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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고 학대당한 개들의 행복은 인간 세상 탈출 아닐까요

중앙일보 2019.01.14 10:57
애니메이션 '언더독'에서 산에서 살아가는 개 밤이(목소리 박소담). 밤이가 들개가 된 사연엔 실제 우리 사회의 비정한 현실이 반영됐다. [사진 NEW]

애니메이션 '언더독'에서 산에서 살아가는 개 밤이(목소리 박소담). 밤이가 들개가 된 사연엔 실제 우리 사회의 비정한 현실이 반영됐다. [사진 NEW]

“북한산 들개에 대한 뉴스를 봤는데 등산객에게 위협이 돼 포획했단 사실 보도만 하더군요. 이 개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도 언급해야 하는 게 아닌지, 아쉬웠죠. 결국 사람이 만든 문제니까요. 인간이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유기견 문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16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언더독’을 만든 오성윤(56) 감독의 말이다. 영화는 주인에게 버려진 강아지 뭉치(목소리 도경수)가 떠돌이 개 짱아(박철민), 들개 밤이(박소담) 등과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선 여정을 좇는다. 인간을 벗어나 주체적 자아를 가진 생명체로서 개들이 추구할 행복을 그렸다.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신기록인 220만 관객을 모은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2011)을 잇는 주제다.  
 
공동연출에 나선 이춘백(55) 감독은 오 감독과 미대 선후배로 만나, 애니메이션으로 의기투합한 지 올해로 25년째. ‘마당을…’에선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데 이어 이번엔 기획 단계부터 6년을 함께 바쳤다. 이들을 개봉에 앞서 서울 압구정동에서 만났다.  
 
영화 제목은 승부에서 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란 뜻. “약자들이 힘을 합쳐 무모해 보였던 뭔가를 이뤄내는 성취를 보여주려 했다”고 두 감독은 말했다.
왼쪽부터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 오성윤 감독. [사진 NEW]

왼쪽부터 '언더독'을 연출한 이춘백, 오성윤 감독. [사진 NEW]

 
-동명 동화 바탕이던 전작과 달리 오리지널 각본이다. TV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버려진 시츄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오성윤 감독 “유기견 문제를 잘 몰랐을 때라 깜짝 놀랐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도 10일 안에 입양 안 되면 죽을 운명이라더라. 여러 개 농장(공장식 번식장)을 취재하며 만난 개들도 너무 슬퍼 보였다. 모든 생명체에겐 자유‧행복의 추구권이 있잖나. 그런 개들이라면 인간과 공존하지 않는 환경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굵직한 이야기는 제가 쓰고, 디테일은 애견인이기도 한 이 감독이 잡아줬는데, 이 지점에서 충돌이 좀 있었다.”
이춘백 감독 “우리가 다루려는 개들은 인간과 살기 위해 끝없이 개량돼온 종이잖나. 그들에겐 인간과 함께하는 것도 행복의 하나이지 않을까. 오 감독과 논의 끝에 이런 부분을 극 중 에피소드에 반영했다.”
 
-주인공 뭉치를 보더콜리 종으로 정한 이유는.  
오 감독 “활달한 양몰이 견종이라 아파트에서 키우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인데 강아지 때 귀엽다고 구매‧입양해놓고 커지면 감당 못 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시츄‧몰티즈 등 사람들이 흔히 키우는 견종을 등장시켰다.”
 
보더콜리 종인 주인공 뭉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도경수의 외모와 표정이 캐릭터에 반영됐다. [사진 NEW]

보더콜리 종인 주인공 뭉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도경수의 외모와 표정이 캐릭터에 반영됐다. [사진 NEW]

뭉치의 진한 눈썹, 큰 눈은 목소리를 연기한 도경수와 판박이다. 목소리를 맡은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보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녹음한 모습을 촬영해, 표정과 감정표현 등을 그림에 살려냈다. 실제 유기동물 보호에 앞장서온 가수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닮은꼴 캐릭터도 나온다. 변두리 재개발지역부터 비무장지대(DMZ)의 대자연까지 뭉치의 여정이 펼쳐지는 서정적인 화풍의 배경도 눈길을 끈다. 
 
-왜 DMZ였나. 
이 감독 “한반도에서 사람 없는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떠올랐다.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로서 스스로도 억눌려 있던 것을 좀 깨보려 했다”
 
-모험담엔 개농장‧로드킬 등 비극적 현실도 담았다.
오 감독 “버려진 생명체에겐 그런 잔혹한 현실이 팩트다.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감독 “아직도 쇼핑몰 애견코너의 화려한 조명 속에 전시된 개들이 어떤 유통구조를 거쳐서 왔는지 모르는 분이 많더라. 강아지가 그저 귀엽다고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도 책임감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 떠돌이 개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핍박받는 장면을 들며 “요즘 인터넷 댓글을 보면 그런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적대적이란 걸 느낀다. 동물에 대한 관점은 사회적 약자에게로 확장된다. 결국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오 감독은 이에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적대관계, 대결 구도 속에 살아오고 교육받은 결과”라 강조했다. 
 
'언더독'의 북한 상영을 추진 중이라고. 
오 감독 “미래로 나아가려면 적대보단 공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어떤 형식이든 통일이 되길 염원한다. 문화적 장벽이 낮은 애니메이션은 남북한 교류의 첨병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자유를 찾아 떠난 개들 앞엔 여러 번 철책 장벽이 나타난다. [사진 NEW]

자유를 찾아 떠난 개들 앞엔 여러 번 철책 장벽이 나타난다. [사진 NEW]

강산을 가로지르는 모험 속에 개들은 야생의 본능을 일깨우기도 한다. [사진 NEW]

강산을 가로지르는 모험 속에 개들은 야생의 본능을 일깨우기도 한다. [사진 NEW]

고단한 순간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뭉치와 친구들. [사진 NEW]

고단한 순간 서로에게 힘이되어주는 뭉치와 친구들. [사진 NEW]

지난해 ‘언더독’은 중국 정부가 주최하는 3대 국제영화제 ‘실크로드영화제’에서 중국‧러시아‧일본 등의 경쟁작을 제치고 베스트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했다. 주제의식과 영상미가 호평받았다. 사드 배치 문제로 인한 중국 정부의 한한령이 해제되지 않은 시기에 거둔 성과다. 중국 현지 배급사와 정식 개봉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픽사·지브리가 꿈이라고. 
오 감독 “전작이 성공했음에도,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은 흥행이 힘들단 인식 탓에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 예정됐던 중국 투자가 사드 문제로 철회되며 직접 제작에 참여해 개인적인 빚까지 졌다. 지금은 한 작품이 끝나면 각자 생업을 위해 뿔뿔이 흩어지는 게 국내 애니메이션 현실이다. ‘언더독’이 잘되면 픽사‧지브리 못지않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어 성인 관객에게도 인정받은 극장용 장편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데 힘쓰고 싶다.” 
 
-준비 중인 차기작도 여럿이다. 
오 감독 “‘언더독’에 6~7년을 매달리고 보니, 한두 편만 더 만들면 할아버지가 되겠더라(웃음). 여러 작품을 교차해서 준비하며 시나리오가 잘 나오는 것부터 제작하려 한다.”
이 감독 “우선, 중국 동명 소설이 토대인 ‘너는 내 동생’이 있다. 중국 도시 소녀 둘이 소수민족인 묘족을 만나며 겪는 성장담이다. 유기묘에 대한 이야기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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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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