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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로 양치질 해야하나…플라스틱 없는 고통의 3일

중앙일보 2019.01.12 11:00
시중에 판매되는 화장품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평소 화장대(왼쪽)의 모습과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화장품을 치우고 난 후 텅빈 화장대의 모습. 종이 포장된 고체로션과 알루미늄 통에 담긴 립밥만이 남았다. 박해리 기자

시중에 판매되는 화장품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평소 화장대(왼쪽)의 모습과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화장품을 치우고 난 후 텅빈 화장대의 모습. 종이 포장된 고체로션과 알루미늄 통에 담긴 립밥만이 남았다. 박해리 기자

필리핀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 산. 합성 플라스틱 조각으로 둔갑해 불법 수출된 이 쓰레기 더미에는 한국어가 적힌 전자제품, 기저귀 등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포함됐다. 환경부가 한국에 다시 가져오기로 했지만, 이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김미경 플라스틱 캠페인 팀장은 “한국은 국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플라스틱을 소비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소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플라스틱 없는 3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린피스가 공개한 한국이 필리핀에 불법 수출한 폐기물. 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지난해 7월부터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 타골로안 자치주 소재 베르데 소코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져 있다. 환경부는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6천300t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기 위해 현재 필리핀 정부와 협의 중이다.[연합뉴스]

그린피스가 공개한 한국이 필리핀에 불법 수출한 폐기물. 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는 지난해 7월부터 필리핀 미사미스 오리엔탈 타골로안 자치주 소재 베르데 소코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져 있다. 환경부는 필리핀에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6천300t을 국내로 다시 들여오기 위해 현재 필리핀 정부와 협의 중이다.[연합뉴스]

#1일 차



박해리 기자(이하 박)- 일단 우리가 꼭 써야 하는 플라스틱은 제외해봅시다. 업무를 위해서 꼭 필요한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기로 해요. 대신 마우스는 쓰지 말고요.


이가영 기자(이하 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쓰려면 충전기도 필요할 것 같아요. 충전기도 모두 플라스틱으로 돼 있더라고요.


박- 그렇네요. 충전이 되지 않으면 두 전자기기는 모두 무용지물이니. 플라스틱도 종류가 워낙 많지만, 일상 생활용품에 많이 쓰는 페트(PET), 비닐봉지나 포장 용기에 주로 사용되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과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과자 포장지에 주로 쓰이는 폴리스티렌(PS)이 포함된 플라스틱을 제외하기로 해요.


이- 막상 플라스틱 안 쓰려고 보니까 너무 어려워요. 일단 씻는 게 제일 문제예요. 샴푸·린스·샤워젤·손 세정제·치약까지 다 플라스틱에 담겨 있잖아요. 그러고 보니 칫솔은 플라스틱 그 자체네요. 이거 어떡하죠?


박- 대나무 칫솔이란 게 있더라고요. 칫솔모도 돼지 털 등 천연소재로 만든 것도 있는데 돼지 털로 이를 닦는다는 건 왠지 시도하기 꺼려지네요. 대신 분해가 되는 플라스틱으로 칫솔모를 만든 대나무 칫솔을 샀어요.
고체샴푸를 5번 정도 문질렀을 때(왼쪽)와 10번 정도 문질렀을 때. 금세 고운 거품이 생겼다. 이가영 기자

고체샴푸를 5번 정도 문질렀을 때(왼쪽)와 10번 정도 문질렀을 때. 금세 고운 거품이 생겼다. 이가영 기자



이- 찾아보니 고체샴푸도 있네요. 딱딱하게 생긴 덩어리 자체가 샴푸니까 따로 포장이 필요 없어요. 5번 정도만 비볐는데 바로 거품 나더니 10번 정도 비비니까 고운 거품이 나요. 액체샴푸보다 적은 양으로 감는데, 효과는 비슷해요. 고체 린스는 거품이 나는 성질은 아니지만, 물로 헹구는 순간 머리가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져요. 그런데 걱정되는 것도 있어요. 일단 이 고체 샴푸, 린스를 보관할 통이 필요해요. 대부분 플라스틱이죠. 그리고 습기 높은 곳에 두다 보면 금방 갈라지고 부러질 것 같기도 해요.
베이킹파우더와 천일염·프로폴리스·코코넛 오일을 섞어 만든 가루 치약을 대나무 칫솔에 올려 사용했다. 박해리 기자

