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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 살린 허스트 타워, 정감 못 살린 피맛골…개발과 보존이 화해하려면

중앙선데이 2019.01.12 00:20 618호 27면 지면보기
도시와 건축
중고등학교 시절 SF를 좋아하는 나는 주로 영화를 단성사에서 봤다. 중3 때 ‘터미네이터’ 와 ‘에일리언’를 봤고 대학교 1학년 때 ‘다이하드’를 봤다. 그런 추억의 공간이 지금은 금은방이 들어선 10층 상가 건물로 바뀌었다. 세상은 빨리 변한다. 문제는 세상은 변하는데 지어진 건물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1층짜리 건물로도 충분했던 도시에 지금은 수십 층짜리 건물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백 년 전에는 이럴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은 엘리베이터와 각종 공법으로 더 높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악수할 묘수 찾아야
 
1 미국 뉴욕 맨해튼 57가에 있는 허스트 타워. 기존 건물의 입면만 남겨놓고 그 안에 46층 규모의 타워를 넣어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2 일제강점기 1926년 지어진 서울시청 구청 사와 2012년 건설된 신청사. 유리로 된 신청사가 구청사를 압도한다. 3 재개발이 이뤄지기 전 피맛골 식당 골목. 4 경복궁 내 경회루가 고궁의 밤 정취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1 미국 뉴욕 맨해튼 57가에 있는 허스트 타워. 기존 건물의 입면만 남겨놓고 그 안에 46층 규모의 타워를 넣어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2 일제강점기 1926년 지어진 서울시청 구청 사와 2012년 건설된 신청사. 유리로 된 신청사가 구청사를 압도한다. 3 재개발이 이뤄지기 전 피맛골 식당 골목. 4 경복궁 내 경회루가 고궁의 밤 정취를 보여준다. [중앙포토]

그래서 우리는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 이때 혹자는 전통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보존주의자를 철딱서니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흔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에도 적응하는 방법은 없을까. 추억을 지키자는 이상주의자와 돈을 벌자는 현실주의자가 악수할 있는 묘수는 없을까. 우리가 좀 더 말랑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다. 둘의 화해를 위해서 우선 건축물의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자.
 
전통 건축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경복궁 경회루와 서울시청 구청사 건물을 비교해보자. 이 둘은 같은 종류의 가치를 갖는가. 그렇지 않다. 둘은 각기 다른 종류의 가치를 지닌다. 경회루는 전통건축 중 가장 큰 나무기둥과 그 위에 올라간 거대한 길이의 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지붕구조까지 모두가 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둥의 크기와 보의 길이를 보면 건축당시 조선시대 때 왕조의 경제력을 가늠해 볼 수 있고, 큰 나무를 산에서 한양까지 옮길 수 있었던 조선시대 유통망의 효율성도 추측해볼 수 있다. 건물의 2층은 각종 행사를 치루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건물 규모로 당시 조정의 실내행사 최대 규모도 추측가능하다. 경회루의 모든 건축요소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서울시청 구청사(이후 시청건물)는 어떨까.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목조건축에서 일제강점기 석조건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건축 구조적으로 기둥 건축에서 벽 건축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청건물은 석재로 마감된 벽이 세워졌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세로로 긴 창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창문 주변을 장식한 프레임이 중요해지고 창문 간의 비례가 중요하다. 한마디로 경회루는 기둥과 지붕이 중요한 건축이라면 시청건물은 입면이 중요한 건축물이다. 시청건물에서 내부의 공간은 별로 특징적이지 않다. 그 안에 칸칸이 나누어진 방들은 다른 어느 건물의 방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내부 인테리어나 가구도 시시때때로 바뀌었기 때문에 보존가치가 없다. 그러니 경회루는 있는 그대로 전체를 보존해야한다면, 시청건물은 입면만 보존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잘 적용한 건물이 뉴욕에 있다.
 
