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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위비분담금 2배 못낼건 뭔가, 안보 구두쇠 안돼"

중앙일보 2019.01.08 01:30 종합 5면 지면보기
2019년 한국 외교는 거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2018년 순조롭게 속도를 내온 남북관계는 새해 들어 속도가 급감했다. 전통의 동맹인 한미 관계는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삐걱대고 있으며, 한일 관계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위기를 맞고 있다. 외교가 굳건해야 경제도 숨통을 틔울 수 있다. 중앙일보는 외교부 장관을 지낸 원로 외교관들에게 한국 외교가 맞이한 도전과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들었다. 첫 순서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1992), 주일본대사(93~94), 외교통상부장관(94~96) 등을 지낸 공로명 동아시아재단이사장이다. 195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공 전 장관은 올해 87세다.  

[위기의 한국외교, 원로에게 묻다]
“문 대통령, 직접 주도해 해결을
기금으로 풀면 양국 입장 다 살아
방위비분담금, 한·미 동맹 윤활유
두 배 더 내라면 못 낼 이유 없어”

 
공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한국 외교가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뭐냐고 묻자 대뜸 한·일 관계를 지목했다. 그는 “지금의 한ㆍ일 관계는 역대 최대의 위기”라며 “한ㆍ미 관계와 남북 관계에까지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공 전 장관은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셔야 한다”며 대통령이 직접 주도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위기 의식을 느끼고 메이지 유신으로 ‘제2의 중국’이 될 준비를 했지만 당시 조선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도 몰랐다”며 “중국에 파견된 동지사(冬至使ㆍ사신)가 왕에게 보고를 안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1세기 한국 외교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경고다.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공 전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국가안보 문제에서 구두쇠가 되면 되겠느냐”며 “일본은 주일미군 분담금을 ‘배려 (思いやり)예산’이라고 부르며 넉넉히 책정한다. 한국도 현재의 경제규모라면 분담금을 더 못 낼 건 없다는 실리적 태도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공 전 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공 전 장관이 주일대사였던 1993년 8월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河野)담화를 발표했다. 공 전 장관은 92년엔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의 남측 위원장을 맡아 남북 비핵화 협상을 지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만난 사람=박승희 편집국장, 
정리=전수진ㆍ이유정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노무현 정부의 한·일 청구권 협정 입장 계승해야"
 
한ㆍ일 관계가 시계제로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부터 레이더 조준 문제까지 얽혀있다.
“한ㆍ일 관계가 이렇게 나쁜 적이 없었다. 지금이 가장 위기다. (95년)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적이 있지만, 당시는 일종의 실언 해프닝이었다. 지금처럼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과거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당시 우리 정부가 주안점을 둔 것은 할머니들의 존엄성과 명예 회복이었다. 대신 위자료나 금전적 보상은 우리 정부가 한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사할린 교포 귀국 문제는 일본 정부가 (패전 후)자국민만 귀국시킨 것에 대해 일본도 잘못을 인정하면서 이후에 정착비를 냈다. 모두 한ㆍ일 청구권 협정(1965년 체결) 이후 상황이다. 나머지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됐다고 봤던 것이다. 다만, 강제징용은 살아서 돌아온 분들에 대해 보상을 못했었다. 그 걸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실질적 보상에 나섰다.”
 
 
2005년 당시 노 대통령이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했었는데.
“맞다. 당시 민관합동위에서 청구권 협정 때 해결되지 않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 걸 ‘원스 앤 포 올(once and for allㆍ최종적)’ 방식으로 결론내렸다.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됐다는 입장은 우리 정부가 계승을 하되, 배상을 받지못한 피해자 분들에게 우리 정부가 실질적 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보상 예산의 출처는.
“우리 정부 예산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이 ‘정부 간에는 해결됐지만 개인 청구권은 해결 안 됐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면서 일본 정부가 발칵 뒤집어진 거다. 개인 청구권은 소멸이 안 된다는 법적 이론의 근거는 독일에서 나왔다. 그러나 외교적 해결은 달라야 한다.”  
 