베이킹파우더와 천일염·프로폴리스·코코넛 오일을 섞어 만든 가루 치약을 대나무 칫솔에 올려 사용했다. 박해리 기자



박- 샴푸와 보디 샤워까지는 구할 수 있는데 치약은 정말 찾을 수가 없네요. 천연제품 파는 매장에도 고체치약은 의약품으로 분류돼서 수입할 수가 없대요. 마트에서 치약을 파는 코너에 가도 전부 플라스틱 뚜껑의 치약만 있어요. 그래서 전 직접 가루 치약을 만들었어요. 베이킹소다와 천일염 프로폴리스, 코코넛 오일을 함께 넣고 섞어서 사용했어요.


이- 치약 맛은 어때요? 시중의 치약처럼 상쾌한 맛이 나나요?


박- 일단 소금이 들어가서 짜고 온갖 게 섞여 특이한 맛이 나요. 제대로 섞이지 않은 베이킹소다 가루가 날리기도 하고. 3일 동안 이것만 써야 한다니 걱정이네요.  
 
 
#2일 차
방에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모았더니 산더미처럼 쌓였다. 화장대 위 화장품, 아령 등 운동기구, 스탠드·모니터 등 전자기기까지 전부 플라스틱 제품들이다. 박해리 기자

방에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모았더니 산더미처럼 쌓였다. 화장대 위 화장품, 아령 등 운동기구, 스탠드·모니터 등 전자기기까지 전부 플라스틱 제품들이다. 박해리 기자



박- 이 사진 보세요. 제 방에 있는 플라스틱을 다 치워봤더니 짐이 산더미더라고요. 스탠드·컴퓨터 모니터·필통·명함케이스 등 플라스틱이 아닌 게 없더라고요. 특히 화장대가 제일 심해요. 매일 쓰는 스킨·로션부터 파운데이션·아이섀도·립스틱 등 모든 화장품 케이스는 전부 플라스틱이더라고요. 플라스틱을 다 치우니까 고체로션과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은 립밤 밖에 남질 않았어요.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기’가 ‘민낯으로 생활하기’ 3일이 돼버렸어요.
고체 파운데이션. 아랫부분 손잡이는 플라스틱이 아닌 왁스다. [사진 러쉬 홈페이지]

고체 파운데이션. 아랫부분 손잡이는 플라스틱이 아닌 왁스다. [사진 러쉬 홈페이지]



이- 고체 파운데이션도 있더라고요. 검은색 스틱 부분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왁스예요. 제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고체 파운데이션 써도 되려나 했는데 막상 펴 발라 보니까 살에 닿을수록 촉촉해지더라고요. 인도네시아 니아스 지역에서 구매한 코코넛 오일로 만들었는데, 구매비용 10%는 치과, 글쓰기 수업처럼 해당 지역 사회 기반 시설 구축을 위해 기부도 된대요. 단점이라면 파운데이션을 더 잘 펴 바르기 위해선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든 스펀지가 있어야겠더라고요.


박- 그거라도 발라야겠네요. 요즘 겨울이고 찬바람도 강한데 로션 하나만 바르니까 피부가 허옇게 일어나네요. 플라스틱 없이 살면 건강한 생활이 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이 많아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려고 보니 텀블러에도 플라스틱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게 없더라고요. 그리고 방 물건을 정리하면서 알았는데 여자들 속옷인 브래지어에도 플라스틱이 있더라고요. 훅 부분이나 끈 연결 부위는 다 플라스틱이에요. 플라스틱이 없는 속옷을 찾아보니 운동할 때 입는 천으로 된 스포츠 속옷뿐이더라고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여성들은 플라스틱에 많이 노출되는 거 같아요. 빨아서 쓰는 면 생리대 말고는 생리대나 탐폰에도 플라스틱이 포함돼 있어요.  
 
