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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외교, 원로에게 묻다]반기문 “한·일 외교, 역사 앞세우면 아무것도 못 한다”

중앙일보 2019.01.14 00:55 종합 6면 지면보기
반기문(75)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올해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라고 말했다. 정점에도 올랐지만, 그는 그만큼 큰 좌절도 겪었다. 
1970년 2월 외교부 생활을 시작한 이래 김영삼 정부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96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외교보좌관·외교통상부 장관(2004~06년)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2007~16년)을 마쳤다. 2017년 초 잠시 대선 후보 출마라는 외도를 했으나 뜻을 접고 민간 외교로 컴백했다. 2017년 5월 연세대 아펜젤러관의 글로벌사회공헌권 명예원장을 맡은 이래 반관반민(半官半民) 활동을 하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 보아오 포럼(아시아지역 경제포럼) 이사장,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 등을 맡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중앙일보 박승희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다. 강정현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3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중앙일보 박승희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다. 강정현 기자

지난 3일 반 전 총장을 연세대 사무실에서 만나 한국 외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했다. 강제노역 배상판결 이후 위태로운 한·일 관계와 관련해 “역사 문제를 지금처럼 외교관계의 전면에 두면 대통령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교부 내 미국·일본 담당자들이 소외된다고 하자 “특정 정권의 특수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투입된 직업외교관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책임을 묻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외교의 신의를 떨어뜨린다”고 우려했다.

 

만난 사람=박승희 편집국장, 정리=전수진·이유정 기자 chub.sujin@joongang.co.kr
  

 
새해 벽두부터 한ㆍ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크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국면에서 워싱턴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계속 나온다고 하는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원만하게 빨리 해결할수록 좋다. 방위비가 주한미군의 장래와 조금이라도 연계된 인상을 줄 필요가 없고, 줘서도 안 된다. 한ㆍ미 동맹은 그냥 동맹이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이다. 미국은 전세계에 30만 명가량의 해외주둔군을 두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반도는 위험요소가 높다.”
 
여당 일각에선 방위비를 인상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줘야 된다. 대통령 외엔 아무도 결정 못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국에선 현재 5년 단위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는 패턴을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1년 내내 협상만 하자는 얘기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내가 미주국장(현 북미국장)을 지낼 때였던 1990년대 초에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자 미국이 그때 처음 분담하자고 나왔었다. 방위비 문제가 쟁점으로 남는 건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속도를 내야 한다. 지금 협상 국면을 보면 실무진이 마음대로 협상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 대통령의 결단이 남았다.” 
 
능수능란한 北, 옛날 수법 그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미국에 공을 넘겼다. 핵 사찰, 핵 리스트 제공 등 미국이 요구해온 사안이 다 빠졌다.
“김 위원장 신년사를 보고 첫째로 든 생각이 ‘옛날 택틱(tacticㆍ수법) 그대로구나’였다. 90년대부터 북한 문제를 직ㆍ간접으로 다뤄왔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모든 것을 내어줄 듯 이야기해 왔다. 91년 12월 남북이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을 때 전 세계가 박수를 치지 않았나. 하지만 당시 북한은 국제적으로 공산주의가 무너지며 어려운 시기였고, 그 시기가 지나가자 1년 만에 예전으로 돌아갔다. 올해 신년사에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일종의 협박까지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선대의 협상 스타일을 답습하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미국 대통령이다. 2차 북ㆍ미 회담 전망은.
“자신감을 과시하는 스타일인 트럼프 대통령은 2차 회담을 두고 고민이 많을 거다. 1차 회담은 본인이 자랑을 많이 했지만 비판적 시각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2차 정상회담이 실질적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국제사회 비판을 감당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 어려움 속에서) 국면 전환을 위해 북한 문제를 타결하려 나서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우리한테도 바람직하지 않다. 서두르면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 레벨의 ‘톱다운(top down)’도 중요하지만 틀을 잡은 후엔 북한의 실무 라인이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북한은 시간을 끌고 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벌써 10번은 만났어야 하는데 한번도 못 만났다. 북한이 능수능란하다.”
 
돌파구는 뭘까.
“지금까지 북한의 교섭 행태를 볼 때 변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어려운데 마치 문재인 대통령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공을 넘겼다. 지난해 3월 정의용 대통령 안보실장이 대북 특사로 (평양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한ㆍ미 간의 연례적인 군사훈련에 대해서 ‘이해한다’고 했다가 최근엔 한·미 연합훈련 중지와 미 전략자산 철수 등의 조건을 걸고 있다. 우려스럽다.”
 
