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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미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 적극적으로 밀 것

중앙선데이 2019.01.12 00:21 618호 10면 지면보기
[김진국이 만난 사람]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반도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지난해 남북 정상은 판문점에서, 평양에서, 세 번이나 만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단독회담을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곧 이뤄질 분위기다. 상상을 못 한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일도 먼일이 아니다. 북한 수뇌가 휴전선을 넘은 것도, 서울을 방문하는 것도 모두 초유의 일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면 정작 큰 흐름은 놓치기 쉽다. 시대적 흐름, 국제적 의미를 이홍구 전 국무총리에게 물었다. 8일 오후 유민재단 이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88년의 경험을 돌아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만들었다. 남북 공존을 전제로 한 첫 통일방안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주미대사다. 그는 현 정세를 ‘냉전 2.0’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했다. 북한 핵 문제도 미·중 사이의 국제 질서 정비 과정의 한 변수로 해석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9일 ’다당제 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데, 불과 30년 전 성공한 것을 지금 왜 못하느냐“며 국회가 중심이 돼 의회민주주의를 살리는 쪽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이홍구 전 총리는 9일 ’다당제 하면 나라가 엉망이 된다는데, 불과 30년 전 성공한 것을 지금 왜 못하느냐“며 국회가 중심이 돼 의회민주주의를 살리는 쪽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이 네 번째라는 건…모든 걸 (시진핑 국가주석과) 상의하려고 하는데. 북한이 앞으로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살아갈 것이냐, 굉장히 어려운 선택인데…이게 속단하기 어려워요. 앞으로 눈여겨 봐야 할 것이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남쪽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미국이 북한의 실력을 높게 보고 있어요. 핵이나 미사일 실력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가 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디지털 기술도 절대 과소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말은 막 하지만, 상당히 조심조심 접근하는 거지.”
 
이 전 총리는 “작년부터는 확실히 미국·중국이 이끄는 ‘냉전 2.0’ 체제”라고 말했다.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던 때와 구분한 개념이다.
 
“또 하나는 이게(냉전 2.0)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어. 내 개인 생각으로는 비핵화의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지금 베이징에서 관세 문제 등 미·중이 중요한 협상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밑받침하는 건 국제안보, 확실한 건 핵 문제, 핵 비확산조약(NPT)체제를 살리느냐 죽이느냐가 여기에 걸려 있다고 봐요. NPT라는 게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대혼란에 빠지게 돼 있어. P5(안보리 상임이사국)는 NPT를 뒷받침해 평화적으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을 맡고 있단 말이야. 중국은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쏠 정도로 미사일을 발전시키는 걸 구경하다시피 했단 말이야.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가 잘 되어 있는 인상이야. 이번에 무역 격돌을 풀어갈 것도 같아. 아무도 이기는 쪽은 없고, 다 손해를 보게 될 거니까. 중국도 이번 기회에 미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적극적으로 밀 거라고 봐요. 북한이 원하는 게 결국 북한의 안보와 경제 발전인데, 그 두 가지를 미국과 중국이 보상해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는 핵 보유를 인정받겠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것은 미국이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지. 미국만이 아니라 작년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에 갔을 때 프랑스와 영국이 모두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NPT 체제에서 북한을 예외로 처리해달라는 이야기인가? 그건 안 된다. 인도·파키스탄 얘기를 하는데, 그게 위험한 논리인 게, 그럼 동북아에서 일본이 핵 무장해도 그럭저럭 넘어가겠느냐.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그 이야기를 한 것 같아. 김정은이 쏜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서 태평양으로 날아가면 세계 제3의 경제 대국이 가만히 있겠느냐 말이야. 시진핑이 깜짝 놀라 안 된다고 그랬을 것 같아.”
 
그는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 밑에서 안보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과 러시아가 확장억제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가 흘러온 역사라고 강조했다. 삼일절 100주년이지만 그런 식으로 과거로 올라가려면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라는 건 보지 않느냐”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멀리 보는 역사보다 45년 이후의 역사가 관심”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해방된 날이 냉전 첫날이 된 거야. 그다음에 우리에게 중요한 상징적인 해가 1988년이지. 하나는 87년 12월에 직선제를 해서 새 대통령을 뽑았어. 그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 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라고 봐. 우리 국민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황금분할의 4당 체제를 국회에 보냈단 말이야.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줬어. 행정부에 항상 쏠리는 게 그때까지의 전통이었는데, 국민이 국회에다 힘을 줬거든. 그리고 다당제를 만들어줬어. 우리 국민이 의회가 중심이 돼 국가 운영을 하는 의회민주주의를 가져오고, 능히 다당제를 운영할 수 있는 실력을 보여준 해야. 그래서 우린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고,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봐. 다당제 하면 싸움 나서 나라가 엉망이 된다고 하는데, 불과 30년 전에 다당제를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한국 정치의 발전사가 아니라 퇴보한 역사야.”
 