허스트 커뮤니케이션 본사 빌딩은 뉴욕 맨해튼 57번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28년에 완성된 6층짜리 허스트 사옥이 있던 자리이다. 기존 건물은 허스트 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가 지은 건물이다. 허스트 사는 최초의 본사 건물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고층 건물이 필요했다. 새롭게 지어진 46층짜리 건물을 지으면서 어떻게 전통을 보존할 수 있을까. 고민의 답은 기존 전통건물의 입면만 남겨놓고 그 안에 6층 건물은 철거하고 그 자리에 46층 현대식 타워를 집어넣는 계획안이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안을 내놓은 사람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다.
 
첫 번째 문제는 오래된 6층 건물의 입면만 무너지지 않게 남겨놓고 건물의 내부를 어떻게 철거 할 것인가였다. 이 어려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기존의 건물에 수직으로 여러 개 구멍을 뚫고 철골기둥을 세웠다. 이 철골기둥에 철골 가지를 붙여서 기존건물의 입면을 안쪽에서 붙잡게 만들었다. 이 공정을 마친 후에 기존건물의 내부를 모두 철거를 하고 신축했다. 이때 기존 건물이 있는 6층높이까지는 과감하게 로비홀로 만들었다. 이 공간에는 1층 로비와 빌딩 전체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엘리베이터 코어만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신축건물은 오래된 기존건물보다 안쪽으로 몇 미터 더 들여서 지었다. 따라서 보존된 입면과 신축건물 사이는 떨어져 있게 된다. 이 공간에 천창을 두어서 자연채광이 로비로 들어오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로비에 있는 사람은 6층 높이의 입면에 있는 수십 개의 창문을 통해서 맨해튼 주변경관을 보고,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최첨단 성. [중앙포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최첨단 성. [중앙포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라는 영화를 보면 하늘을 떠다니는 고대의 최첨단 성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성은 밖에서 보면 돌로 만든 평범한 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그 벽들은 투명해져서 바깥의 하늘이 보이는 최첨단의 기술력을 보여준다. 이 만화에서는 그런 반전의 미가 충격적이다. 그와 비슷한 반전의 미를 허스트 타워에서 느낄 수 있다.  
 
전통을 보전한다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피맛골이다. 종로의 피맛골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거리다. 과거 조선시대 때 말을 타고 가는 고관대작들이 종로 길을 행차하면 평민 백성은 길에서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이게 싫었던 백성들은 이면도로인 피맛골로 걸어 다녔다. 양반이 탄 말을 피한다는 뜻에서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 되었다.  
 
 
 
건축도 축구 스타 메시 같은 시야가 필요
 
이곳은 시대가 바뀌어도 서민을 위한 각종 식당과 술집이 즐비했던 정감과 역사가 깊은 길이었다. 이곳에 새롭게 고층오피스 빌딩을 개발하면서 시에서는 피맛골을 보존한답시고 좁은 직선의 복도에 기존 피맛골의 가게를 좌우로 배치했다. 하지만 새롭게 조성된 길은 같은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피맛골의 느낌은 모두 사라졌다. 피맛골이 특별한 이유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의 모양, 주변의 낮은 단층건물 때문에 보이는 넓은 하늘이었는데 그것을 다 없애고 식당만 남긴 것이다. 우리는 전통을 보존할 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잘 선택해야 한다. 피맛골에서 보존해야 했던 것은 ‘골목길의 모양’이다. 골목길의 모양은 형태를 가진 건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골목길의 모양은 수백 년의 시간을 통해서 서서히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무형의 자산이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은 두 다리를 이용해서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만들어진 것이 피맛골 길의 모양이다. 따라서 그 길의 모양과 그런 모양의 길을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우리의 감성이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다. 피맛골의 모양을 유지하고 길과 접한 부분에는 단층건물만 짓게 하는 대신 후면부에 높이제한을 풀어주어서 고층을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면 전통유지와 개발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재개발들이 있을 것이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질 것이다. 그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건축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가치를 분해해서 봐야 한다. 메시가 축구를 잘하는 것은 사람 몸의 관절을 이해하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축구선수는 앞에 수비수가 막고 있으면 돌파를 못하지만 메시는 그런 눈을 가졌기에 팔과 다리사이, 목과 어깨사이, 다리와 다리사이로 볼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다. 건축을 볼 때도 그런 눈이 필요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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