 
#3일 차
이- 먹는 건 어떻게 해결하세요? 배달이나 포장 음식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길 테고, 음식을 해 먹으려고 해도 마트에서 파는 식품이 다 비닐 포장되어 있으니까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종이로 담긴 용기에 있는 계란 정도? 
한 대형마트의 유제품 코너. 요거트 제품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박해리 기자

한 대형마트의 유제품 코너. 요거트 제품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다. 박해리 기자



박- 전 아침마다 요거트를 먹는데 전부 플라스틱에 담겨 있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3일째 요거트를 못 먹고 있네요.
'더 피커'에서는 비닐포장 없이 과일은 바구니에, 곡물은 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 아래는 결이 살아있는 야자나뭇잎 접시. 이가영 기자

'더 피커'에서는 비닐포장 없이 과일은 바구니에, 곡물은 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 아래는 결이 살아있는 야자나뭇잎 접시. 이가영 기자



이- 그래서 저 오늘 국내 최초로 쓰레기 없는 삶을 추구하는 매장 ‘더 피커’에 갔어요. 여기는 플라스틱·비닐 포장이 없어요. 친환경 채소와 이를 활용한 건강식을 파는 레스토랑인데요. 과일들은 바구니에 담겨 있고, 곡물들은 유리병에 담겨 있어요. 찻잔은 당연히 머그잔이고, 그 안엔 투박한 나무 수저가 꽂혀 있더라고요. 야자 나뭇잎 접시, 대나무 빨대도 팔았어요. 어딘가 흠집도 있고, 매끈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왠지 모를 푸근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매번 빨대 세척하고, 장바구니나 텀블러 챙겨 다니는 것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었거든요. 송경호 대표는 “플라스틱이 문제가 돼 거르는 장치를 만드는 것보다 안 쓰는 게 더 편한 일 아닌가. 불편의 의미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답하더라고요.


박- 상점을 가도 전부 포장 용기가 플라스틱이라 뭘 살 수가 없어요. 저는 얼마 전에 주문한 택배가 도착했는데 택배 비닐도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이더라고요. 아예 포장도 못 뜯고 그대로 두고 있어요. 
흔히 마시는 홍차 티백. 자세히 보면 천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합성섬유다. 이가영 기자

흔히 마시는 홍차 티백. 자세히 보면 천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합성섬유다. 이가영 기자



이- 서울환경연합에 문의했더니 티백도 플라스틱이래요. 천으로 만든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합성섬유였어요. 껌도 플라스틱이라고 합니다. 천연치클 단가가 비싸다 보니 합성수지로 만든대요.


박- 저는 생수를 사다 먹는데 모든 생수가 다 플라스틱 통에 있어서 3일째 물을 끓여 보리차를 만들어 먹고 있어요. 보리차 티백도 플라스틱인지 확인해봐야겠네요. 
사료부터 간식, 소변용 패드까지 반려동물 용품들은 거의 플라스틱 포장에 담겨있다. 박해리 기자

사료부터 간식, 소변용 패드까지 반려동물 용품들은 거의 플라스틱 포장에 담겨있다. 박해리 기자



이- 아니, 그래도 사람을 위한 건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찌할 수 없는 분야가 있더라고요. 강아지 용품이에요. 집에 있는 간식들, 사료 모두 플라스틱 비닐에 담겨 있고, 사료통과 물통도 다 플라스틱이에요. 강아지에게 아무것도 안 먹일 수는 없어서 플라스틱 대신 사기그릇에 사료를 줬는데 다행히 잘 먹더라고요. 이렇게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바꿔가야겠어요.
플라스틱 용기 대신 사기 그릇에 사료를 먹는 강아지. 다행히 잘 먹는다. 이가영 기자

플라스틱 용기 대신 사기 그릇에 사료를 먹는 강아지. 다행히 잘 먹는다. 이가영 기자

 
플라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건 불가능했다. 휴대전화부터 속옷, 식료품까지 플라스틱이 안 들어간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생활환경담당 활동가는 “플라스틱 사용을 강제로 규제하는 정책보다는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을 끌어올리고, 사회적 합의를 이뤄 기업에도 대책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리·이가영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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