그는 두 번째로 88년을 기점으로 통일 문제에 대한 큰 인식 전환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열강이 마음대로 분단했는데,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냉전이 끝나니까 그동안 떠들던 슬로건들, ‘북진통일’ 같은 건 안 통하게 됐단 말이야. 또 북한의 ‘남조선 해방’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이야. 다 차려놓은 남북 정부를 해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이 공백에서 뭘 어떻게 정리할 건가. 이게 금방 큰 과제로 왔어요. 여기서 강조한 것이 평화,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 해나가자’는 것이지.”
 
88년 2월 그는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을 처음 만나 이런 이야기를 그대로 해줬다고 한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그를 통일원장관으로 임명했다.
 
“이 교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다 맡길 테니까 이야기한 대로 해 보세요. 한 가지 조건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총재가 다 합의하는 것으로 만드십시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지금 한국 정치에선 완전 합의한 거 아니면 효력이 없습니다.”
 
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1노3김이 경쟁했다. 여소야대는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88년 4월에 만들어졌다. 13대 국회가 출범하자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위, 5공비리특위와 함께 통일정책특위를 만들었다.
 
“사실 기술적인 아이디어는 나 같은 교수들이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는 3김 총재가 적극 나선 공동작품이고, 진보를 포함한 국민의 열망이 그대로 반영된 겁니다. 노태우 대통령 본인이 독주를 내세우기 싫어하던 사람이고, 그런 식으로 나한테 일을 맡겨 쉽게 풀 수 있었던 겁니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대통령이 되었어도 군사정부의 제2인자였던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하면 될 것도 안 된다. 나는 조용히 있고, 다 맡기겠다’는 자세를 지켰기 때문에 3김 총재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합의를 한 거거든.”
 
그는 이런 여소야대의 정국 운영 방식을 되살리라고 거듭 주문했다.
 
“통일 문제를 다룰 때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이것은 내가 했다. 우리가 했다’면서 다른 쪽을 빼놓는 거야. 그러면 거기서 일이 벌어져. 내가 3김 총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통일 방안을 만드는 한 2년 동안 그분들을 한 달에 두 번씩은 만나고, 특히 DJ를 제일 많이 만났는데, 다들 다른 두 총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로 이야기를 들었어. 서로 대충 생각이 맞아야 일이 된다는 것을 아니까, 항상 그것을 걱정하면서 이야기하더라고. 그러니까 합의안이 나오지. ‘내가 뭘 했다.’ 이렇게 풀려고 하면 안 돼.”
 
어느 정부든 임기 내에 뭘 하겠다는 의욕들이 많은 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6.15 선언 뒤 점심을 먹으며 나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어. ‘아무튼 난 우리가 다 합의한 통일방안을 그대로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우선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해. 그 말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다 끌고 가는 거야. 그런데 정반대로 가는 위험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안 하려고 하는데, 내가 이거 하겠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돼. 다 끌고 들어가야지 자꾸 빼놓으려 하면 그때부터 일은 무너지기 시작해.”
 
그는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가 가장 생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런 의회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선거법을 빨리 개정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국민대표들이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해서 타협하고, 뭘 만들어내고 해야 한국 정치가 민주화가 되는 것이지, 아무것도 안 하면 국민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또 통일 문제가 흘러갈 수 있어. 어떻게 해서든 국회 중심의 한국 정치 운영, 이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선거제도를 고치고, 헌법도 필요하면 고쳐야 해. 나는 그게 하나 중요한 고비라고 생각해.”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그 30주년인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이 다시 열렸다. 그는 올림픽의 상징성을 살리라고 주문했다.
 
“88년이 민주화의 축제같이 되었잖아. 우연히. 우리 민주화인 축제인 동시에 냉전이 끝나고 평화로 간 상징이 되었어요.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84년 LA 올림픽이 반쪽 올림픽으로 다 실패했거든. 그러다 정세가 변해 서울올림픽에는 다 같이 참여했어. 결과적으로는 상징성이 강하게 되었지. 우연히 30주년에 평창올림픽을 했는데, 거기서 남북 관계가 극적으로 풀려서 작년 판문점회담, 평양회담을 한 것 아냐. 이 상징성과 이런 역사의 흐름을 절대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살려야 해.”
 
그 방안이 구체적 성과로 이어졌나요?
“이 방안이 완성된 89년이 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였어. 우리보다 북한은 굉장히 불안했던 때지…. 그다음 해 독일이 통일되고. 남북회담하자니까 북한도 나쁘지 않게 생각한 거지. 그래서 여섯 번의 총리회담을 해. 해보니까 싸울 일이 하나도 없어, 세상이 변하기도 했고. 남조선 해방도 떠들어댈 필요가 없고. 상당히 진척을 많이 했어.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어서 잠정적인 체제를 구축한 것이란 말이야.”
 
