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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 강제퇴소되는 친구 위해···'눈물의 법안' 낸 고교생

중앙일보 2019.01.10 06:00
‘(아동보호시설) 퇴소 청소년 자립지원에 관한 사항을 자문ㆍ심의하기 위한 서울특별시 청소년 자립 지원위원회의 설치, 구성에 관해 규정함’

 
서울시의회에서 통과해 시행 중인 조례안 중 일부다. 만18세가 되면서 아동보호시설에서 준비 없이 퇴소당하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이 법안의 초안은 놀랍게도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 중인 학급 친구가 강제 퇴소당할 것을 걱정한 한 고등학생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주인공은 서울 남강고등학교 3학년 권용우(사진)군. 학창시절 내내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면서도 학급 내 지적장애 친구인 박진우(가명) 군을 챙기며 친구를 위해 서울시 조례안을 통과시킨 권군은 “공공정책을 연구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최근 정책학과에 진학했다.  
 
서울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3학년 권용우 학생이 9일 입학을 앞둔 한양대에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제공]

서울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3학년 권용우 학생이 9일 입학을 앞둔 한양대에 방문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제공]

지적장애 친구의 든든한 조력자, 용돈 모아 ‘교복’ 기부도
9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 국제관에서 기자와 만난 권군은 법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진우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아동보호시설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강고 관계자에 따르면 권군은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반이 된 진우를 다른 친구들에 비해 살뜰하게 챙겼다고 한다. 권군은 “진우가 다른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은 이유를 들여다보니 진우의 냄새 때문이었다”며 “진우는 친구들과 잘 지내려 늘 깨끗하게 씻었지만 교복이 하복과 동복 한 벌뿐이라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권군은 세뱃돈과 용돈 20만원을 털어 교복을 구매했다. 혹여 진우가 자존심이 상할까 걱정해 “학교 교복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진우의 교복 사이즈를 알아냈고, 학교 행정팀을 통해 교내 지원을 해주는 것처럼 교복을 전달하기도 했다.  
 
2학년 2학기 사회과목 수행평가에서는 친구들이 수행평가 점수가 잘 안 나올 것을 우려해 진우와 같은 조가 되는 것을 꺼렸다. 이에 조장이었던 권군은 진우를 첫 번째 조원으로 뽑은 뒤 진우를 중심으로 조원을 구성하기도 했다. 수행평가 점수가 잘 안 나올 것이 걱정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군는 “1시간 할 것을 3~4시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러던 중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진우가 만18세가 되면 시설에서 퇴소해야 해 고민이 많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지역구 시의원에게 전달, 조례안 통과시켜
이렇게 진우를 위한 권군의 법안은 신언근 전 서울시의원에게 전달돼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시설 및 청소년복지시설 퇴소 청소년의 지원에 관한 조례안’으로 대표 발의됐다. 이 법안은 지난해 시의회에서 통과돼 현재도 시행 중이며, 이로 인해 신 의원은 한국청소년재단이 주최한 ‘2018 청소년 희망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 전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용우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 그 학생의 생각에 굉장히 놀랐다“며 ”고등학생으로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깊이 있는 사고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학생들 덕분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용우 학생이 9일 한양대 국제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웃으며 장래 희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제공]

권용우 학생이 9일 한양대 국제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웃으며 장래 희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제공]

권군이 제안해 통과된 조례안은 또 있다. 
바로 과거 ‘낙성대 의인’을 지원하는데 기초가 됐던 ‘서울특별시 관악구 범죄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다. 권군은 “학교 축제 때 입법상담 부스를 열어 평소 사람들이 만들고 싶은 법안을 다듬어 지역구 의원에게 전달하는 이벤트를 했었다”며 “당시 범죄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상담을 듣고, 장애와 중상해를 입은 범죄 피해자만 지원을 해주는 현행법을 보완하는 조례를 만들어 관악구의회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민영진 관악구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돼 최종 제정됐다.  

 
부모님 ‘믿음’으로 자존감 극복  
권 군은 ”부모님께서 늘 저의 선택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라며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1학년 때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적이 잠시 떨어지면서 큰 슬럼프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늘 ‘몇점짜리 권용우’로 평가를 받다가 점수가 떨어지니 자존감도 함께 바닥을 쳤다“며 ”늘 쫓기듯 죄인처럼 공부하면서 매우 힘들었지만, 부모님의 믿음과 선생님의 조언으로 곧 다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군은 이후 다시 이전 성적을 회복했고 2학년 2학기 때는 문과 전교 1등을 하면서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 100만원을 진우가 졸업식 날 받을 수 있도록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성적 하락으로 슬럼프를 겪었던 권용우 학생이 성적으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해 쓴 자필 편지. [권용우 학생 제공]

고등학교 1학년때 성적 하락으로 슬럼프를 겪었던 권용우 학생이 성적으로 고민하는 후배들을 위해 쓴 자필 편지. [권용우 학생 제공]

권군의 고3 담임선생님은 기자에게 “용우는 전교 최상위권의 내신성적을 꾸준히 유지해왔고, 모의고사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기에 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권군은 장래에 로스쿨에 진학해 법을 공부하고, 공공정책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권군은 “우리의 삶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입법에서 법을 바꾼 뒤 이를 행정에서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평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면서 어떻게 법을 고쳐 개선해나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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