‘시상이나 원고료 없음’처럼 냉랭한 안내 문구에도 불구하고 경쟁률이 10대 1까지 된 것을 보면 시민들의 문학적 열정이 대단한 것 같다.
 
우리 생활 속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전부 시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호흡만 여유롭게 가다듬는다면. [사진 박헌정]

우리 생활 속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전부 시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호흡만 여유롭게 가다듬는다면. [사진 박헌정]

 
사실 내 인생에는 시를 남길만한 여유 공간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마른 식빵처럼 거칠게 쪼개지며 부스러기를 남기던 직장생활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가슴 한쪽이 약간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가 평소에 글로 줄줄이 풀어내던 이야기를,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변형해봤다. 의미가 통하는 한도 내에서 내용을 압축하고 짧은 단어로 바꾸고 읽기 쉽도록 줄 바꿈을 해봤더니 작가인 한 선배가 꽤 괜찮다며 시 쪽으로 한번 애써보라고 얘기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과분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핸드폰
핸드폰의 쓸 데 없는 전화번호들을 지우는데,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박.기.춘. 세 글자
괜히 당황한다.
무심결에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급히 끊었다.
지울까 말까 하다가
쓸 데 없는 번호를 지우기로 한 원칙에 따라
지.웠.다.
이 번호는 ‘쓸 데’가 없다.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려 그 번호가 찍히는데
아버지 이름은 뜨지 않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잘못 눌렀다며 양해를 구했다.
잘못 눌러 미안하다고, 예전에는 잘 안 눌러 미안하던 그 번호,
이제는 눌러서 미안하다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는 착한 목소리.
아버지, 번호는 잘 넘기고 가신 것 같아요.
 
부끄러울 정도로 거칠지만 오히려 생각 없이 솔직하게 쓰니 마음 편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시’라는 물건은 상당히 그쪽으로 나아간, 그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 감히 넘볼 수 없던 세계였던 것 같다. 그러니 힘이 잔뜩 들어가고 겉멋부터 부리려 했다. 이제 가장 자연스러운 게 가장 ‘나’다운 것임을 안다.
 
누가 "이게 무슨 시야?" 하고 야단치면 그냥 씩 웃을 생각이다. 어차피 내가 쓰는 시는 생활의 묵은 때가 낀 이야기다. 전문가들 보기에는 못마땅할지 몰라도 내 생활 속에 글이 있고 글 속에 내 행복이 있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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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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