유엔 가입도 그때였죠.
“긴말 할 것 없이 2개로 들어가자. 그래서 동시에 가입이 되었단 말이야. 그 여세를 몰아서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온 거야.”
 
그 ‘비핵화 공동선언’에 사실 다 들어 있었죠.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온 배경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좋게 이야기하면 원자폭탄의 희생자가 일본 다음으로 우리가 많아. 히로시마에서만 한국인 사상자가 15만 명이고, 그 자손들도 피해 보고…. 그 가공할 경험이 꽤 있어서 남북한이 빠른 속도로 합의할 수 있었지. 북한이 굉장히 좋아했던 건 미국이 틀림없이 남쪽에 핵무기를 두고 있을 텐데, 이것만 서명하면 미국이 갖고 나가게 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세상에 무슨 시대가 와도 한민족을 가장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뭐냐. 비핵화 공동선언이란 말이야. 유엔에서 보면 아주 모범적인 문서를 만든 거지. 그때부터 거의 30년 동안 회담을 많이 했고, 뭐가 될 만하면 다시 깨지고, 깨지고 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우리가 북한만 나무랄 필요는 없어. 양쪽이 다 이야기할 게 많아.”
 
북한이 새 길을 걸을까요.
“소위 1차 냉전이 끝나고 그다음 거의 30년은 시장의 세계화 세대란 말이야. 다들 발전했는데, 가장 이득을 본 나라는 중국이야. 그래서 미·중이 새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잖아. 북한은 경제 발전해라. 동창리니 풍계리가 어쩌고 하는 건 동네일처럼 들린단 말이야. 우리는 너무 급하게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런데 북한은 정반대로 갔어. 본인들만 예외라고 주장하고 나선 거야. 결국 북한이 사는 길은 빨리 예외를 그만하고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국제 시스템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거야. NPT 체제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왜 나갔느냐고 안 따지겠다. 92년 비핵화 공동선언. 그리로 돌아가자 이거야. 그래서 둘이 경제 협력하자. 중국·미국도 협조해라. 그렇게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부터 통일보다 공존으로 방향을 튼 거죠?
“그건 아주 결정적인 변화지. (이 상태로) 30년이 갈지, 50년이 갈지 모른단 말이야. 남북이 다 편안하게 살고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좋은 일이지. 하루 이틀 앞당긴다고 해서 싸울 일이 하나도 없다. 김정은이 유럽에도 있었던 젊은 사람이니 할지도 몰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야기를 꺼냈는데, 한미 관계는 문제가 없을까요.
“원로자문회의에서 대통령께 말씀드린 게 그거야. TV에서 보면 김정은이 우리 대통령 이야기 말을 잘 듣는 것 같다. 미국 사람들도 그런 인상을 받고 있고. 그러니까. 이야기해줘라 말이야. 이거 지금 풍계리니 뭐니 조금씩 해봤자 효과가 나는 게 아니다. NPT로 돌아가자. 결국 비핵화는 NPT에서 탈퇴해서 나온 문제 아니냐. 미국·중국, 주변 열강들이 다 같이 우리 안정을 보장해라. 그걸 하려면 우리 안에서 ‘그게 뭐 되겠느냐.’ ‘말도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시작부터 일이 안 돼. 우선 청와대가 야당과 많이 만나야 돼.”
 
‘적폐’ 딱지를 붙여놓으니 상대하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YS(김영삼) ‘꼬봉’들을 불렀는데 나도 같이 갔다 왔어. 그날 막 소리 질러서 5당 합의를 끌어낸 거야. 지금 식으로 나가면 다 깨진다 이거야. 큰일 났다. 칭찬할 것도 몇 개 있는데, ‘건국절’ 논란을 없앤 것 같은 건 잘한 거야. 일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거란 말이야. 건국절이 있는 나라도 별로 없는데 억지로 만들어 논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지. 또 주체 교체론인가 하는 것 말이야, 조선조에 노론이 주체였다는데, 역사학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승만 시대부터는 친일파가 결국 다 한 거기 때문에 이번에 주체를 교체해야 한다니까 그럴듯하게 들렸던 모양이야. 정치는 당장의 이야기야. 지금 당장 어떻게 할 것인지. 벌써 1월인데 뭔가 불완전하더라도 선거법 개정을 해야 돼.”
 
이홍구 전 총리
서울 법대와 미국 에모리대를 거쳐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였던 그는 88년 노태우 정부 때 국토통일원장관을 맡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만들었다. 주영대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국무총리를 거쳐 신한국당 대표를 맡고,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나섰다. 김대중 정부 때 주 미국대사, 중앙일보 고문을 맡았으며 현재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유민재단 이사장이다.

 
김진국 칼럼니스트·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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