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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김동연이 해명해야 할 다섯 가지

중앙일보 2019.01.10 00:18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미수에 그친 거대한 통계 조작극’.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를 거칠게 표현하면 이쯤 될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은 검증이 필요하다.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이상한데, 아직은 진위를 알 수 없다. 진실이 가려지려면 핵심 인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입이 열려야 한다. 그는 신재민이 “죽음으로 말하면 믿어주겠냐”며 극단적 선택을 한 날, 페이스북에 소회를 올리기는 했으나 실체적 진실엔 입을 다물었다. 김 전 부총리가 해명해야 할 것은 크게 다섯 가지다.
 

정책 집행의 속살 보여준
신재민 폭로, 공익성 충분

우선 신 전 사무관이 8조7000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을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다. 국채 발행을 논의하던 2017년 11월은 이미 문재인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5년 단임 정부의 성적표는 취임한 해를 첫해로 기산한다. 김대중 정부는 1998~2002년, 노무현은 2003~2007, 이명박은 2008~2012년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2016으로 보는 게 맞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말 이미 국회의 탄핵소추로 권한 정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신 전 사무관은 2017년을 ‘박근혜 정부’로 봤다. 왜 그랬을까.
 
추측은 해볼 수 있다.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5월에 시작했다. 그러니 2017년의 3분의 1은 박근혜 정부로 볼 수도 있다. ‘이명박근혜 탓’만 하면 무사 통과되던 시절이니 국가부채를 늘려놓고 ‘박근혜 탓’으로 밀어붙이려 했을 수 있다. 기재부는 “애초 그런 생각이나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둘째, 기재부는 ‘곳간 지킴이’의 전통이 있다. 든든한 곳간만이 중소형 수출경제인 대한민국의 최후 보루라고 믿어왔다. 외환위기 때 달러 고갈을 이길 수 있던 힘도 세계 최고의 건전한 재정, 곳간 방패에서 나왔다. 오죽하면 국가재정법 90조는 그 해 쓰고 남은 돈을 ①국채를 우선 상환하고 ②교부금 정산에 사용하고 ③공적자금 상환기금에 우선적으로 출연하고 ④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구체적인 순서까지 정해놓았겠나. 예산실장까지 지냈던 김 전 부총리가 이런 전통과 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왜 세수가 10조원 넘게 남아돌던 상황에서 되레 국가 부채를 늘리려고 했나.
 
셋째, 신 전 사무관은 김 전 부총리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을 39.4% 이상으로 맞출 것”을 지시했다고 했다. 39.4%는 김 전 부총리가 보고하거나 상의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로선 알 수 없을 수치다. 적자 부채 발행을 압박한 주체가 누군가. 청와대인가 김 전 부총리인가.
 
넷째, 왜 차영환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국고국 국·과장에게 직접 전화했나.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는 서슬 퍼렇던 시절이다. 차 전 비서관이 할 말이 있다면 김동연 전 부총리에게 직접 말하면 된다. 그런데도 그는 실무자들을 직접 다그쳤다. 방패막이가 되어야 할 부총리가 되레 ‘실무자 반발’을 핑계댔기 때문은 아닌가.
 
다섯째, 신 전 사무관에게 말했다는 ‘정무적 판단’은 뭔가. 정무적 판단이란 게 좋게 말하면 이해집단과 정치·경제·사회적 파장까지 고려한다는 의미지만 좁게 말하면 “윗사람 눈치 보기” 에 다름 아니다. 김 전 부총리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체를 봐야 한다”는 모호한 말 뒤에 숨어선 안 된다. 적자 국채로 마련한 돈을 어디에 쓰려 했는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로 국가 재정과 적자 국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정책 집행 과정의 속살도 드러났다. 감시의 눈이 촘촘해지면서 국가 부채를 ‘마사지’하려는 어떤 시도도 더 어려워지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폭로는 공익 제보의 자격이 차고 넘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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