 
외교적 해결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
“자명하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 즉 청구권 협정으로 정부 간에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대신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그 것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의 집무실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현 총리인 아베 신조와 촬영한 사진이 놓여있다. 김상선 기자

공로명 동아시아재단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의 집무실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현 총리인 아베 신조와 촬영한 사진이 놓여있다. 김상선 기자

 
"강제징용 국제법적 조치 단계=한·일관계 회복불능"
 
피해자 대리인단이 2일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아가 손해배상 이행 협의 요청서를 전달했는데.
“일본 기업에 배상하라고 요구하게 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한국 내 일본 개인 및 기업의 자산이 압류된다면 일본 정부는 나름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청구권 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를 요구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로 문제를 가져갈 수 있는데, 그러면 국가 간 관계는 회복 불능으로 간다.”  
 
국가 간 관계를 파탄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뭔가.
“정부가 주도해서 기금을 만들면 된다. 독일에도 선례가 있다. 정부도 일부 부담하고, 한국 기업에서도 기여하면 된다. 왜 기업이 내야 하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청구권 협정 이후 60, 70년대 일본 측에서 들어온 자금으로 번창한 기업들이 많으니 충분히 참여할만하다. 기금으로 풀면 한국 정부의 입장도, 일본 정부의 입장도 산다. 일본 기업 중에서도 기금에 기여하는 곳이 나올 거다. 일본 기업 중에서도 그간 개별적으로 징용 피해자들과 화해를 한 곳이 있다.”
 
문제는 피해자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인데.
“정부의 설득이 중요하다. 나라와 나라 사이가 어렵게 된다는 점을 잘 설명해야 한다. 굳이 그래도 꼭 받아야 한다는 분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다수는 아닐 거다.”  
 
 
한ㆍ일간 중재 채널이 역대 최약이라 우려된다.
“(쓴 웃음을 지으며) 자업자득이다. (외교부 내에서) 미국과 일본 전문가들이 제일 냉대를 받는다고 하는데, 직업 공무원을 이렇게 처우하는 정부는 처음 봤다. 한ㆍ일 관계가 망가지면 외교 프레임 전체가 무너진다. 지금은 한ㆍ일 관계가 최악인데 한ㆍ미 관계도 (도널드)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요소 등으로 인해 상당히 미묘하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이렇게 위태로운 건 처음이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셔야 한다. 이 정부의 모든 거버넌스(통치)는 청와대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스마트한 사람인데 지금은 인형같이 존재감이 없다. 예전 외교부에선 ‘일은 면서기처럼 꼼꼼하게, 생각은 대통령처럼 크게 하라’고 했는데 요즘엔 그런 기개가 안 보인다.”  
 
박승희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박승희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우리가 2배 더 못 낼 건 뭔가" 
 
북핵 문제로 넘어가자. 미국은 북한에 핵 리스트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핵 공격 위협을 절실하게 받기 전까지는 핵 리스트를 내놓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1992년 당시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을 지냈는데.
“맞다. 당시 경험을 되돌아보면 1년간 북한의 사기극에 놀아난 것밖에 안 됐다. 당시에도 우리는 핵 관련 리스트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북한의 특수한 멘털리티를 고려할 때 핵 합의에 이르는 건 용이하지 않다. 한두 번 만나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은 단세포적이다. 북한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북한의 대변인 노릇을 시키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한ㆍ미 관계에 큰 암초인데.
“방위비 분담금은 한ㆍ미 동맹의 윤활유다. 주한미군이 있으니 우리에게 핵우산이 있고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견제할 수 있다. 우리가 내는 방위비가 (지난해 기준)1조원이 채 안 되는데, 대부분이 전기ㆍ수도요금이며 한국인 근로자들 임금도 있다. 결국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는 돈이 적잖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2배 더 내라고 하는데, 우리가 2배 더 못 낼 건 뭔가. 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 교섭 과정에서 2배가 아닌 1.5배로 깎자는 식으로 협상을 잘하면 된다. 지금의 미국은 어느 날 갑자기 주한미군 철수를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외교안보는 위태롭기 짝이 없게 된다.”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게 우려되는데. 
“반갑지 않은 일이다. 미군 주둔의 근거가 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그 문서를 들고 '3년 전(6·25 발발 전)에 이게 있었으면 전쟁 안 났을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미국은 이 조약을 마지못해 체결했다. 이승만 박사의 강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소극적이던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 반공포로를 석방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는 정전협정을 뒤흔드는 조치였다. 프랑스·영국 등 참전국이 발칵 뒤집어지자 미국이 달려와 방위조약을 만든 거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유리하게 체결이 된 것이 이 조약인데, 휴전한지 70여년이 지났다고 잊으면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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