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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가슴에 취업비리 대못, 특별법이라도 좀 만듭시다

중앙선데이 2019.01.12 00:21 618호 14면 지면보기
우석훈의 경제 레이더
면접장에 들어온 지원자들이 나란히 앉아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취업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이어지는 채용 비리는 젊은 구직자들이 좌절감에 쌓이게 한다. [중앙포토]

면접장에 들어온 지원자들이 나란히 앉아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취업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이어지는 채용 비리는 젊은 구직자들이 좌절감에 쌓이게 한다. [중앙포토]

지난해에 직장 민주주의에 관한 현장 작업을 하면서 적지 않은 취업자, 그것도 대리 이하의 청년들을 많이 만났다. 20대 남성의 상당수는 현 정권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로 돌아섰다. 그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평창 겨울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논쟁이었다. 통일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서 선수 몇 명이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대는 그것이 ‘부당’한 일, 즉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평화와 통일을 위한 큰 일에 비하면 그거 너무 쪼잔한 거 아니야? 쪼잔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기소개서에 영혼까지 탈탈, 아니 지갑까지 업체에게 탈탈 털어주어야 하는 현실이다. 취업 면접에서 성희롱에 가까운 외모 지적에서 양심에 따른 정치적 성향까지 다 보여 달라는 면접관의 횡포에 분노한다. 그리고 별 것도 아닌 듯한 인턴 채용부터 각종 정규직 채용까지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의 힘, 그런 것이 삶의 의욕을 꺾는다. 그러니 건물주 자식이 미래의 꿈이라는 것 아니냐? “저는 건물주 자식이 될 준비를 다 했는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요.”
 
 
“건물주 자식될 준비 끝, 아버지가 노력 안 해”
 
이력서에 정성스레 사진을 붙이는 지원자.

이력서에 정성스레 사진을 붙이는 지원자.

이게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추악한 뒷거래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전수조사하겠다고 소리만 시끄러웠지, 규정 미비로 뭔가 시원한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규정을 만들면 될 것 아닌가? 이젠 다시 국회 탓인가? 관공서에 간 민원인을 담당부처가 아니라면서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채용비리 문제도 서로 뺑뺑이 돌리는 모양새다.
 
지금의 40대~50대는 좀 부당한 일이 있어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참았다. 군사독재의 시대, ‘빽’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상한 관행이 오히려 상식이 됐다. 좋은 대학, 아니 좋은 고등학교 나와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훈훈한’ 모교사랑이 50대 이상 한국의 지배층이 한국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안 그런가? 대통령 비서실장의 출신 학교에 따라 무슨파, 무슨파, 이런 것들이 공공기관 기관장을 비롯해 승진줄을 제대로 잡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적당히 아는 사람 자식들 넣어주는 것, 오히려 세상의 미덕이고, 세상 살아가는 지혜라고 훈훈한 미담으로 포장한다. 한국의 과거 정권들이 특히 인사가 ‘개판’이었는데, 지금 정권도 그런 점에서는 딱히 아니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걸 못 끊는가? 못 끊는다.
 
이런 걸 인터넷으로 지켜보는 20대들에게 무슨 적폐 청산이니, 그런 와 닿지 않는 구호들은 남의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부당한 방식으로 취업 비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20대가 분노한 것은 언제든 위에서 적당한 명분으로 기준을 자기 편한 대로 바꿀 수 있다는 공포감일 것이다. 그나마 이건 남북 평화라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명분도 없이 뒤에서 슬쩍, 이런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없어? 쟤들이 그런 짓을 안 할 것 같아? 그들이 원하는 최소한의 정의를 법과 제도로 만들지 못하는 한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야”, 이런 의심은 끝없이 증폭되어 갈 것이다.
 
좀 쉬운 것부터 생각해보자. 면접시 면접관의 부당한 질문과 놀림, 이건 조치가 쉽다. 일부 기관에서 취업 면접시 감사실 직원을 같이 앉아있게 했다. 그랬더니 외부 인사들도 외모 지적은 물론이고, 제3자가 볼 때 부당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언어 폭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거다. 내부에서만 아는 밀실을 감사원 직원의 존재로 공정하게 바꿀 수 있다. 이건, 규정을 만들어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되는 문제다. 어려운 일 아니다.
 
 
선량한 청춘에게 ‘패배자’ ‘잉여’ 굴욕감 줘
 
일반적인 취업 비리는 업무방해죄인데, 이게 적용이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인사팀 모두가 다 같이 공모를 했으면 업무방해죄 성립이 어렵다. 방해 받은 직원이 없기 때문이다. 적용도 쉽지 않고, 형벌도 그렇게 높지 않아서 법적인 실효성이 크지는 않다. 공기업의 경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조항에 의해서 공무원 외에도 광범위하게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기는 하다. 민간기업에 비해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근거 조항은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지만 역시 내부 고발이 있거나, 정말로 엄밀하게 감사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전에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경력직의 경우에는 가장 흔한 채용비리가 내정이다. 미리 아는 사람으로 뽑을 사람을 정해 놓고 형식적인 공채를 내는 경우, 나머지는 ‘들러리’가 된다. 정말로 특별한 경력의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걸 승인 받기 위한 내부 절차를 밟는 게 낫지, 내부 사정을 모르는 선량한 후보자들까지 ‘패배자’ 혹은 ‘잉여’라는 굴욕감까지 느끼게 “심사 해 봤더니, 역시 너는 아니야”, 이렇게 잔인하게 할 필요가 있는가? 자기들끼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형식적 공채, 이것도 좀 아닌 것 같다. 내정해 놓고 공채, 이것도 엄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다.
 
내가 자문 받은 변호사들은 대부분 특별법 반대가 기본 입장인데, 채용 비리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특별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규정도 애매하고, 처벌도 너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굳이 국회의원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부가 그냥 정부입법 형식으로 특별법 만들면 된다. 면접시 부당대우 줄이기, 정규직이든 인턴이든 채용시 부당한 일 하지 않기, 그리고 내정해놓고 공채하지 않기, 이런 게 법률적으로 규정하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이걸 너무 당연하거나 예외적인 일로 여겨왔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은 같지만, 사회적 여건이 바뀌었다. 그리고 청년들의 문화가 바뀌었다.
 
정의로운 사회는 아니더라도 상식이 된 부당함을 그냥 방치하는 건 좀 아니다. 정부에게 부탁한다. 올해는 취업비리 특별법이라도 좀 만들어주시기 바란다. 돈 드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우석훈 박사·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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