 
91년 남북 핵 협상 막내로 만났던 北 김영철, 협상 최전선에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검증 리스트를 내놓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약속이 다른 거다. 협상을 해 본 사람은 금방 보인다. 그런데 우리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수명이 너무 짧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91년 남북 협상에도 관여했다. (당시 사진을 보여주며)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김영철 부장이 당시 협상단에선 막내였는데도 기세가 아주 등등했다. 우리는 어떤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 대통령 바뀔 때마다 외교부ㆍ통일부 장관은 물론 협상 대표도 바뀐다. 대통령의 핵심 세력, 측근들 중심으로 문제를 풀면 효과가 빠른 것처럼 보여도 생명력이 길지 않다. 전문가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1991년 12월 남북간에 열린 핵협상 고위급회담. 회담 남측 수석대표였던 임동원 장관과 함께 협상에 나섰던 반기문 총장이 북측 협상단과 악수하고 있다. 북측 협상단의 제일 끝에 김영철(빨간 원)이 보인다. 당시 북측 협상단의 막내였던 김영철은 현재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남북 및 북미 협상의 전면에 나서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제공]

1991년 12월 남북간에 열린 핵협상 고위급회담. 회담 남측 수석대표였던 임동원 장관과 함께 협상에 나섰던 반기문 총장이 북측 협상단과 악수하고 있다. 북측 협상단의 제일 끝에 김영철(빨간 원)이 보인다. 당시 북측 협상단의 막내였던 김영철은 현재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으로 남북 및 북미 협상의 전면에 나서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제공]

 
한ㆍ일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최악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유엔 사무총장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며 느낀 점이 있다. 친구와 배우자는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 국가는 못 바꾼다. 숙명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역사 문제를 지금처럼 외교 관계의 전면에 배치하면 대통령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지혜가 필요한 문제다.”
 
해법은 뭘까.
“역사를 외교의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 국민감정을 자극하게 되고, 이를 거스를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문제는 냉철하게 접근해 실리를 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ㆍ일 관계가 이렇게 꼬이면 남북 관계에도 영향이 있지 않나.
“맞다. 향후 북한 문제가 풀리게 되면 일본도 국제적, 경제적으로 역할이 생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평소에 관계를 잘 해둬야 하는데, 국민감정이 너무 안 좋다. 지난달 일본에서 고위 관료와 정·재계 인사들을 만났는데 분위기가 심하게 냉소적이어서 깜짝 놀랐다. 예전엔 위안부 등 이슈를 얘기할 때 일본이 수세적 입장이었는데 요즘엔 ‘우리도 할 말 있다’는 식으로 나온다. 한ㆍ일 관계는 지금이 최악이다.”
 
DJ에게 배워라…역사가 걸림돌 되면 안 된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이나 전략이 시급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배우자. 김 전 대통령이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당시 일본 총리와 역사적인 선언을 했을 때, 당시 한ㆍ일 관계가 좋았는가.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혜안을 갖고 한ㆍ일 관계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역사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보고 풀어준 거다.”
  
대중국 외교도 정상회담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는 등 답보 상태다.
 “한ㆍ중 관계도 더 잘 챙겨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12일) 북ㆍ미 회담을 목전에 두고 (5월7일) 중국부터 가지 않았나. 핵 문제에 몰입하기 위해서도 김 위원장으로선 중국이 필요하다. 그런데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ㆍTHAAD) 체계 문제 여파도 그렇고, 우리의 대중 외교가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공적인 접근만 하려 하지 말고 시대의 흐름과 미ㆍ중 관계를 잘 읽고 가야 한다.”
 
인터뷰 후인 7일, 김 위원장은 3박4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며 “북ㆍ미 정상회담에 추동력을 주기 위한 북한의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현역 외교관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해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AP=연합]

반기문 전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현역 외교관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해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AP=연합]

 
50년간 한국 외교에 몸담고 유엔 사무총장도 지냈다. 외교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외교는 한마디로 종합 예술이다. 외교관이 하는 일은 단순한 ‘잡(jobㆍ직업)’이어선 안 된다. 75%는 상식으로 하면 되지만 25%는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을 길러야 제대로 된 외교관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 25%가 극적인 순간에 필요하다. 외교부가 비판을 받는 때가 있지만 외교는 상대 주권국가와도 장단을 맞춰야 하는 종합예술임을 잊지 말고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오른쪽)이 3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중앙일보 박승희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다. 강정현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오른쪽)이 3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에서 중앙일보 박승희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했다. 강정현 기자

 
외교부에서 '인적 청산' 등의 말이 나온다. 후배들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얘기도 들으셨을텐데.
“안타깝다. 젊은 외교관들이 꿈을 펴지도 못했는데 매도당하는 건 장기적으로 한국 외교의 신의를 떨어뜨리고, 이는 국가 신뢰도 저하로 이어진다. 특정 정권의 특수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투입된 직업외교관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책임을 묻는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책임은 정무직인 장관이 지면 되는 것이다. 해당 장관이 그만두고 나갔다면 책임도 거기에서 끝나야 한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기회가 있나.
“2017년에 두 번 만났고 지난해 상반기 전화통화도 한 번 했다. 여러 조언을 했는데 상당히 경청하시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한두 명을 따로 불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들으시고, 토론도 자주 하셨던 기억이 난다….”
 
 만난 사람=박승희 편집국장, 정리=전수진ㆍ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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