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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4대손 이창수 “조상들 얼어죽고 굶어죽고 맞아죽을 각오로 만주행”

중앙일보 2019.01.09 00:04 종합 8면 지면보기
임시정부 100년 ③ 임정 루트를 가다
이상룡 임정 국무령의 4대손 이창수씨가 경북 안동의 종택 임청각에 있는 고조부의 사진 앞에 섰다.

이상룡 임정 국무령의 4대손 이창수씨가 경북 안동의 종택 임청각에 있는 고조부의 사진 앞에 섰다.

“석주 선생은 선각자이자 혁명가였습니다. 종가 재산을 유지하면서 자리를 지키기만 하셨으면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 노비를 풀어주고 조상 신주를 땅에 묻고 가산을 처분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이상룡, 안동 저택 임청각 팔아
만주에 무장독립단체 경학사 설립
아들은 일제 회유 굴복 않고 자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제3대 임정 수반)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현손(玄孫·4대손) 이창수(54) 씨티은행 검사역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상룡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경북 안동의 저택 임청각(臨淸閣)을 매각한 사례를 거론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사회적 책무)’의 대명사로 평가했다. 일제는 이후 독립운동가 10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의 종택 임청각을 철로 건설을 이유로 훼손했다. 후손은 이준형-이병화-이도증-이창수로 이어지고 있다.
 
4대손 이창수씨는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갈 때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고, 도피생활 와중에 굶어 죽고, 일본인이나 마적 떼에게 맞아 죽을 ‘세 가지 각오’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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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상룡 선생은 1911년 1월 27일 압록강을 건너면서 ‘내 목이 잘릴지언정 무릎 꿇어 왜놈의 종이 되지 않겠다(此頭寧可斫 此膝不可奴)’는 시를 남겨 결연한 독립 의지를 보여줬다. 이런 정신은 아들 이준형씨에게 이어졌고 일제의 친일 회유·협박에 굴하지 않고 1942년 생일날 아침에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살면 하루의 치욕을 더할 뿐”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상룡 선생은 만주에서 무장독립투쟁 단체인 경학사를 설립해 동포사회를 규합하고, 신흥강습소에서 민족교육을 펼쳤다. 신흥무관학교에서는 독립군 약 3500명을 배출했다. 1925년 상하이 임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박은식 제2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상하이 임정과 만주 무장투쟁 조직을 하나로 합치길 바라며 이상룡 선생을 국무령으로 추대했다. 그만큼 폭넓게 신망과 지도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4대손 이창수씨는 “상하이 임정 옛 건물에 걸린 석주 할아버지 존영을 보고 가슴 뭉클하고 숙연했다”며 “임정 100주년을 맞아 조만간 만주 신흥무관학교 유적지도 답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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